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약을 코 밑에 바르면 맵지 않아!"
다음 날 경태는 친구들을 불러 놓고 목에 힘주면 말했다. 코 밑을 만지는 그의 인중에는 솜털들이 귀엽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옆에 검은 점 하나도. 경태를 처음 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저 점이었는데, 그래서인지 경태가 서울이 아닌 시골에서 전학을 왔을 거라고 나는 확신했었다. 자세히 얼굴을 보고서야 점뿐 아니라 볼에 주근깨가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앞자리 녀석이 웃자, 경태는 치약이 최루탄 가스를 코에 들어가기 전에 흡입해 코가 냄새를 막지 못하게 한다는 원리라고 했다. 치약이 입안에서 세균을 죽이는 이치와도 같다고 했다. 경태의 지난 과학 점수는 25점이었다. 그는 치약을 길게 짜서 바르면 되고, 많이 바를수록 약효가 좋다고 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웃어넘겼고, 아이들도 거짓말하지 말라고 그의 머리를 때렸다.
며칠 뒤 최루탄 가스가 날아온 날 나는 집에 와서 몰래 치약을 짜서 인중에 발랐다.
"경태, 개새끼!"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치약이 살에 닿자, 입속과 달리 코 밑이 따가웠다. 그날 저녁에 엄마는 누가 이렇게 가운데를 눌러서 치약을 많이 썼냐고 소리쳤고, 나의 한심한 모습을 지켜보던 형의 고자질로 나는 엄마에게 등짝을 맞았다.
다음 날, 학교에서 경태는 자리에서 친구들과 지우개 따먹기를 하며 웃고 있었다. 나는 쉬는 시간에 몰래 그의 책상 서랍 안에 씹던 껌을 붙여놓았다. 5교시에 경태는 교과서에 눌어붙은 껌을 띠며 어떤 새끼인지 걸리면 죽여놓겠다고 혼잣말했지만 60명 중 누가 했는지 범인을 찾기란 쉽지 않을 거라고, 나는 그를 위로했다.
우리 학교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해서인지 1학년이 다니는 별관은 바닥이 마룻바닥이었다. 걸을 때는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났고, 1학년만 있는 건물이어서 철없는 남자아이들은 복도를 뛰어나느라 늘 소란했다. 쉬는 시간이면 날뛰는 남자아이들이 교실 안에도 바글거렸다. 남자만 다니는 중학교에는 3명이 짝을 이뤄 앉았고, 분단과 분단 사이는 좁았으며 교실 안에 공간이라야 교탁 옆과 교실 뒤에 작은 공간이었지만 그곳도 씨름하는 아이들과 삼삼오오 모인 아이들로 발을 디들 틈이 없었다. 모든 수업 시간은 다 지루했는데, 국사와 국어 선생님이 좋았고 체육과 기술, 그리고 영어 선생이 무서웠다. 영어 선생은 정년을 앞둔 할아버지였는데 머리가 반쯤 벗어졌고, 늘 줄무늬가 있는 양복을 입고 다녔다. 영어 시간이면 단어를 외우지 못한 아이들이 앞으로 나가서 선생의 몽둥이 - 다시 말하지만, 회초리가 아닌 - 정확히 말하면 당구장 큐대를 가져와 허벅지를 때렸다. 큐대는 때가 타서 손잡이와 끝이 검게 변해 있었다. 엉덩이를 때리면 살이 많아서 아프지 않은 것을 알고 교직 경험이 많은 늙은 영어 선생은 허벅지를 몽둥이로 사정없이 갈겼다. 야구선수 백인천과 김봉연처럼 풀수윙을 했는데, 정년을 앞둔 그가 어디서 그런 힘이 생기는지 알 순 없지만 느린 걸음과 달리 우리를 때릴 때는 진심을 다했다. 다음날 체육 시간에 체육복을 환복 하는 친구들의 허벅지에는 빨간 줄이 깊게 파여있었다. 경태는 늘 단골손님으로 앞에 섰다. 가끔 선생은 바지를 내려, 그의 속옷을 보며 좀 빨아서 입으라고 했다. 하루는 영어 시간에 오늘은 어떤 속옷이냐고 하면서 놀렸고, 그의 흰 속옷이지만 절대 하얀색이 아닌 팬티를 보고 아이들 모두는 웃었다. 하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는데 나 역시 그 옆에서 몽둥이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은 뭐에 홀렸는지 모르겠지만 영어 수업이 있다는 것을 까먹고 영어 단어를 외우지 못했다. 컴플레인의 뜻을 이야기했지만, 단어 철자를 틀려서 앞으로 불려 나갔다.
영어 선생은 스펠링을 말할 때 마지막 알파벳은 끝을 꼭 올려서 말하게 했는데 예를 들어 play의 철자를 말할 때는 피. 엘. 에이. 그리고 마지막 "와이"를 말할 때는 그냥 와이가 아닌 "와"를 솔 정도 음으로 높게 말하고 "이"를 내리며 말해야 했다. 그런 음으로 말하지 않으면 될 때까지 시켰다. 걸린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발음이 될 때까지 혼자 철자를 말해야 했다. 가끔 이상한 억양이 반복되면 아이들은 하나둘씩 킥킥거리며 웃었고, 쉬는 시간에 또 하나의 놀림거리가 생기게 되었다. 허벅지에 몽둥이찜질이 끝나고 경태는 쉬는 시간에 화장실로 나를 불렀고, 내게 반으로 접힌 쪽지 하나를 줬다. 펴보니 금발 여자의 비키니 입은 모습이었다. 내가 뭐냐는 식으로 그를 보자. 아까 자기가 맞을 때 웃지 않은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