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학교에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 매운 정체를 알게 되었다. 최루탄 가스였다. 데모할 때 전경들이 쏘는 가스라고 했다. 데모라는 단어도 낯설고, 전경도 생경했다. 경찰은 경찰인데 전투하는 경찰이라고 전경을 한 녀석이 설명하자, 앞자리 녀석이 묻는다.
"그럼 전쟁하는 거냐고?"
설명한 녀석에게 시선이 옮겨졌다.
"람보나 코만도 알지? 그런 비밀경찰인 거야?"
"뻥치지 마."
좁은 교실에서 답은 알 수 없지만 전쟁이 난다는 생각을 하자, 연재가 끝나지 않은 보물섬 만화책의 구영탄시리즈를 더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우울해졌다. 책상 위에 누가 칼로 깊게 팠는지 몰랐지만, LOVE라는 단어를 뚫어지게 보고 있는 동안 앞뒤에 앉은 녀석들은 어제 있었던 경험담을 부풀려 이야기하느라 바빴다. 옆자리 경태도 최루탄 가스에 대해 열을 올리며 아는 척을 했다.
"숨을 입으로 쉬거나 물수건으로 눈을 가리면 좋아."
경태는 그의 삼촌이 알려준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물수건으로 입을 가리는 것은 연기가 났을 때 입과 코를 막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했다. 손으로 납작한 코를 누르자 그의 커다란 눈이 더 커 보였다.
"심하면 모든 구멍에서 무엇인가 흘러내릴 수 있어!"
옆에 누군가가 뻥 치지 말라고 소리쳤다.
"뻥 아니라니까!"
경태는 답답한 듯 침을 튀며 말했다. 그의 말이 빨라지자,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경태의 이야기는 거짓말 같았지만, 어제처럼 너무 매워서 눈과 코에서 눈물과 콧물이 사정없이 흘러내리는 경험은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이건 마치 영화 속에서 고문하거나 아니면 갱영화에서 나오는 대사와도 같았다.
'복수를 위해서 오늘만을 기다렸다. 너의 모든 구멍에서 쏟아져 나오게 너를 죽여주겠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모든 구멍이라니. 눈과 코와 입 그리고 귀? 그리고 구멍이라고 함은 아니 거기도? 거기까지 생각하며 나는 엉덩이에 힘을 주었다. 학교에서 망신을 당할 수는 없으니까! 가스는 교실 안에도 들어와 수업을 방해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매운 가스가 공기를 타고 오면 손으로 코를 가려도 쓰린 무언가가 코와 눈을 쳤다. 경태의 삼촌이 말한 비법은 더 나를 괴롭게 했다. 눈을 비비거나 눈물을 흘리면 눈이 쓰라려 비명이 입으로 나왔다. 저 멀리 대학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몇 킬로 떨어진 이곳에서도 이렇고 고통스러운데 그곳은 어떨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집에 오면 아버지는 거실에서 대학생 시위 뉴스를 보며 숟가락을 들고 한마디 했다.
"저 새끼들은 대학 가서 공부 안 하고 이상한 짓거리들 한다고. 다 잡아들여야 한다고."
무슨 이유가 있겠죠? 라고 엄마가 한마디 하면 아버지는 성질을 내며 한마디 했다
"다 빨갱이들이야. 저 새끼들은."
컬러 TV 화면에서는 검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스크럼을 짠 학생들이나 화염병을 던지는 학생들의 모습이 담겼다. 화면 속 그들은 화가 나 있어 보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빨간색 옷을 입거나 모자를 쓰곤 있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