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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유진 Oct 14. 2024

너가 되어보기

사실 리서치를 하면 할수록 씁쓸해졌다. 내가 아는 서점의 시간은 30년 중에 절반 정도이고 기록으로 남은 것도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제일 찾고 싶었던 것은 부평문고가 처음 개업했을 때의 모습이다. 어디 인천 신문이나 부평 지역 신문에 나와있진 않을까 했지만 찾기 어려웠고, 부평문고 사장님과 접촉해볼까 싶었지만 너무 크게 일을 벌이는 것 같아 자중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부평문고가 사라지게 된 원인에 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예고 입시를 시작한 2015년부터는 예전처럼 부평문고에 가지 못했다. 일주일 내내 미술 학원에서 사는 삶을 거의 일년 동안 지속했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고 집에 있는 주말에도 인터넷으로 주문한 교재로 인강을 들었다. 여유롭게 서점에 가서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일상이 아니라 특별한 날이 되었다. 실질적으로 내가 부평문고를 들락날락한 날들을 떠올리는 일이 끝내 부평문고에 대해 이야기 할 자격에 대해 묻는 자기 성찰이 되었다. 고맙고 그리운 마음에서 미안한 마음이 되었다.

이 성찰이 그림책 작업의 기틀이 되었다. 큰 스토리는 내가 지금껏 회상해 온 것처럼 과거에서 현재로 이르는 타임라인을 가진다. 희망찬 과거의 서점이 문을 닫게 되는 간단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 대한 스토리보드를 짜느라 한 학기의 절반을 넘게 썼다. 더 좋은 글과 더 좋은 이미지를 찾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나는 그림 90%에 글 10%의 비율을 가진 그림책을 좋아한다. 비율이 적을 수록 글이 가지는 힘 또한 커진다. 짧지만 강한 힘을 가질 글에 어떤 말을 담을까 고민하던 끝에 편지 형식을 택하기로 했다. 글을 통해 부평문고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전하기로 했다. 그러나 부평문고에게 몇 번의 편지를 써도 도통 마음에 썩 들지 않았다. 편지의 내용과 어울리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 또한 어려웠다. 그러면서 편지의 형식을 띠면서 글이 짧지만 애도를 전하는 시를 계속 찾아보았다. 끝내 나는 내가 부평문고가 되기로 했다. 서점의 입장으로 나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다. 나와 함께 했던 시간들과 나를 기다렸던 시간들을 적어나갔다. 그리고 가제는 <고>가 되었다. 고인을 의미하는 ‘고’이자 문고의 ‘고’이자 고독사의 ‘고’. 많은 의미를 넣어 가제를 정했고 <고>라는 제목 아래에 스토리보드 작업을 계속했다. 결국 제목은 내 그림과 어울리지도 않고 의미도 느껴지지 않는다며 기각 당했지만, 제목이 사라진 순간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그림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스토리보드’에서 스토리보드 수정, 스토리보드 진짜, 스토리보드 최종?, 스토리보드 최최종을 거쳐 ‘스토리보드 완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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