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이 넘었다.
친정엄마는 당시 4살 때 할머니 등에 업혀서 흥남부두에서 매러디스 빅토리호 타고 탈출하셨다.
외할아버지는 딸들과, 며느리 손주들 17명을 데리고 피난길을 떠났다.
서로서로 이름을 불러가며 헤어지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애를 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당시 할아버지는 40대라 힘이 있어서 가족 17명 모두를 한 명도 남김없이 배에 태웠다.
정말 대단하신 우리 할아버지!!
마지막 한 명 나의 이모부터는 배에 못 태운다고 했는데 온 가족들이 우리 한식구라고 제발 태워달라고 사정사정하여 배에 태웠다.
1950년 12월 23일 그 추운 겨울 빅토리호에 1만 4천 명이 탔다.
그 배에 나의 엄마와 외삼촌 이모들 숙모들 모두 17명이 탔고 내가 다니는 교회 김집사님 가족들도 탔고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님도 탔다.
빅토리호 선장은 사람들을 더 태우기 위해 무기를 버렸다.
크리스마스 동안 3일간의 항해 속에서 5명의 새 생명 (이름 김치 1-5) 애기들도 태어났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이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한 매러디스 빅토리호는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우리 가족의 실화는 국제시장과 똑같은 영화의 한 장면이다.
영화 국제시장은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격변의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온 우리 시대 아버지 ‘덕수’ 이야기이다.
그는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평생 단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이 없다.
6.25를 거치며 국제시장에 자리를 잡고 파독 광부로 베트남전으로 목숨을 걸었다.
오직 가족을 위해 굳세게 살아온 우리들의 아버지 이야기이다.
주인공 덕수가 국제시장 근처에 살면서 할아버지가 되어 회상을 하면서 말한다.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영화 속 덕수가 살던 집이 나의 고향이다. 나의 고향은 부산 아미동이다.
일본에서 태어난 아버지는 해방이 된 후 일본에서 나와 부산 아미동에 터를 잡으셨고 어머니는 이북에서 태어나 4살 때 흥남 부두에서 부산으로 오셨다.
그렇게 두 분은 만나셨고 우리 세 자매는 그곳에서 태어났다. 우리는 결혼 전까지 다 아미동에서 살았다.
6.25 한국전쟁 당시 부산은 이미 피난민이 넘쳐나고 있어 당장 머물 곳도 없는 형편이었다.
갈 곳 없는 수많은 피난민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의 공동묘지였던 아미동 산자락에 터를 잡아야만 했다.
일본인들의 비석과 상석을 눕혀 땅을 편편하게 고른 뒤, 공동묘지에 천막을 쳤다.
아미동의 무덤에 있던 비석은 벽돌과 계단이 되었다.
실제로 부산 아미동 공동묘지에 머물던 피난민들은 전쟁이 끝난 후 고향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일부는 아미동에 남기도 했다. 그 뒤 가난한 사람들이 몰려와 묘지 위에 집은 더 늘어났다.
현재까지도 아미동은 옛 모습을 간직한 채 남아있다.
아미동의 골목길을 걷다 보면 여기저기에서 쉽게 비석을 볼 수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땅 밑에 죽은 사람이 누워있는 비석 마을 아미동.
내가 뛰어놀던 곳이 공동묘지였던 곳이었다니 난 전혀 알지 못했다. 최근에 내가 다녔던 아미초등학교 근처가 아미동 비석마을 문화재로 지정된 후에 알게 되었다.
어릴 때 등산 코스와 맞먹는 끝없이 이어진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공동묘지 자리라 그랬을까? 또 밤이면 얼마나 무서웠는지 제발 무사히 귀가하게 해 달라며 신께 기도하며 올라 다녔던 계단 골목길이다. 우리 집 옥상에서 내려다보면 용두산공원과 자갈치 국제시장 영도다리가 보인다.
그 당시는 지긋지긋하게 싫었던 산동네 아미동이다.
중고등 사춘기 시절 친구와 사귀지도 못하고 외톨이로 늘 우울하게 살았던 때였다.
할머니도 싫고 엄마도 아빠도 다 싫고 어린 동생들도 싫고 말도 안 하고 까칠했던 나였다.
우리 세 자매는 지금도 꿈을 꾸면 아미동 산동네가 배경이 된다.
엄마가 화장하고 외출하면 우리를 버리고 갈까? 하고 불안했다고 막내는 말한다.
우리 부모님은 그래도 우리를 버리지 않았고 그 어려운 시절 다 지나가고 지금은 옛 추억이 되었다.
그곳에서 우리 세 자매는 대학 졸업하고 결혼까지 했다.
우리 사는 형편을 알면 다 뒤로 물러설 줄 알았던 세 자매의 남자친구들이 결혼을 허락받기 위해 갈비와 과일 등을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간 그 산동네 아미동이다.
부모님은 그래도 우리 세 자매와 함께 살던 그 시절이 참 행복했다고 말씀하신다.
우리 세 자매가 삶의 희망이었다고 하신다.
영화 국제시장은 ‘가장 평범한 아버지의 가장 위대한 이야기’이다.
이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고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다. 우리 아버지는 날 위해 모든 것을 바치신 사람이다. 지금 내 옆에 계신 부모님께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