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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모의꿈 Dec 11. 2023

카톡할 사람이 없어서 전 애인에게 연락하고 싶다면

전 남자친구의 빈자리를 채워준 사람들

"오빠, 저녁 먹었니?" [19:21]


이별 후 나는 한 동안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마 이별을 인정하지 못한 부정 단계였던 것 같다.


"응 피곤해서 일찍 잤어" [07:02]


답장이 안오진 않았지만, 대부분 그 다음 날 아침에 짧은 답장이 왔다.  아마 그도 정 때문에 답장을 하긴 해야겠지만, 그래도 너무 빨리하면 연인 같아 보이니까 12시간 뒤에 답장을 했던 것 같다.



tvN의 <환승연애> 시리즈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오랜 연인은 과거의 베스트 프렌드다. 시즌2의 희두와 나연처럼 "우리 헤어져!"라고 말한다고 해서 하루 만에 쉽게 인연이 끊기지는 않는다. 공식적으로 헤어졌다고 해도 언제든지 '내가 다시 연락하면 그가 내 연락을 받아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한 동안은 문자를 보냈다.


그러다 문득 12시간 만에 답장을 받는
내가 구질구질하게 느껴졌다.


회사에 있을 때는 그럭저럭 시간이 잘 흘러갔지만, 정시 퇴근 후 저녁 약속이 없는 날은 극심한 고독함에 시달렸다. 사람이 사라진 빈자리는 생각보다 훨씬 컸다.


이전 글에서 말했듯이 300만 원 정도를 써서 매일 나의 식단을 체크해 줄 피티선생님을 고용했지만, 피티선생님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운동 이야기만 했다. 피티 수업에서 알려주신 운동 정보를 정리해 주시고, 개인 운동에 오라고 독려해 주시는 것이 전부였다.


칼같이 운동 이야기만 해주는 친절했던 나의 피티선생님..




퇴근 후 저녁 6시부터 잠들기 전까지, 혼자만의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것은 고독한 싸움이었다.



오후 6시에 정시퇴근하는 날이면 나는 바로 걸어서 7분 거리에 있는 피티 센터로 갔다. 개인 운동을 하는 날 센터에 가면 훈남(?) 사장님이 반갑게 인사를 해주셨고 50분 정도 수업에서 배운 내용들을 복습하고 40분 정도 유산소를 하면 저녁 8시-8시 30분이 되어 있었다. 간단하게 근처에서 닭가슴살 바를 먹고 집에 가면 9시 반-10시가 되어 있었다. 운동을 하면 더 잠이 잘 와서 바로 잠들 수 있었다.



외로웠다. 나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해주면서 나의 일상에 소소한 관심을 가져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바로 sns, 운동 인스타그램이다.




2022년 2월 개설 이후 현재는 게시물이 100여 개를 훌쩍 넘고 인친 분들도 917명이나 되지만, 처음에는 정말 친구가 0명이었다. 당시에 나는 sns를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스타그램 이름을 짓는 것부터 정말 어려웠다.


엄청난 고심 끝에 지은 인스타명 : going_free 


당시의 나는 자유롭고 싶었던 것 같다. 나를 짓눌렀던 모든 무게들로부터 말이다. ex. 30대의 결혼 스트레스나 사회적 압박 등.. 그리고 자유롭게 운동하며 운동을 내 삶의 일부로 만들고 싶었다는 의미도 있었다. (대충 지은 것처럼 보이지만 나름 철학적 의미를 담았다 ^_^)


첫 게시물을 업로드하기까지 한 달 이상이 걸렸다. 이름을 짓는 것도 오래 걸렸는데, 나름 첫 게시물이니까 좋아요가 0개 눌릴까 봐 조바심에 신중하게 고민했다.


첫 게시물을 올리기 위해서 친구를 섭외해서 밤 12시에 뛰었다 ^_^


지금 생각하면 정말 허접한 게시물이지만, 이 게시물을 올리기 위해서 (일부러) 야밤에 한강을 3km나 뛰었었다. (평범한 운동 게시물을 올렸다가 하트가 하나도 눌리지 않았을까 내심 두려웠다. ;;)


당시 10개 정도의 하트가 눌렸는데, 첫 하트는 정말 정말 정말 신기하고 소중했다.


"와 어떻게 알고 내 게시물을 눌러주었지?"


#오운완 #운동하는직장인


태그를 사용하자 인친분들과의 맞팔이 이뤄지기 시작했고, 내 게시물에 댓글을 달아주시면서 본격적인 '운동 소통'이 시작되었다.




운동 친구 분들은 현실 친구들과는 다르게 나의 사적인 정보를 물어보지 않았다.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언제 결혼을 하는지, 오래 사귄 남자친구와는 왜 헤어졌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그래서 좋았다. 단지 내가 운동하는 방법이나 운동을 하면서 느낀 어려움들에 공감해 주셨고, 운동을 하는 나 자체를 응원해 주었다.




하루는 너무 우울해서 점심시간에 운동 가서 풀업 한 영상을 올렸다. 우울하지 않기 위해 간 운동이었는데, 알차게 잘 보냈다는 댓글에 나도 모르게 울컥했던 적도 있었다. 너무 감사했다. sns에서 만난 인연이 실제 인연보다 소중하게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작은 댓글은 당시 고독했던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매일 아침마다 잠실 석촌 호수를 10km씩 달리며 하루도 빼놓지 않고 게시물을 올리시는 beomjoo 80,

운동, 책, 직장 관련 포스팅을 올리시며 50대에도 꾸준히 관리하고 계시는 두 딸의 아버지 mike_hwang_kr님, 지금은 활동 잘 안 하시지만 당시 나와 꾸준히 식단 소통하셨던 diet_minzy님.


운동 인스타 친구분 들은 나와 운동에 관한 이야기로 일상의 빈자리를 채워주셨다. 


나는 더 이상 핸드폰을 켜자마자 카카오톡에 들어가서 X의 답장을 확인하지 않기 시작했다.


대신 운동 sns를 켜서 운동 게시물을 올리고 운동 인친님들의 게시물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도 운동 스토리로 5km 러닝 관련 내용을 업로드했다.






과거의 나는 타인의 SNS를 보는 것이 내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인스타그램에는 자신이 행복했던 순간들만 자랑하는 공간이고, 슬픔은 없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동 정보가 포함된 게시물을 적극적으로 올리며 서로의 공통 관심사에 대해 풍성하게 대화하는 건 나에게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그렇게 나는 그에게 보내던 문자를
중단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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