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이 들어도, 할 수 있는 방법은 있습니다
회사 매출이 8만원으로 떨어졌을 때, 밤낮이고 매일 생각했던 건 ‘왜그랬을까’였다. 왜 이 아이템을 한 것일까, 왜 이걸 내가 하겠다고 했을까, 왜 그 사람의 말을 들었을까. ‘왜.’ 달라지지 않는 과거를 후회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내 탓을 하면 조금 더 나을까 하며 몇 달을 보냈다.
아침에 눈을 뜰 때 설레지가 않았으니 하루 종일 무기력하게 지냈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도 ‘이렇게 됐어’라고 하는 안좋은 이야기와 에너지만 가득했으니 사람들과도 멀어졌다. 나를 꾸준히 지켜보던 지인들은 “다 잘 된 일이야. 이제 너도 혼자 독립해야지.”하며 응원 섞인 말을 건네고는 했지만 나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라고 생각했기에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때 내가 선택한 건 사업가의 삶이 아니라 동물의 삶이었다. 동물이 지구에서 내 삶을 살기 위해서라면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그건 바로 최소한의 의식주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몸을 움직이고, 건강한 밥을 먹고, 햇빛을 쐬는 것. 처음에는 그것마저 쉽지 않았다.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지내다보니 갈수록 심해로 들어가는 기분이었고, 운동화 신는 건 다른 것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때마다 ‘해야지, 다시 일어나야지’ 하면서 무거운 몸을 일으키기를 몇 개월, ‘이젠 뭔가를 해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에 보았던 게 <1446>이라는 세종대왕의 일대기를 그린 뮤지컬 작품이었고, 그걸 보고 나는 세종과 관련된 책을 보게 됐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리더십’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책 이름은 <세종의 적솔력>. 세종실록의 중요한 내용을 사자성어 52개로 만든 책이었는데, 그 중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단 한 단어. ‘불가부진(不可不盡)’이었다.
임금이 도승지 신인손에게 이르기를, "요사이 흉년으로 인하여 비방(誹謗)을 받는 일이 많다. (중략) 내 뜻에는 생각하기를, 하늘의 운수는 비록 이와 같더라도 사람의 일은 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사람의 일이 조금이라도 결점이 없는데 사람의 굶주려 죽은 것이 그대로라면, 이것은 하늘의 일이고, 만일 사람의 일이 혹시라도 미진(未盡)함이 있다면 상과 벌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세종실록 19/1/22)
이 시기, 흉년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 이때 신하들은 더 이상 할 것이 없다며 가뭄을 하늘 탓으로 돌리곤 했는데, 세종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다해야 한다며 수령들에게 다시 한 번 백성을 구휼할 것을 당부하고, 직접 경복궁 한 곳에 논을 지어 씨를 뿌리고 곡식을 거두기도 했다. 그렇게 꾸준히 하기를 몇 년,고려 말에 비해 농지는 2.4배, 1결당 수확량은 4배가 늘어났다. 모두가 어렵다고 하는 시기에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했던 결과였다.
실록을 보고는 내 4년을 다시 바라봤다. ‘나는 정말 최선을 다 한 것일까? 여기에서 더할 수 있는 게 뭐 없을까’. 겉으로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하나씩 들여다보니 중간 중간 빈틈이 많이 보였다. 이것부터 다시 시작하자, 결심하며 하나씩 바꾸기로 했다.
맨 처음 한 건 매일 아침 100개가 넘는 고객들의 후기를 읽는 것이었다. 내 사업은 자존감 증진을 목적으로 100일동안 글을 써서 책을 출판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는 분들은 20대부터 70대까지 나이대가 다양했다. 공통점은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남들과 비교하지 않습니다.’ , ‘제 삶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였다. 글을 쓰면서 꿈을 찾은 분도 있었고, 사업을 시작한 사람도 있었다.
나는 고객 한 명 한 명의 얼굴이 떠올랐다. 글을 쓰면서 힘들어했던 모습, 나에게 어린 시절 아픔을 고백하며 눈물을 흘렸던 순간, 이 프로그램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며 내 손을 꽉 잡아주던 그 손의 촉감. 알 수 없는 기쁨과 고마움에 눈물이 났다. 내 프로그램을 통해 인생이 더 나아진 분들의 이야기를 다시 곱씹으며, 내 상품과 서비스가 고객의 삶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깊게 새겼다.
두 번째로 한 건 전문가들과의 만남이었다. 그 중에 기억에 남는 분은 20년이상 대기업에서 브랜드를 만들고 키운 분이다. 코칭을 배우면서 만났던 분인데, 감사하게도 회사의 리브랜딩을 도와주고 싶다는 제안을 해주셨다. 일주일에 한 번, 그 분과 만나 회사의 이름부터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회사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고, 목표를 세우면서 어떤 고객과 함께 해야하는지를 고민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프로그램 중에 우리 회사가 특별히 제공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를 계속 고심해야 했다. 글쓰기, 세종대왕, 코칭. 이 세 가지 큰 카테고리는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데, 나는 어떤 가치를 생각하기에 이걸 끌고 가고 있는 걸까? 나는 과거에 썼던 2000개가 넘는 내 글을 분석했고, 그 결과 나온 단어는 바로 ‘잠재력’이었다. 나는 자신만의 길을 걷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잠재력을 발견하게 해주는 글쓰기를 하고 싶었다. 또, 세종대왕을 공부한 이유는 세종이 주변 인재들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적재적소에 써서 태평성대를 일구어냈던 그 리더십을 배우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 이야기할 코칭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가진 잠재력을 함께 발견하여 원하는 삶으로 가는 데 도움이 되는 파트너가 되고 싶었다는 게 내 바람이었다.
아, 나는 이 세가지 카테고리로 사람들의 잠재력을 발견하게 해주고 싶었구나! 라는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게 됐다. 이게 정리되니, 그 다음 일은 그에 걸맞는 자격을 보유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세 번째, 코칭 대학원에 진학했다. 고객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분이 자신의 삶을 충만하게 살면서도 미래를 그릴 수 있게끔 돕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가진 기술과 생각으로는 충분히 사람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전문적인 역량을 쌓기로 했다. 다행히, 4년동안 고객들을 만나며 상담했던 경험이 있어서 코칭핵심역량과 코칭심리학, 코칭실습 등을 배우며 핵심 기술을 쌓는데 조금 수월했다. 학교 수업을 들으면서 바로 고객들과 함께 실습을 해보고, 함께 가까워지며 자신을 알아가는 그 과정을 하는 것은 나와 고객의 동반성장을 눈에서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하면서 코칭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했고, 새로운 라이프 코치로서의 영역도 만들 수 있었다.
사업을 시작한지 곧 10년, 나는 또 한 번 버전 업그레이드를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예전에는 ‘더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어’라며 신세를 한탄하고는 했는데, 그때마다 세종의 이 한 마디를 가슴에 되새긴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라’. 지금 나는 여기서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일이 기대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