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도미노
부평 문고가 영업을 종료한 후, 한동안 부평 문고에서 구매한 책을 찾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함께 했던 추억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동생 방을 뒤적거리다가 한 권의 책을 발견했다.
제목은 <고양이 전사들>. 책 위에 쓰여 있는 날짜를 보면서 나는 "와, 이 책은 2011년이니까 나 5학년 때 산거네. 읽지도 않을 거면서"라고 말하며 멋 쩍게 웃었다. 나의 말에 아빠는 "그 책 기억 안나?"라고 하셨다.
책 한 권으로 또 한 번 추억 여행을 간다.
중학생 시절, 몇 학년인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우리 반 옆에 바로 도서관이 있었다. 교실에 들어가려면 도서관 게시판을 지나야만 했다. 어느 날이었다. 점심시간 복도에서 놀다가 도서관 게시판에 붙어있는 독서 퀴즈를 발견했다. 그 당시 나는 독서보단 책 자체를, 빌려 읽는 것보단 책을 소유하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독서 퀴즈라는 제목은 나의 독서 습관이 들통나기 좋은 함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관심 없는 척 어슬렁거리며 게시판 앞을 서성였다. 독서 퀴즈는 랜덤으로 책 내지 중 한 페이지를 붙여 놓고 책 제목을 맞추는 퀴즈였다. 중학교 도서관답게 대부분의 것들은 명작이거나 교과서에 실린 작품들이어서 학생들이 쉽게 맞출 수 있는 책들이었다. 하지만 딱 하나, 아무도 맞히지 못한 책이 있었다. 근데 그걸 내가 맞췄다. 그 책이 고양이 전사들 이었다. 나는 그 상황이 어렴풋하게만 기억이 난다.
중학생이었던 내가 아빠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무도 못 맞춘 <고양이 전사들>을 내가 맞췄어. 사실 그 책 안 읽었는데 책 문체랑 주인공 이름들을 보니까 생각나는 거야. 사서 선생님이 나보고 어떻게 알았냐고 하시길래 그냥 우리 집에 그 책 있다고 했는데 엄청 놀라셨다?"라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나서의 아빠의 반응은 기억이 난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면서 대단하다고 하셨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아빠의 표정은 서점비가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뿌듯해하셨던 것 같다.
사실 그 책은 지금까지도 읽지 않았다. 내 이름이 적힌 그 책은 우연히 동생의 눈에 들게 되면서 동생이 재밌게 읽었다고 한다. 동생의 책장에는 어쩐지 나는 <고양이 전사들> 1편을 샀는데 전 시리즈가 있었고 게다가 <고양이 전사들> 영어 원서도 있었다. (읽을 줄도 모르는 원서는 왜 샀는지 의문이지만) 나는 이런 일이 좋다. 책을 꼭 정독하지 않아도 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들이 언제나 사랑스러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