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내내 밤을 새가며 그림을 그렸다. 매번 느끼는 일이지만 예술가는 참 고독한 직업이다. 세상에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서 온전히 겪어야 하는 그 인고의 시간은 예술가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주 고요한 밤, 방 안에서 혼자 선을 긋고 있노라면 세상과 단절되며 오롯이 나와 내 작업만이 남게 된다. 나는 작은 이 방 안에서 몇 번이고 부평문고를 만났다. 내가 세상과 다시 연결되는 순간은 이 그림책이 완성되어 세상에 나오게 됐을 때니까. 인내심을 가지고 이 작업을 완성해야만이 세상과 나를 연결해 주는 고리가 생기는 것이다.
서점이 누군가에게 쓴 편지로 전개되는 이 그림책의 제목은 <사라진 곳으로부터>가 되었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그 목소리가 사실은 사라진 곳에서 나온 음성이었다는 것을, 사실은 그게 서점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소중한 이야기로 책 작업을 할 수 있는 날은 정말 지금 밖에 없을 것만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더 잘 해내고 싶었다. 하지만 언제나 마감이 있는 법. 시간에 쫓겨 내가 원하는 만큼의 퀄리티는 나오지 못했다. 손그림을 고집하는 나는 마음에 안 들면 컨트롤+Z를 누를 수 없어 새로운 종이를 꺼내는 일 밖엔 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다시 그릴수록 그림은 좋아져갔지만 시간은 촉박했고 마감에 맞춰 완성하는 일 또한 프로페셔널한 작가가 되는 길이기에 완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책이 완성되고 인쇄와 제본을 거쳐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성을 지닌 형태로 만들어졌다. 부평문고가 내 손안에 들어왔다.
가장 먼저 부모님께 보여드렸다. 나와 부평문고를 함께 한 추억의 장본인들께. 엄마가 처음으로 내 책을 보고 울컥하셨다. 지금까지 한 3-4권 정도를 보셨는데 반응은 최고로 좋았다. 반면 아빠는.. 말을 아끼도록 하겠다. 확신의 T이시기 때문. (나도 아는 부족한 점을 꼬집으셨다. 흥이다.)
부모님께도 좋은 반응을 얻어(?) 자신감이 조금 붙은 나는 다음 날 전공 시간에 파이널 발표를 했다. 발표를 통해 조금의 칭찬을 들었다. 이제 다 끝났다. 종강을 하면 이 마음도 홀가분 해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한 발이 남았다. 지금 타이핑하고 있는 이 활자. 진정으로 미련을 버리기 위해서는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이 끝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림책만으로는 부족해, 나와 우리 가족의 추억도 한 곳에 정리되어야지만 괜찮아질 것 같았다. 확신은 없지만 계속 써내려가 본다. 부평문고가 담긴 그림책과 우리 가족이 담긴 에세이를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