너는 왜 나 만날 땐 화장 안 해?
친한 남사친이 대뜸 내게 “너는 왜 나 만날 땐 화장 안 해?”라고 물었다. 그때 내가 “너도 안 하잖아”라고 대답했는데, 너는 기억이나 할까. 그런 순간은 잊히기 어렵다. 그런 질문을 한 네게 기분이 상한 건 결코 아니고, 너도 안 하니까 나도 안 하겠다는 유치한 논리를 펼치자는 것도 아녔다. “너도 안 하잖아”라는 대답을 한치의 망설임 없이 내뱉은 나 스스로 놀랐기 때문이라면, 넌 내게 구구절절한 설명을 기대할지도 모르겠다.
그 순간은, 평소에 염두에도 두지 않았던 모순에 갑자기 의문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황현산 작가님은 이런 순간을 ‘문학적 시간’이라고 그랬다.
“문학적 시간은 대부분 개인의 삶과 연결돼있기 마련이지만, 사회적 주제와 연결될 때 그것은 역사적 사건이 된다.”
이 문장을 읽을 땐, 기분 좋게 아찔 해졌다. 우리는 바로 여기서 역사적 사건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화장이 왜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들의 기본적인 매너로 간주되는지, 그리고 왜 내가 아끼는 너에게 그런 질문을 받아야 하는지 불현듯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이 내가 이 같은 사건이 문제라고 ‘인지’한 대단한 찰나임을 부족한 단어를 조합해 설명해 내고 싶다.
사실, ‘갑자기’라는 단어를 쓰기는 오버인 것 같기도 하다. 그냥 종종 그런 생각을 하긴 했었다. 특히 여행을 다닐 때, 더 높은 빈도와 강도로 그런 종류의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가 최소 30분은 일찍 일어나 분주히 나갈 준비를 하는 시간에 남자 친구는 5분 만에 준비를 끝내고 책을 뒤적거리고 있음을 발견할 때. 그리고 그런 그를 부러운 시선으로 가만히 보고 있었던, 그 몇 초 동안 나는 분명 뭔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내가 무너질 메이크업을 대비해 가지고 다니는 팩트라던가, 하이라이터, 컨실러, 립스틱 같은 물건들이 짐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을 때. 들고 다닐 것이라곤 립밤 정도인 그의 주머니에 손을 넣었고, 나는 정말 흠칫 놀랐었다.
그런 작지만 따끔했던 사건들이 겹겹이 쌓여서, 이 같은 문학적 순간을 만들어낸 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나는 화장이 사회생활의 기본적인 매너쯤 되는 양식임을 무의식 중에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맨 얼굴로 누군가를 만나야 하는 사건 앞에 나는 “생얼 가능?”과 같은 허락을 구했다. 가관이다. 타인이 내 화장기 없는 얼굴을 마주 할 때, 혹여나 이 만남이 덜 중요하게 여겨진 건가 오해할까 우려했다. 이 걱정은 나의 당황스러운 무지이고, 내가 무지했음을 인지하기 시작한 것 만으로 그런 질문을 한 네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게. 넌 정말 순수하게 그 이유가 궁금했을 수도 있다. 그런 네게 너도 안 하는데 뭘 물어보냐며 대화의 싹부터 잘라버린 나도 잘한 게 없는 것 같다. 우린 정말 재밌는 대화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늦게나마 네 질문에 적확한 대답을 하고 싶다. 화장을 하지 않는 날의 빈도가 높아진 이유는 단순히 내 피부가 좋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미 좋은 피부에 왜 메이크업 한 겹을 덧 바르나 싶어서. 숨통이 트인 내 피부는 점점 본연의 예쁜 톤과 결을 찾아갔다. 민낯에 자신이 있거나 하는 이유와는 상관없이, 더 이상 내 피부에는 화장이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나는 무너져 내린 화장을 깨끗이 씻어낸 자기 전 내 피부가 정말 마음에 쏙 든다.
그럼에도 피부에 과도하게 제품을 덧 바르고, 다시 그 트러블을 화장으로 가리는 악순환 고리를 끊기까지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그 결과는 항상 덜 예쁜 버전의 내가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건 립스틱 하나만 안 발라도 제법 예상할 수 있는 질문을 의연하게 받아내는 자세를 갖추는 일이다.
피곤해?
나는 립스틱을 사용하지 않고 2, 3일만 지나면 원래 내 입술 색이 돌아온다는 사실을 몰랐다. 립스틱처럼 빨갛거나 예쁜 색은 아니지만 내 본연의 얼굴과 잘 어울리는 색이 된다.
그리고 그건 정시에 퇴근하는 것을 ‘칼퇴’라고 이름 붙이는 것처럼, 태어난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얼굴에 맨얼굴, 민낯, 노메이크업 등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이상한 행동임을 인지하는 일이다.
나아가 그런 내 얼굴이 매너에서 벗어나거나 미안한 일이 아님을 나의 삶으로 먼저 보여주는 일이다. 친한 친구, 팀원, 지인, 그렇게 내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부터.
얼마 전 또 “에이, 그래도 기초화장은 하고 다니자”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이제 조금 더 능숙하게 그런 상황을 대처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너도 안 하잖아”라는 대답 대신 네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되려 물을 줄 알고, 내게 그렇게 말하는 것이 폭력임을 조목조목 설명해줄 수 있다.
그런 내가 어느 날 화장을 하고 너를 만나더라도, 그런 나의 행동이 위선이라고 오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메이크업 자체가 나쁘다고, 혹은 불필요하다고 말하는 게 결코 아니니까. 너도 가지고 있는 선택의 자유에 대해서. 내가 네게 면도는 꼭 해야지, 머리는 기르지 말아야지와 같은 일을 강요할 수 없는 것처럼, 너도 내게 화장을 강요할 권리가 없음을 말하고자 하는 거니까.
앞으로도 날이 좋아서 화장을 할 거고, 날이 좋아서 화장을 하지 않을 것 같다. 화장을 한 나는 네게 그날의 화장 컨셉을 자랑하고, 화장하지 않는 나는 덜 예쁠지라도 더 나다운 모습으로 너를 만나려 한다.
p.s. 그때 네가 이 글 제목, 좀 이상한 거 아니냐고 말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