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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스타의 정성에도 커피는 손님에게 갈 순 없었다.

*커피숍에서 본 걸 써보자


원칙을 고수하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망원동에 있는 작은 카페. 원목의 자연스러운 느낌이 가득한 이곳은 커피 러버들의 성지와 같은 곳이라고 한다. 길게 늘어 있는 원목 바를 뒤로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진열된 찻잔이 정갈해 보인다. 사장인 듯한 젊은 바리스타가 눈을 마주치며 인사한다.


"어떤 커피 드시겠어요?"


"여기는 드립 커피가 괜찮다고 해서요"


프렌차이즈 아메리카노에 익숙해져 있고, 커피에 대해 문외한이지만 이곳은 드립 커피가 괜찮다고 하여 시켜본다. 마침 이름도 긴 커피 이름이 보인다. 마침 '학교에서 시험 볼때 잘 모르면 긴 답안을 찍으라고 했던'기억이 났다.



아직 내 차례는 아니다. 


이미 내 앞에 3명의 아가씨들이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젊은 바리스타는 주문한 원두가 담겨 있는 병을 열어 아주 세심하게 저울에 올린다. 몇그램일까.. 딱! 필요한 만큼만, 딱 한잔만 나올 정도만 갈려 나온 원두 가루. 그런데, 처음에 나온 가루는 그냥 버린다. 조금이라도 전에 갈았던 원두와 섞이지 않겠다는 바리스타의 의지. 제대로 된 커피는 제대로 된 방법과 원칙에 의해서만 나올 수 있다는 알수 없는 믿음이 느껴졌다.


커피에 들어갈 물을 끓인다. 



포트기에 끓여진 물을 날렵한 주전자로 옮긴다. 와인을 디캔팅 하듯(디캔터라는 용기에 병에 든 와인을 옮기는 행위)모습에 시선이 빼앗긴다. 커피 물의 적당한 온도를 내어 주기 위해 뜨거운 물줄기를 만들어 내는 이 행위는 커피 맛의 기대감을 높이는것 같다. 곧이어 종이 필터에 담긴 원두에 물을 붓는 행위. 빵이 부풀어 오르듯 원두가 부풀어 오르며 신선함을 보여준다. 나의 가슴도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다. 드립 커피를 내리는 장면을 보노라면, 시 공간이 멈추는듯한 착각이 든다. 나처럼 마음이 급한 사람이야 뜨거운 물을 붓고 잠시도 기다리기 어렵지만, 이곳에서는 '기다림의 미학'이 펼쳐진다.




잠시 뜸을 들이는듯 하더니 필터를 통해 걸러진 갈색 커피 액체를 작은 잔에 잠시 덜어낸다. 그리고는 얼굴을 돌려 맛을 본다. 그런데 표정이 좋지가 않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죄송합니다. 맛이 안 나오네요. 다시 해드릴께요"


드립 커피를 만드는데 온갖 정성을 쏟았지만 결국에는 마음에 들지 않아 커피들을 모두 싱크대에 버린다. 그릇 장인이 오랫동안 만들었지만 흠을 발견한 뒤 미련없이 깨버리는 모습과 닮아 있다. 조금의 실수도 틈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하지만..


"아.. 그러면 저희는 다음에 먹을게요. 회사에 들어가봐야 할 시간이라서..."


"결제 취소해 드릴까요?"


"아쉽지만 그렇게 해야 할것 같아요"


바리스타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커피는 새롭게 손님에게 맛보일 수 없었다. 그건 어쩔수 없었다. 직장인에게는 점심 시간이 정해져 있어 더 지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버린 고객이 야속할 법도 한데 바리스타는 오히려 미안해 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맛보여주고 싶다는 장인 정신. 본인의 기준에 맞지 않다면 과감히 포기할 줄도 아는 원칙의 중요성을 느껴 보는 하루였다.











에스프레소. 씁쓸한 인생 뒤에 느껴지는 단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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