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영우 또한 추위와 어둠 속에 길 위를 떠도는 것으로 오래 전부터 고양이가 있는 세계에 머물고 있었던 거였다.
이 문장으로 나는 이 책을 기억하려고 한다. 3개의 단편 중 2번째에 나오는 문장이다. 하지만 1번째와 3번째의 단편에도 적용될 수 있는 대위법적인 문장이다.
읽고 나서는 서사만 남지만 읽는 중에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에는 예리함이 있었다. 다들 일상에 매몰되어 바쁘게 살아가는 와중에는 명확하게 하기 힘든 뭉툭한 꿍얼거림이 있지 않나? 작가는 그 모호한 감정들을 자신의 언어로 적확히 표현한다. 그 꿍얼거림은 사고와 감정의 혼합체다. 하지만 그 사고가 작은 것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려고 덮어두고 지나가는 나의 습관의 한계를 긁어주는 느낌이라서 읽으면서 흥미로웠다.
그리고 소재를 통해 현 시대를 잘 포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1번째에선 MZ세대를 떠올리게 하는 서술을 테레사의 많은 자아들에 빗대어 녹이고 있었다. 2번째에서는 허용된 최대한의 사소함인 고양이를 둘러싼 현 시점의 트렌드가 보였다. 3번째에는 앞으로도 지속될 안락사에 관한 고민이 깃들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3번째에 드러난 현실적인 문제들이 가장 생동감 있게 그려졌다고 느꼈다.
고양이는 이를테면 부직포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아니면 3M 테이프. 편의를 충족시키는 미약하지만 분명한 유효함. 누군가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하면 그것만으로는 아무 의미도 없다. 하지만 그 누군가와 이어지고 싶냐 아니냐에 따라 선택적으로 우리는 그 혹은 그녀와 가까워져볼 수도 있고 모른 체할 수도 있는 것이다. 도도한 척 굴지만 미처 다른 존재를 사랑하고 싶었던 소망의 투영. 고양이의 태도가 대표하는 같이 있는 데 같이 있고 싶지 않은 그런 이중적인 마음. 그러나 그 사소함은 얼마간 일방향성을 전제하는 것도 같다. 나는 나의 마음을 마음껏 비치지만 상대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기엔 두려운 그런 마음까지.
‘편의’라 함은 3번째 단편의 죄책감에서도 드러난다. 독고씨의 아들은 반복하여 아버지를 탓하는 듯하며 사실은 자신에게 반복하여 죄책감을 주입하던 것이다. 죄책감까지는 아니더라도 편하게 다리를 펴고 앉지 못하는 마음. 아빠다리나 무릎을 꿇어앉는 식으로 불필요할지도 모를 예의를 마땅히 관두지 못하는 마음. 그것은 자신의 애도가 장례식의 규모나 사회적 친분에 의해 정의될까 안절부절 못하며 미리 예비하는 차원에서 아버지의 뛰어나진 못했던 사회적 삶을 계속 상기하는 것으로 지속된다. 하지만 편의라는 것이 항상 근본적인 필요를 만족시켜주진 못하듯, 자신에게도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슬퍼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독고씨의 아들은 인정하길 어려워한다.
1번째에선 고양이를 개인적인 존엄으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자아실현을 이룩했던 못했던, 언제나 생활이 삶보다 앞설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어느덧 기꺼이 공감한다. 그러니 다른 누구의 특수한 자아를 빌리지 않더라도, 각각의 생활은 어쩌면 충분히 자신 앞에 떳떳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직 발견하지 못한 나만의 고양이는, 찾아온 아침이 봄에서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나의 눈에는 귀엽고 소중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인간에게 있어 고양이는 호랑이 같지 않고 그저 귀여울 뿐이더라도, 그것으로 이미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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