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FAQ. 퇴사 후 안 심심해?

내가 살다 살다 심심하지 않은지 걱정도 받는구나

by 배작가

평일 오후에 전화가 왔다. 밥은 먹었냐, 뭐 했냐, 별 시답지도 않은 질문들을 빙빙 하더니 본론에 들어갔다. “…어… 안 심심해?”


퍽, 웃음이 나왔다. 내가 살다 살다 심심하지 않은지 걱정도 받는구나. 나도 백수가 되기 전에는, 백수의 삶이 궁금했었다. 내가 가까운 미래에 살아갈 삶이기도 하고,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백수로 사는 건지 진짜 궁금했다. 월급 없이 살아갈 수 있는지, 백수로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사직서 내고 뭐 했는지, 심심하진 않은지, 자존감이 바닥치진 않는지, 일어나자마자 뭐하는지, 알람은 맞추고 자는지?


나는 백수가 원래 이렇게 바쁜 거냐고 백수 선배라도 있으면 가서 묻고 싶다. 직장인으로 살면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일을 미룰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비자 신청도 몇 달을 미뤘고, 미끄러지기 시작한 브레이크 교체도 미뤘고, 스케일링도 미뤘고, 꽃도 안 샀고, 책도 쌓아만 뒀다. 백수는 이제 일이 바쁘다는 핑계가 없다.


결국 브레이크를 교체해야 할 시점이 올 때 직장인의 나는 제일 가까운 카센터를 갈 거고, 그럼 거기 사장님이 브레이크 고치면서 뭐도 해야 되고 뭐도 해야 되고 하면 ‘네, 알아서 해주세요’ 대답한 뒤 100만 원짜리 영수증을 받았을 거다. 뭐가 뭔지 모르는 까막눈으로 영수증을 받아 들고, 내년에도 바보로 남을 것임을 직감한다.


백수인 나는 공식 카센터에 전화해 브레이크뿐만 아니라 엔진오일, 에어컨필터, 미션오일, 디퍼런셜오일, 연료필터, 와이퍼 블레이드의 교체 주기와 비용은 어떻게 되는지 물어 적정 가격 기준을 설정한다. 그리고 가까운 카센터 중 5군데를 선정해 최적의 후보를 정한다. 이 과정에서 내 차에 엔진오일이 몇 리터나 들어가는지, 합성유인지, 캐스트롤 정도면 괜찮은지, 엔진오일을 교체할 때 오일필터, 에어클리너, 엔진오일이 한 세트인지 등을 알게 되면서 문의 회차를 거듭할수록 전문가인척 대화 할 수 있다. 공식 센터에서 106만 원 견적을 받았는데, 집 앞에서 45만 원에 엔진오일, 에어컨필터, 브레이크패드를 갈았다.


백수가 되면 우선순위가 높은 일뿐만 아니라 낮은 일 또한 밀도 있게 하게 된다는 얘기다. 일 생각이 범벅된 요가를 했다면, 오롯이 요가만 하게 돼고. 이동 중에 전화 미팅을 대신했었는데, 좋아하는 작가의 팟캐스트를 듣게 됐다. 아직 백수 3주 차라 직장인 생활에서 청산하지 못했던 일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걱정해 준 것처럼 심심해지면 또 재밌는 일을 시작하지 않을까?




+) 자동차 소모품 교체주기 TIP

엔진오일: 1년, 1만 5천

브레이크오일: 3년, 4만

미션오일: 5년, 8만

에어컨필터: 1년, 1만 5천

디퍼런셜오일: 5년, 8만

연료필터: 4만

와이퍼 블레이드: 1년


+) 자동차 소모품 비용 TIP (외제차 공식센터 기준)

엔진오일, 오일필터: 30만 원

에어클리너, 에어컨필터: 20만 원

전체 브레이크패드: 50만 원

진단비용: 6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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