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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여기가 찐 야시장이지.

by 배홍정화 Feb 25. 2025



12/20금요일-12/23월요일, 화롄 ; 12/22 일요일

오늘도 느지막이 하루를 시작한다. 날도 좋고 컨디션도 좋았지만, 관광에 대한 욕심이 없기도 하고, -원했던 관광은 사라지고, 득템 관광을 했으니 만족한 상태였고- 몸을 혹사시키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오늘도 핫팟을 먹으러 갔다. 어제의 기억이 좋았기 때문에 어제의 그 가게로 향했다. 동네에서 유명한 맛집에 줄을 길게 서고 싶진 않았다. 내가 제대로 먹는 건 하루 한 끼. 그러기에, 여긴 내 입에 보장된 맛집이니 재방문에 있어 선택이 쉬웠고,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므로.


하지만...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은 이 날의 따뜻했던 식사는 나를 좀 슬프게 했다. 어제와 다르게 김치핫팟을 선택했다. 슬슬 김치가 떠올랐기도 했고 + 어제와 다른 톤의 것을 먹어보고 싶었고 + 나는 맵찔이니까 스파이스 표시된 건 쳐다보지도 않았다. 헤헤, 내가 생각한 김치 핫팟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끓기 전부터 물은 굉장히 맑았고, 그냥 김치 몇 조각이 턱 올려져 있었다. 김치찌개같이 얼큰짭쪼름한 걸 생각한 내 잘못. 굉장히 심심한 김칫국이었다. 김치 몇 조각에 냄비 가득 물. 심지어 사리 면도 잘못 선택해서 쫄병스낵을 삶아 먹는 기분이었다. 


I-MEI 브랜드가 유명하다기에.I-MEI 브랜드가 유명하다기에.


밥을 먹고 동네 슈퍼에 들어갔다. 나의 이 슬픈 혀를 달래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인스타그램에서 알고리즘으로 뜬 '대만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추천하는 과자' 게시물을 봤고, 거기서 본 과자 두 개를 집었다. 에그롤은 비렸고, 땅콩 쿠키는 세상 딱딱했다. 그래도 땅콩 쿠키는 먹자마자 맛있다-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생각나는 맛이었다.


타이베이에서 화롄으로 올 때 기차를 타고 넘어왔고, 내일 여기 화롄에서 이란으로 넘어갈 때도 기차를 탄다. 같은 기차역이다. 하지만, 한 번 동선을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 흠... 이래도 내가 J가 아닌 게 맞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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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는 날 구경하지 못한 역사를 구경했다.


역사에서 나와 오른쪽 방향으로 걸었다. 어디 멀리 가고 싶진 않고, 조금 돌아다니다 들어가고 싶었다. 큰 공원이 보였다. 그리고 앞 쪽에서 음악소리가 들렸다. 비눗방울을 부는 아이들, 뛰어노는 아이들, 놀이터를 지나 잔디밭이 나오고, 큰 무대가 보였다. 그리고 천막으로 세워진 여러 부스가 있었다.


ㅡ오, 동영상 올릴 수 있다는 걸 지금 알았다!! 이걸 몰라서, 그동안 찍은 걸 하나도 못 올렸네!!


어렸을 때 동네 아파트 단지에서 열린 야시장이 생각났다. 쉼터 정자를 기준으로 아파트 길목에 여러 상인들이 왔었다. 지금 시대라면 푸드 트럭이 오겠지만, 그때는 푸드 트럭의 개념도 없었고(199X년), 테이블을 펼치거나 돗자리를 깔아 그 위에서 뭘 팔거나 했던 것 같다. 이 야시장은 마치 그 상위 버전 같았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큰 야시장은 아니었고, 주변을 살펴보니 약 3주간 토-일에 공연도 하고, 영화 상영도 하고, 강연도 하는 그런 행사였다. 럭키-걸! 이런 걸 마주하다니!! 이때 난, 김치 핫팟과 에그롤의 슬픔은 바로 잊었던 것 같다. 단순하면, 이런 게 참 좋아.


사회자의 소개로 2인조 밴드가 무대에 올랐을 때 야시장 가운데 도착했다. 몇 소절 듣고 나도 따라 할 정도로 노래가 쉬웠다. 전국노래자랑처럼 의자를 깔아 두고, 그리고 앞에서 뒤에서 춤추고 소리 지르며 열광하는 관객들이 많았다. 남녀노소 다 따라 부르니 굉장히 흥겨운 '사랑을 했다♬' 급인가 보다 생각했다. 이 공연이 끝나고, 다음 가수가 또 나왔고, 그리고 '인사이드 아웃 2'를 틀어줬다.

노래 들으니까 또 흥겹네.
정말 대단한 가수님. 스타성이 아주 대단했다.


이 가수의 공연이 끝나고 야시장을, 천막을 다 돌아봤다. 그리고 한 가게 앞에 우뚝 멈췄다. 돼지고기!! 바삭바삭한 바비큐! 단백질이다!!! 사진으로 된 메뉴판이 있었지만, 메뉴판에 없는 방식으로도 주문이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옆에 소녀들이 정말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래, 오늘 나의 저녁은 이걸로 하자. 배가 안 고팠는데, 꼭 먹어야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주문할 때 번역기를 보여줬는데 소통의 오류가 있었나 보다. 분명 앞에선 내 것을 썰고 있는데 뒤에서 빵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아잇, 저기!!

        저는 빵은 필요 없고, 고기만 적은 양으로 주세요!! 


외쳤다, 흡사 울부짖음 ㅋㅋㅋ 끝나지 않은 시련. 고기박스를 봉투에 담아주면서 NT10$짜리 사이드(곁들임 반찬) 두 개를 담는 것이다. 어랏, 나 필요 없는데. 


        나 고기만 먹을 건데!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선물. 우물쭈물하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확실히 주문하고자 하는 어설픈 외국인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고마워라, 미안해라.


썰 때의 바삭했던 소리를 잊지 못해.썰 때의 바삭했던 소리를 잊지 못해.


고기 봉투를 들고, 스크린에 상영되고 있는 인사이드 아웃 2를 봤다. 더빙버전이라서 내 귀엔 들리는 것이 없는지라 금세 재미가 없어졌다. 뒤를 돌았는데 La Marzocco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라테를 주문했다. 나 라테 안 좋아하는데 말이지... 


        아, 저 리드는 필요 없어요, 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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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했지만 부드러웠던 라떼. 4/5나 마셨다. 다 마신거지 뭐.


고기를 서서 먹기엔 짐이 너무 많았다. 백팩에 크로스백에 에코백까지. 바닥에 앉아 먹기엔 괜히 쯔쯔가무시가 걱정되었다. 천막들 옆 비어있는 테이블에서 편하게 먹고 싶기도 했지만, 소심한 나는 이건 어려웠다. 무대 의자는 영화를 보는 사람들로 있었다. 숙소에 들어가서 편하게 먹어야겠다 하고 공원 옆을 크게 바퀴를 돌았는데, 오- 니쥬데쓰네! 아, 니쥬=팔레트.


물건을 올려놓고 파는 이도 있고, 앉아서 쉬는 이도 있는 니쥬. 아, 팔레트. 아니 뭐, 낮은 평상 정도?!물건을 올려놓고 파는 이도 있고, 앉아서 쉬는 이도 있는 니쥬. 아, 팔레트. 아니 뭐, 낮은 평상 정도?!


불편하겠지만 이것 또한 추억이지. 이런 야시장을 만났는데, 이런 것도 같이 해봐야 이 공간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생각이 들어 털썩 앉아 주섬주섬 고기를 꺼냈다. 세상 낮은 테이블이라 불편한 건 맞았지만, 현지를 즐기고 있는 내가 괜스레 멋졌다. 여유 있는 척 시작했지만, 정말 여유로웠다. 그리고, 외국인에게 베풀어준 백김치와 유자맛이 나는 사이드 메뉴는 정말 환상이었다. 


동네를 즐기는 방법, 동네사람이 즐기는 것처럼 행동해 볼 것.동네를 즐기는 방법, 동네사람이 즐기는 것처럼 행동해 볼 것.




어린 시절도 생각나고, 

여유도 즐길 있는 소중했던 시간과 공간.

누구도 쉽게 누리지 못할, 말 그대로 환상적이었던 찐-야시장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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