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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록 쾌선생 Oct 21. 2023

세종의 마지막 당부

10,800p를 한 단어로 줄인다면

“네가 할 수 있겠어?”

이 말은 내가 나에게 하던 말이다. “할 수 있지!”라는 꿈에 부풀어 오르다가도 금방 식어버리는 냄비 같은 습성은 이 한 마디로 시작된 거였다. 그렇게 끊임없이 나를 의심하고 있을 때, 잔고 8만 원이 내 가치라고 생각하던 시절, 내 삶에 세종이 다가왔다. 세종실록에 ‘하연’이라고 검색하면 474번이나 뜨니, (세종시대 때 ‘하연’이라는 정승이 있었다). 마치 그가 나를 부른 것 같았다. 수많은 멘토 중에 왜 하필 세종일까, 그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세종실록을 읽어가면서 눈물을 흘렸던 순간은 총 세 번이다. 첫 번째는 황희에게 했던 세종의 말이었다. ‘그에게 정성스럽다. 순일하다. 화사하지 않다. 깊다. 무겁다. 지혜가 있다. 희대의 온식이다. 세상을 보필할 큰 인재다.’라고 구체적으로 칭찬하는 것을 보며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다. 사업 특성상 사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회사를 다녔을 때 이런 사수 만났으면 인생이 달라졌으려나 잠깐 상상도 해봤다.


두 번째는 함길도 경력 이사철을 불러 세종이 했던 말이다. 새로운 곳에 부임한 그는 자신의 자질을 의심했는데, 그에게 세종은 "너의 자질(姿質)이 아름다움을 아노니 하지 않으면 그만이거니와, 만약 마음과 힘을 다한다면 무슨 일인들 능히 하지 못하리오."(세종실록 22/7/21)라며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다른 사람을 비교하느라 항상 나를 뒤처진 사람이라 여겼던 내게, 세종의 한 마디는 내가 가지고 있는 자원들을 생각해 보는 계기였다.


마지막으로는 김종서에게 보냈던 세종의 편지다. 북방을 개척하며 나타나는 많은 어려움에 대해 “뜻밖에 첫해의 큰 눈[雪]과 이듬해의 큰 역질(疫疾)로서 사람과 가축이 많이 죽었고, 지난해의 적변으로 피로되고 피살된 것이 또한 적지 않았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내 뜻으로는 오히려 대사를 이루려면 처음에는 반드시 순조롭지 못한 일이 있어도 후일의 공효는 반드시 바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종실록 19/8/6)라고 적은 이 글은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지금의 어려움이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과정인 것을 인식하고 후일을 도모하는 것. 결과를 믿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 세 대목의 공통점이 뭘까? 처음에는 ‘좋은 사수가 있으면 좋겠다, 날 인정해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 미래가 좋았으면 행복하겠다.’와 같은 단순한 바람이었다. 그런데 계속 세종실록을 곱씹어보니, 시선은 다른 사람에서 나에게로 옮겨갔다.


나는, 나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해주고 있었나?
나는, 나의 자질을 100% 믿어주고 있었나?
나는, 나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었나?


나는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먼저 보았고, 내 자질을 늘 부족하다 여겼으며, ‘이번에도 안 되겠지’라는 생각을 줄곧 하곤 했다. 아무리 환경이 좋아도,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어도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할 수 없는 법. 이 생각이 기저에 깔려있었으니, 내가 했던 것은 작게 보이고 다른 사람 것만 커 보였다. 그런 나에게 세종이 나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건 바로 ‘스스로를 믿는 마음’, 자신감이었다.


스스로 자(自) + 믿을 신(信) + 느낄 감(感).

나의 잠재력을 믿고, 어떤 시행착오가 와도 나는 해낼 수 있다는 굳은 믿음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것.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하지 말고, 그럼에도 한 번 더 용기를 내보는 것. 그래서 좋은 결과를 만들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며 미래를 만들어가는 삶. 그것을 나도 할 수 있다고, 세종은 10,800페이지라는 거대한 분량 안에서 끊임없이 가르쳐주고 있었다.


그러니 부디, 그대의 몸과 마음과 뜻을 귀하게 여기기를.

그러니 부디, 포기하지 말고 계속 도전하며 나아가기를.

그러니 부디, 스스로를 믿는 그대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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