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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모의꿈 Dec 04. 2023

500만 원으로 5년 연인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을까

다정하고 엄격한 관리자를 300만 원에 고용하다

이별 후 가장 힘든 것은 매일 연락하던 사람이 사라진 것이다.


"잘 잤어?"

"출근 또 늦었어?"



매일 아침 평범한 인사를 건네주던 사람, 회사에서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주던 사람, 친구 험담 및 친구들의 자질구레한 이슈를 들어주던 그 사람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게다가 난 전화도 자주 하던 편이라서 퇴근 후 저녁이 되면 급격히 허전함이 몰려왔다. 


가장 시급했던 것은 혼자 있는 시간의 공허함을 채우는 것이었다.


"나 누구랑 놀지?"


다시 말하지만 30대 초반의 나의 주변 친구들은 모두 남자친구가 있거나 결혼을 한 상태였다. 친구들이랑 놀고 싶으면 그의 남편과도 같이 놀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물론 같이 논적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눈치 보이기 때문이다.) 약간의 내향적인 성격상 동호회나 소모임에 들어가는 것도 조금 꺼려졌다. 


30대 여성의 솔로 생활은 주변에 같이 놀 여사친이나, 여자 형제가 없다면 정말 외롭다.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돈을 써야 했다.


주말에 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 건 정말 못할 짓이다


"내가 가장 원하는 게 뭘까?"



나의 이별 이유를 생각해 보면 너무 남자친구에게 매몰되어 있었던 것 같다. 서로 200만 원짜리 전문 관계 상담을 받을 정도로 자주 다퉜고, 싸우고 반복하는 과정에 에너지를 많이 써서 나에게 쓸 수 있는 에너지가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가 나를 사랑해 주면 나도 사랑하는 것에 에너지를 쓰고, 사랑해주지 않으면 서운해서 다투는 것에 에너지를 썼다. 그래서 이별 후에는 정말 나에게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허망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었다. 


나는 나와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회복하고 싶은 욕구가 컸다



혼자 있는 동안 수많은 자기 계발 영상을 보았고, 30대는 무조건 운동을 시작하라고 했다. 그리고 혼자 있으면서 주말에 유튜브를 많이 봤는데 어떤 알고리즘에 의해(?) 2021년 미스코리아 진 '최서은'씨가 자주 등장했다. 당시 그녀의 사진이 나의 앨범에 엄청나게 많이 저장되어 있었다.


건강하고 똑 부러지는 이미지의 최서은 님!!
키가 크시고 영어도 능통하시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지만 뭐라도 해야 했다. 한 달간의 무기력을 끊어내야만 했다. 

그래서 그녀가 입은 골프 웨어를 입기로 했다. 


그녀와 나의 유일한 공통점은 170cm의 큰 키. 내 앨범에 수많은 사진은 보면서 어느 날 그녀처럼 건강한 바디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운동을 위한 변화에 내 돈을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1월 초에 여러 곳에서 상담을 받았고, 3주 정도의 고민 후에 막대한 돈을 피티에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친절하고 다정한 피티샵 사장님의 응대에 300만 원을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피티를 시작하면서 좋은 점은 3가지였다.


1. 허전하고 외로운 시간을 운동으로 채울 수 있다. (매일 2시간씩 시간 순삭 가능)

2. 나에게 다정하고 친절하게 말해주는 훈남(?) 관리자가 매일 카톡으로 뭐 먹었는지 물어봐주신다.

3. 술 먹자는 친구들에게 "나 피티 받아"라고 말하면서 어쩔 수 없는 거절이 가능하다.


당시 회사인 강남역 근처 피티샵을 5군데 정도 돌아다니면서 상담받았는데, 그중 하나도 할인은 안 해주지만, 가장 다정한 말투를 사용하며 신뢰감이 넘치는 피티샵 사장님께 결제를 하게 되었다. 아마도 이별 후 한 달 동안 나는 어떤 다정함에 목말라있었을지도 모른다....^_ㅠ



강남역 근처 피티 비용은 1회 당 77,000원. 처음엔 20회를 결제했으나, 세 달 뒤에 20회를 또 결제했으니 총 1,386,000원을 두 번 결제한 셈이다. 총 2,772,000원을 피티 수업 비용에만 사용했다. 그렇게 운동복과 닭가슴살 등을 구매하니 목표 금액 300만 원은 쉽게 채워졌다.



500만 원으로 5년 연인의 빈자리가 채워질까? 일단 300만 원으로 퇴근 후 매일 2시간 씩 갈 곳은 생겼다. 그리고 매일 나에게 뭐 먹었는지 물어봐주는 다정하고 엄격한 훈남(?) 피티 선생님도 생겼다. 나의 생애 첫 피티 #오운완 이었다.



식단 첫 주에 먹은 풀떼기 식단. 300만 원은 샐러드만 먹어도 배부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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