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고...” 대구에 달서고를 ‘달고’라 요약해서 부른다던데, 나는 태어날 때부터 달고 못 나왔다고 섭섭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아들을 바라는 집에 첫딸로 태어나서 남자 이름을 짓고 사내아이처럼 커트 머리에 바지만 입고 자랐다. 나보다 여동생들은 더했지, 여자 이름이 참진(眞) 사내남(男) 진짜 사나이, 진남이가 뭐란 말인가?
고모네도 달고 나온 녀석이 두 명, 삼촌네도 달고 나온 녀석이 두 명, 우리 집에만 달고 나온 녀석이 한 명도 없었다. 할머니와 엄마는 그 달고 나온 것에 많이 집착하셨지만, 엄마는 결국 아들을 못 낳고 세 자매만 낳아 서러움을 당하셨다.
나의 탄생 이야기는 아버지 생일날 만삭의 몸으로 물을 이고 산동네를 올라오셨던 어머니가 물동이를 내려놓는 순간 양수가 수돗물 나오듯 터져 버렸다.
그때 할머니는 “오늘 애비 생일인데 둘이 같이하면 되겠네.”라고 하셨다. 그때부터 진통이 시작된 엄마는 삼일 뒤에 나를 낳았다.
돈이 없어서 병원 갈 형편도 안 되고 외할머니는 딸 죽인다고 빨리 병원 가라 하고, 친할머니는 “병원 간다고 애가 나오냐 아플 만큼 아파야 나오지” 모진 말로 엄마를 상처 주셨다.
아버지는 장모님 눈치 보랴 어머니 눈치 보랴 엄마 신경 쓰라 삼중고에 시달리셨다.
어머니는 양수가 터져 말라 버린 아이 낳느라 사흘간 방바닥을 기어 다니며 죽을 고생을 하셨다. 물이 말라버려 나오지 않는 아이를 낳기 위해 날계란을 계속 드셨다는 엄마.
겨우겨우 낳았는데 내가 온몸에 계란을 뒤집어쓰고 나왔고 일주일을 씻겨도 미끈거렸다고 말씀하셨다.
엄마는 그렇게 말하지만 ‘믿거나 말거나’다.
내 이름은 선욱이다. 착할 선 빛날 욱 그리고 욱할 욱.
관음사 주지 스님이 지어 주셨다. 내 이름을 연결하여 보니 선한 마음으로 빛나는 삶을 살자!
그리고 욱한다는 것은 내가 불의에는 욱하는 최소한의 양심은 가지고 살고자 한다.
그리고 영어 이름은 빅토리아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들었던 여왕이다.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주인공 덕선이가 나와 같은 나이의 이야기라 공감하며 보았던 드라마이다. 주인공 덕선이가 2-18반 정환이가 2-15반이다. 18반 15반? 지금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하다.
1971년생은 대한민국 최고의 인구수를 자랑하며 우리 초등학교 때는 애들은 많은데 교실이 없어서 오전 오후반으로 나눠서 등교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88올림픽이 열렸다. 덕선이는 88올림픽 피켓걸에 뽑혀서 한복 입고 마당에서 한밤중에 연습하는데 정환이가 귀신 같다고 놀린다.
학창 시절은 교복 자율화 시대여서 사복을 입고 학교에 다닌 세대였다. 주인공 덕선이가 대학생 언니의 청재킷을 몰래 입고 학교에 갔다가 엄마와 두 자매가 벌이는 난투극을 보며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대입 볼 때 최고의 경쟁률이었다. 학원이 최고의 호황기였고 우리가 대학을 가서 술을 마실 때 술집이 최고로 흥청거렸고 영화를 볼 때 옷을 살 때 경기는 최고를 찍었다.
희한하게 우리가 40대가 되어 집을 살 때도 집값은 최고를 찍었다. 단군이래 최고의 인구수를 자랑하는 그들은 50대에 들어섰지만, 여전히 젊고 매력적이다.
X세대는 우리가 20대였던 1990년대 야타족, 오렌지족 등 많은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지금의 MZ세대보다 더 큰 충격을 던진 신세대의 원조였다.
X세대는 신세대라 불리며 탈권위, 개성 추구, 솔직함으로 한국 사회의 패러다임을 주도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X세대가 청소년기를 보낸 1980년대와 1990년대의 한국 사회는 3저호황(저유가, 저금리, 저달러)를 바탕으로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었던 시기였다.
경제 호황에 따른 사회 전반에 걸쳐 활발한 소비 활동이 이뤄졌으며 X세대는 꼭 필요하지 않아도 즐거움과 자기표현을 위해 소비하는 첫 세대가 됐다.
나는 90학번이다. 우리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그 당시 갓 스물이던 서태지의 ‘난 알아요’ 가 나오며 대한민국 사회에 문화적 충격을 주기 시작했다.
그 외에도 박진영, 방시혁, 나영석, 김태호, 유재석 등 그 외에도 수많은 연예인-X세대가 있다.
X세대는 팬클럽 1세대로 덕질 소비의 시초이자 주역이며 HOT가 출현하면서 '오빠부대'를 만든 첫 세대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 홍콩배우 덕질부터 연예인 덕질 1세대라 그런지 나의 딸이 방탄소년단 아미로 활동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하며 지지한다.
X세대는 아이들 키우는 엄마가 되었어도 나의 즐거움을 위해 드라마 덕질도 하고 연예인 팬카페 활동도 하며 문화적 소비를 하며 살아간다.
이렇게 소비를 즐기며 살았지만 대학 졸업할 때 양복사고 넥타이 사고 취업 준비할 즈음 IMF 사태를 맞이했다. 국가적 경제위기라는 커다란 파도에 휩쓸려 우리의 운명은 갈리게 된다. 그렇게 가까스로 취업하고 살아냈다. 그러나 10년 후 다시 2008 글로벌 금융 위기가 닥친다.
왕성한 경제활동을 이어가던 시기에 두 차례의 경제위기를 모두 경험한 것이다. 그 이야기들이 드라마 시대적 배경으로 나오면 자연스럽게 몰입하고 공감하게 된다.
응답하라 1988 주인공 덕선이네 삼남매 아버지 성동일은 워낙 사람이 좋아 친구 빚보증을 잘못 서서 정환이네 집 지하 방에서 살게 되고 월급도 계속 압류당하는 상태라 다섯 식구가 겨우 먹고 살 정도로 생활이 어렵게 나온다.
둘째 딸 덕선은 언니와 남동생 사이에서 늘 불만이다. 생일을 해마다 언니와 함께 하는 덕선이는 결국 폭발한다.
“왜 나만 덕선이야, 왜 나만 덕선이냐고!!
언니는 보라고 얘는 노을인데, 내 이름은 왜 덕선이냐고!!”
-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덕선이 대사 중
덕선이네 집과 우리 집은 닮은 점이 참 많다.
우리 집은 할머니 엄마 세 자매 여자 5명에 아버지 혼자 남자였다.
할머니와 엄마는 고부갈등이 잦았고 딸 셋은 모두 자기주장이 강하고 말다툼을 시작하고 떼를 부리기 시작하면 정말 감당하기 어려웠다.
동생은 내 이름은 왜? 진남이냐고 왜? 차별하냐고 했다. 동생은 사춘기를 반항하며 부모님의 관심을 받았다. 여자 다섯 명 사이에서 아버지는 참 많이 힘들고 외로우셨다.
누구보다 선하고 사람 좋은 우리 아버지다. 어린 시절을 기억해보면 내가 원하는 물질적 풍요로움은 없었으나 아버지가 주셨던 자신의 진심을 담았던 사랑으로 마음이 따뜻해진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지나간 청춘의 이야기다.
청춘에는 모르는 것 투성이고 서투르고 어리석었다. 지나간 청춘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지금의 이해력을 가지고 다시 청춘을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에게도 그런 청춘이 있었다.
다신 돌아갈 수 없는 시간! 뜨겁고 순수했던 그래서 더욱 그리운 그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