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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나온 Sep 09. 2024

#1. 그냥 한번 해 볼까

텃밭의 시간 1

#1. 텃밭의 시작

     

2023년 3월의 어느 화요일, 초등학교 2학년 교사 회의 시간. 그냥 가벼운 업무 전달이었다.      


 “학교에서 텃밭 할 반에 상자를 준다네. 해볼래?”   

  

 나는 관심이 있던 터라 하면 좋을 것 같다고 답했다. 5반 선생님도 집에서 텃밭을 가꾸는 중이라 좋아했다. 나머지는 그냥 덤덤한 반응이었다. 뭐 좋다니까 해 볼까요? 정도. 그 와중에 평소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8반 총각 선생님은 묵묵부답이었다. 하기 싫은 것이 분명했다. 7반 막내 선생님의 표정도 비슷했다. 굳이? 라는 표정이었으나, 언니들이 하신다니 따르겠나이다 정도의 반응이었던 것 같다.    

  

 여덟 반에 각각 두 상자씩, 총 16상자의 텃밭이 2학년에 배정되었다. 볕 좋은 날을 골라 아이들과 함께 토마토 모종과 상추 모종을 심었다. 모둠별로 구역을 나누고, 한 사람이 상추 모종 하나를 심을 수 있게 했다. 토마토 모종은 모둠별로 한 개를 심을 수 있었다. 방울토마토와 대추토마토 모종을 섞어 사 왔는데 잘 구분이 되지 않아 대충 나누어 주었다.  


 텃밭은 좁으나 심을 사람은 많으니, 줄을 서서 심어야 한다. 하지만 줄을 서라 한다고 가만히 줄을 서 있으면 애들이 아니지. 나 혼자 심는 것이 백번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수시로 치민다. 그렇지만 뛰어다니다가도 자기 순서가 되면 얼른 와 줄을 서는 나름의 질서가 있었다. 땅을 파내고 구멍에 모종을 넣고는 꼭꼭 다지는 고사리손. 고런 순간엔 또 월메나 기특한지. 


 식물도 감정이 있다고 한다. 식물도 자신을 괴롭힌 사람을 알아보고 신호를 보낸다는 유튜브 실험을 함께 보았다. 우리는 식물에게 이름도 지어주고, 팻말도 만들어 달아주면서 사랑과 관심으로 텃밭 식물들을 길러 주기로 다짐한다. 우리와 함께 사이좋게 잘 자라자고 노래도 불러주었다.    

  

 아침에 교실에 도착하면 먼저 온 아이가 종종대며 물을 주러 가도 되냐고 묻는다. 쉬는 시간에도 여러 아이가 종종 텃밭에 가도 되냐고 묻는다. 아침에 물을 줬으니 괜찮다고 말하면 그래도 조금만 더 주고 오겠다고 한다. 교실이 답답하니 텃밭 핑계를 대는 마음인 것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 하지만 모른 척 허락하기도 한다. 여럿이 몰려가면 안 되고 두 명씩만 가야 한다는 규칙을 정했다. 쉬는 시간에 텃밭 방문을 허락받은 아이들은 거의 복도를 우르르 달려간다. 교실에서 탈출하여 좋았을 것이고, 바깥 공기를 쐴 수 있어서 좋았을 것이다. 운동장 근처에서 깡충깡충 뛰다 숨도 고르고 어깨도 펴고. 토마토와 상추에 물도 주고 노래도 불렀을 것이다. 그러고는 공부 시간이 시작될 즈음 와다다 달려와서는 선생님께 친구를 이른다. 


 “선생님, 쟤는 물은 안 주고 노래만 부르다 왔어요!”   

  

 급기야 우리 아이들은 상추와 토마토를 위한 노래를 지었다. 봄노래로 김희동 선생님의 ‘언제나 언제나’를 가르쳐 주었는데 개사해서 상추와 토마토를 위한 노래로 바꾼 것이다.     


<언제나 언제나>


원곡 김희동. 개사 2-4반.   

  

초록 방울토마토 옆에서 너는 곱게 웃고 있구나

친구야 아름다워 꽃처럼 환하게 빛나렴

언제나, 언제나, 언제나

연두 상추 옆에서 너는 곱게 웃고 있구나

친구야 아름다워 꽃처럼 환하게 빛나렴

언제나, 언제나, 언제나     


 예뻤다. 토마토와 상추가 노래를 먹고 무럭무럭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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