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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나온 Sep 25. 2024

두부 나무

두부 나무  

   

S#1-텃밭, 초여름 오후

    

동그란 머리의 두 소년이 밭으로 간다. 하나는 삽과 호미를 들고, 다른 하나는 모종삽을 들고서 밭고랑 사이를 둘레둘레 간다. 삽을 질질 끌며 가는 큰 놈의 발걸음은 덩실덩실하며 그 뒤를 따라가는 작은 놈의 엉덩이는 동실동실하다.      

올해 열 살인 첫째가 다니는 학교 옆에는 마을 텃밭이 있다. 아들의 친구 재재네 가족은 매해 텃밭을 분양받아 농사를 짓고 있다. 아들은 재재네 텃밭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 소작농처럼 그 밭을 드나들며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곤 했는데, 재재네 엄마는 올해 새로 농사를 시작하며 텃밭 중 가장자리의 한 이랑을 나의 아들에게 내어 주었다. 감격에 겨운 아들은 자기 밭을 보여주겠다며 퇴근한 엄마와 동생을 이끌고 의기양양하게 밭으로 앞장서고 있는 중이다.      

먼저 도착한 형은 동생에게 물뿌리개를 주며 물을 떠오라고 시켰다. 그리고 자기는 삽질을 하며 고랑을 더 깊게 파내었다. 그렇게 거기만 깊게 파면 안될 것 같은데.... 하지만 그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삽질을 하는 그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럽고 촌스러웠기 때문이다. 오해는 마시길. 나는 촌스럽다는 단어를 매우 긍정적인 의미로 쓰곤 한다. 더군다나 처음 자기 밭을 소유한 어린 농부에게 촌스럽다는 말은 얼마나 큰 칭찬이던가.      

동생은 형아가 시키는 대로 자기 몸통만큼 커다란 물뿌리개에 물을 떠왔다. 이 녀석도 덩달아 마음이 달뜬 표정으로 형 소유의 밭고랑에 매혹되어 있다. 파란 물뿌리개에 물은 반도 채우지 못했지만 이미 웃옷이 다 젖었다. 형이 가리킨 곳에 물을 주면서 입에서는 혼잣말로  “아이고, 이크! 졸졸졸, 오~케!”가 연신 나온다.      

형은 뭐가 잡초인지 알려주며 잡초는 뿌리까지 뽑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어느 정도 밭 손질을 끝냈는지 이제는 둘이 번갈아 가며 또다시 물을 퍼 날랐다. 자기 이랑에만 물을 주는 것이 아니다. 재재네 밭에도 고르게 물을 주더니 나중에는 근처 모르는 사람의 밭에도 물을 준다.  

    

“여기는 주인이 안 오나 봐. 땅이 말라가네.”

“와, 여기는 딸기가 너무 익었네. 내가 먹어야 하나?”

“형아, 그걸 왜 형아가 먹어?”

“내가 안 먹으면 새가 먹는단 말이야.”     


나는 밭의 잡초를 뽑다가 두 녀석의 모습을 한걸음 물러선 채로 구경하고 있다.

두 아이가 물뿌리개를 들고 좁은 밭고랑을 낑낑대며 걷다가 제법 쌀쌀한 저녁 바람에 어깨를 움츠렸다. 민들레는 솜털 달린 꽃씨를 바람에 날리고 이팝나무는 눈송이처럼 하얀 꽃잎을 떨어뜨린다. 밭에는 하얀 콩꽃이 피고 작은 꼬투리가 동글게 여물어가고 있었다. 나는 문득 기시감에 휩싸인다. 이 장면, 어디서 봤더라........          


S#2-거실, 겨울 저녁    

 

지난 겨울 그날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두 아이와 함께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고 있었다. 반찬은 두부구이이다. 큼지막하고 단단한 두부를 도톰하게 썰고 하얀 소금을 솔솔 뿌려 간을 맞춘 뒤, 친정엄마가 주신 강화 들기름을 쓰윽 둘러 지글지글 노릇하게 구워낸 두부구이. 큰 두부구이를 젓가락으로 먹기 좋게 조각내어 밥공기 위에 올려주면 아이들은 금방 입으로 쏙 집어넣고 오물조물 잘도 먹었다.      

저녁 식탁의 이야기 주제는 나무와 풀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귤은 나무에서 열리나 풀에서 열리나 - 나무. 토마토는 나무에서 열리나 풀에서 열리나 - 풀.

두부를 집어 입에 쏙 넣던 둘째가 묻는다.   

   

“엄마, 그럼 두부는 나무에서 열려 풀에서 열려?”   

  

아, 이 얼마나 혁신적인 질문이던가. 아이의 말은 보통의 담화 형태를 띠고 있지만 시와 같은 메타포를 품고 있었다. 이럴 때 과학적 지식을 알려주고 싶은 것이 아니라 문학적으로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샘 솟는 것을 보면, 나는 교사이기보다 작가이고 싶은 것이다.   

  

“어디서 열릴 것 같아?”

“나무~.”


그러자 첫째가 핀잔을 준다.


“으이그! 두부가 어떻게 나무에서 열리냐?”


오, 역시 형이로구나.  


“만약에 두부가 나무에서 열리면, 다 큰 두부가 나무에서 떨어져서 땅바닥에 다 뭉개지지. 그니까 두부는 풀에서 열리겠지.”    

 

아, 이 논리적인 추론을 보라. 내 아들이지만 정말 이지적이야!   

     

“엄마도 잘 몰라. 나중에 어디 두부 열린 나무가 있나 찾아보자. 큰 나무에 열리나 풀나무에 열리나.”  

   

눈이 오는 창가, 두부를 입속에 쏙 쏙 넣는 두 아이를 번갈아 보며 머릿속으로는 어떤 장면이 생생히 그려졌다.        



S#3-숲속, 언젠가의 겨울      


동그란 머리의 두 소년이 눈 내리는 숲속의 오솔길을 가고 있다. 손을 호호 불며 앞으로 나아가는 그들의 두 볼은 꽁꽁 얼어 빨갛다. 두부 나무는 어디 있을까. 그들은 왜 두부 나무를 찾고 있을까. 어쩌면 아픈 엄마를 위해 신비로운 누군가가 묘약을 알려준 걸지도 모르겠다. 너무 뻔한 클리셰인가? 아니지. 원래 뻔한 클리셰가 진리지. 그 모험의 길에서 누구를 만나게 될까. 마침내 찾아낸 두부 나무에 열린 두부는 어떤 모습일까. 그 두부를 먹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너무 궁금해. 이건 정말 멋진 동화가 될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사과처럼 나무에 열린 두부나, 토마토처럼 풀에 열린 두부를 상상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두부 나무가 머릿속에 존재하기 시작했다.  


          

S#4-텃밭, 초여름 저녁     


아이들은 머리를 맞대고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형은 농작물을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것은 브로콜리, 이것은 오이, 이것은 고추고 이것은 삐죽이 상추라고 알려 준다. 밭작물에 척척박사가 된 첫째를 보며 나는 순간 궁금하다. 열 살이 된 저 아이는 두부 나무의 정체를 알았을까. 이것을 지금 확인해 봐도 될까.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큰아들에게 물었다.   

  

“그럼 여기 어느 게 두부 나무일까?”

“엥? 뭔 소리여. 두부는...... 아~!”

    

아이가 의미심장하게 웃는다.   

   

“이거!”라며 콩나무를 가리킨다.      

“오~~~!!!!”    

 

둘째가 눈이 동그라져 작은 꼬투리가 달린 콩나무를 본다.  

    

“이게 두부 나무야?”

"어, 이게 두부 나무야."


나랑 첫째는 서로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다.      

역시 컸구나. 훌쩍 컸네. 기특하면서도 아쉽다.    

 

녀석들 덕분에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을 가보고,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아이를 키우며 새롭게 만나는 세상은 매일매일이 경이롭고 아름답다. 나중에 세월이 흐르면, 나는 나의 어린 시절보다 너희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할 것만 같다.   

    

열 살과 일곱 살의 초여름 위로 어느덧 노을이 진다.

우리의 작은 밭고랑에 하얀 나비가 팔랑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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