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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다림 Oct 09. 2023

버틴다는 건

대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한 23세부터 지금까지 경제적 어려움은 당연한 것이었다. 시간강사는 프리랜서라 일 한 만큼만 돈을 벌 수 있다. 근데 방학에는 일을 못하고 돈도 못 받는다. 시간강사는 월급이 아니라 강사료로 임금을 받기 때문이다.


시간강사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은 방학이 있어서 좋겠다,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워 좋겠다고 말했다. 맞다. 가장 큰 장점이다. 반대로 가장 큰 단점이다. 왜냐하면 방학엔 시간은 많지만 돈이 없기 때문이다. 돈이 없어서 시간을 멋지게 보내기도 어렵다. 해외여행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본격적인 방학이 시작되는 8월, 2월부터 다시 강의료를 받는 10월, 4월까지 1년 중 6개월은 긴축재정에 돌입해야 한다.


게다가 재계약을 위해서는 논문도 꼬박꼬박 써내야 했다. 논문을 쓰는 과정 자체도 힘들지만 심사를 받고 지적을 당하고 떨어지고 또 도전하는 과정들은 연구자로서의 자존감도 떨어뜨린다. 인문학 연구자라 이공계 연구자들에 비해서 비용이 적은 편이었지만 논문을 투고할 때마다 내야 하는 심사료나 게재료도 꽤나 부담이었다. 그뿐이랴. 논문을 준비한답시고 읽어야 하는 책도 사야 했다.


우리 부부는 시간강사 부부였다. 결혼을 한다고 할 때부터 많은 교수님들과 선배 강사 선생님들은 걱정을 했다. 28살 나와 32살 남편은 서로를 믿자고 다짐하며 모두 걱정하는 결혼을 선택했다. 생각보다 힘든 시간들이 많았다. 그래도 같은 일을 하니 서로를 가장 잘 이해했고 실패했을 때도 누구보다 힘이 되는 사이였다.


결혼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조금은 안정적인 비정년 교수가 되었다. 대학이 축소되는 상황에서 예전과 같은 정년 교수가 된다는 건 더 어려운 일이라 이렇게라도 자리를 잡아 다행이라 생각한다. 물론 매년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불안정한 자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학에도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남편은 시간강사다. 한 대학에만 강의를 나가다 요즘은 여러 대학 강의를 맡게 되어 우리가 가족이 된 이후 지금이 가장 형편이 좋은 상황이다. 10년이 걸렸다. 그 사이에 우리는 박사학위도 받고 연구도 강의도 모두 잘 해내려고 노력했다. '노력하면서 버텼다'가 더 맞는 것 같다.


우리 부부를 버틸 수 있게 해 준 소중한 우리 아들도 태어났다. 아직도 불안하다. 매년 논문을 준비하면서 한계도 느끼고 매 학기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자괴감이 드는 순간도 많다. 그럼에도 출산 한 달 전까지 일을 하고, 출산 후 바로 일을 시작하고, 떨어지기 싫어하는 어린 아들을 어린이집에 유치원에 늦게까지 맡기면서 일을 하고, 매일 4시간씩 기차로 출퇴근하면서 일을 하고, 아들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었을 때도 끝까지 일을 그만두지 않은 건, 나에게 일이 생계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계라서 포기하지 않고 버텼던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우리가 된 것 같다. 그리고 그 일이 누구 엄마, 아내, 딸이 아니라 온전한 '나'를 만들어 주었다.



버텼다.
숱한 명분과 핑계가 많았지만
어떻게든 버텼다.
대단한 성공을 이뤄내진 못 했지만,
하나의 분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잘 버티고 있는 나를, 남편을 토닥토닥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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