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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hnnap Feb 16. 2024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216. “그래도 그것이 당신의 마음이 원하는 것 중 하나다.”


  ‘나’가 읽은 수많은 책의 제목이 나열되지 않고 일축되었듯, 이 책도 즉각적인 충격을 주진 않는다. 일단은 지나가고 볼 책이다. 또 한 번 술술 읽었다. 〈모모〉와 〈태엽 감는 새〉를 상기했다. 우물과 인물(시나몬 ~ 옐로 서브마린 요트파카 소년)이 있었다. 벽이 콩팥 모양이라고 했는데 강줄기는 깨진 경주 얼굴무늬수막새처럼 동쪽에서 좌하단으로 이어지는 (그러나 상류가 어느 쪽이었더라?) 모습을 상상했다. 벽 너머는 마인크래프트 건축 모드처럼 평지일 거라 은연중 떠올렸다. 공교롭게도 오랜만에 알고리즘에는 070 shake가 떠서 skin and bones를 들었지만 무드는 부활 – 가능성에 가까운 것 같다.

 이름을 알려주지 않은 인물들. 귀의 깨물림은 오카다 도오루의 뺨에 생겼던 검버섯을 떠올리게 했다. 그림자와 다중현실에 대한 생각들을 무겁지 않게 잘 풀어냈다. 침대 위의 그림자는 눈코입이 있을까 없을까. 4차원 공간을 상상하려 하다보면, 3차원 공간 속의 내가 4차원 시공간에서 초시간적으로 존재하는 부동실체의 한 단면일 뿐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정지한 일반성과 특수성의 집합 중 무엇이 더욱 와 닿는 내 모습일지는 잘.


 약동 약동 약동


 마음과 의식의 관계에 대한 서술이 직관적이서 좋았다. ‘너’는 열일곱 살 때 옐로 서브마린 소년처럼 벽 안쪽으로 이행해 간 걸까? 현실이 구축되어 가는 방식에 대해 짧게 생각해본 적이 있다. 세계가 의식 속에서만 구성되는 것이라면 어떻게 사회적으로 통일된 채 세계는 인지되는 것일까. 사각이 존재하지는 않을까, 있다면 어디 있을까. 어둠 속에서도 그림자가 늘 존재한다는 설명. 멈춰있는 시간 속에서 여전히 순환한다는 서술은 일리가 있다. 모든 것이 동시적으로 일어남에도 선형적으로 인식하는 인간 조건 앞에서는. 말로 드러나지 않은 상상이 현실에 미치는 제로가 아닌 영향력에 대해 나는 가설적으로 열어두는 편이다.

 4일에 걸쳐 띄엄띄엄 읽었다. 점심도 안 먹고 아침부터 15시까지 읽는다는 설정은 꽤나 부러웠다. 배움이 없는 학교를 떠나서 책‘이나’ 읽을 생각을 해봤었다. 하지만 책과 병존할 수 있는 실제적인 삶을 위해 학부 졸업은 필수불가결하다는 데 동의했다. 가치관이라는 것과 어떤 세상을 믿을지는, 더욱이 성인이 된 마당에, 내가 정하기 나름이다. 생활을 유달리 창조하는 수준에 이른다면 따가운 비평은 불가피할 것이다. 다만, 나의 마음은 깊이를 원한 적이 있었나? 나의 마음은 나일 필요가 없는 일들을 찾고 있는 건가?

 마땅히 내게 이미 왔어야 할 연락을 여전히 기다리고 있을 때 아주 한참을 그 근방에서 서성이게 된다. 왜냐하면 애써 용기 낸 것들이 거절당하기를 기도하기도 했었다. 충동과 용기는 서로 닮아 있어서 나는 언젠가 낮게 숨죽이고 있던 용기를 새로이 발견했다. 내게 보다 건전한 것은 타인에 대한 억지스러운 호기심보다 무심함이었단 것도 인정했다. 꿈이 뭐냐는 질문. 나의 오래된 꿈은, 그런 게 있다면, 무엇일까. 수요일에 태어난 나의 오래된 꿈은 무엇일까, 내게 그런 것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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