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그들은 수백만 년이 흐른 후에도 남아 있을 유일한 재료,
즉 돌로 도시를 세웠다.
〈메시지〉에서는 ‘언어와 시각기록으로 남겨지지 않을 모든 풍경들은 결국에 낭비되는 건가’ 했다. 〈은랑전〉에서는 덕성이나 의지와 무관하게 개인의 재능과 역량은 세상에 의해 방향성이 결정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혼령이 돌아오는 날〉에선 삽으로 은유되는 과거를 향해 손을 뻗치는 다정한 태도와 기록의 의미란 어디서 발생하는지에 대한 작가의 입장이 돋보였다.
〈추모의 기도〉와 〈비잔티움 엠퍼시움〉은 치밀한 상상력이 즐거웠다. 전자에서는 그저 베댓을 먹고 싶은 경향성 따위의 무목적을 논리로 포장한 변론이 기능케 하는 익명성의 절망스러운 면을 끝까지 밀고 나가서 좋았다. 후자에서 탕젠원과 소피아는 분명 모두 설득력 있는 캐릭터인데 묘하게 균형을 잃은 느낌인 게 거슬리면서도 좋았다.
자신의 역사적 배경과 서사적 상상을 결합한 면도 책 전반에서 눈에 띄었다. 보편적인 얘기가 아닌 개인적인 얘기에 바탕을 뒀다는 게 느껴져서 소설을 통해 나름의 방식으로 사회와 씨름하고 있구나, 철학자들처럼 한탄만을 늘어놓는 것과는 거리가 있구나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