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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다림 Sep 30. 2023

익은 벼와 같길

며느리 11년차 추석

추석이라 시댁에 갔다.

시댁은 시골이라 계절을 느끼기 좋다.


결혼 후 처음 맞은 추석 때는 왜 추석을 '한가위'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풍요로움과 풍성함이 주변 곳곳에 흘러넘쳤기 때문이다.

마당에 있는 대추나무에서 대추를 따고

갓 수확한 감자와 고구마로 전도 부치고

밭에서 툭 따서 나물도 무치고

닭장을 가꾸실 때는 달걀도 꺼내왔다.

직접 키우고 수확한 것들로 차례를 지내는 진짜 한가위였다.


이번 추석에는 시댁에서 혼자 산책을 해봤다.

자꾸만 잠이 와서 시작한 산책이었는데, 한 바퀴에 1,000보 정도 되는 한 블록을 걷다 보니 가을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수확철이 안 돼 논에 가득 차있는 벼들과 초록초록한 산, 그리고 가을답게 높고 푸른 하늘까지. 사진을 찍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양팔을 벌려 눈을 감고 바람의 촉감을 느꼈다.

바람에 벼들이 부딪쳐 일으키는 소리도 귀 기울여 들었다. 그리고 눈을 떴다.


'벼'는 정말로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네!


눈을 뜨고 마주한 논의 벼들은 잔뜩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빈 수레처럼 요란하지 않길,
하늘 보며 쳐들지 말고
고개를 숙일 줄 알길,
익은 벼와 같이
진정으로 풍요로운 사람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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