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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Nov 28. 2018

나라가 망한다는 일은

영화 <국가부도의 날>


*본문은 주관적인 견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극의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삶도 가정도, 지탱되기 위하여 필수 불가결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사랑도 신뢰도 아니요. 바로 돈이다. 그렇다 하여 물질이 최선인 일은 결코 아니다. 다소 사회학적인 견해일지언정 사회의 시스템이 돈이라는 물질적 재화로 구성되어 있음에 이견이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 악몽 같은 과거를 되짚어봐야 하는가, 그 의의를 물어야 한다. 부끄러운 기억을 털어버리고,  지금 이 시점 새 출발을 한 대한민국에게 필요한 지적인가를.





 1997년, 한국은 국제금융위기를 겪는다. 그 시절 나는 고작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으나, 그 전과 후를 똑똑히 기억한다. 삶의 궤적이 통째로 바뀐 셈이다. 난 어떤 액션을 취할 힘도 아이였으니까. 그러나 정부는 한시현의 말마따나 나라가 망할 위기에 직면했으니 ‘어떤 액션’을 취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나라는 망하지 않았고 이름깨나 들어보았을 여느 기업은 줄줄이 도산했다. 


 망한 것 중 큰 기업으로는 대우가 있다. 실제로 대우의 김우중 회장은 자수성가의 아이콘으로 유명했는데, 그런 맨손 신화의 특성상 사업에 따르는 여러 신뢰를 바탕으로 했을 것이다. 그 신뢰는 자금과 얽혀있고 곧이어 한국경제가 망했다. 대우는 버틸 수 없었다. 사람들의 인식에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슬로건이 박힌 것도 이 때다.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위기를 풀어간다. 가장 먼저 위기를 감지한 것은 한국은행의 팀장 한시현(김혜수). 위기를 감지하고 그 위기에 베팅하는 금융계 종사자 윤정학(유아인). 작은 공장을 돌리며 사는 갑수(허준호)가 있다. 한시현은 국가 재난 상황에 대비하여 꾸려진 대책팀에 재정국 차관(조우진)과 마찰한다. 이런 재정문제에서는 단순히 철저한 계산으로 상황을 타파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남의 돈 빌려 펑펑 쓰다가 갚지 못해서 x 되게 생겼습니다.


 감독은 1997년을 겪지 않은 젊은이들을 위하여 단순한 설명을 펼친다. 아들이 구속되어 심기 불편한 대통령 말고, 관객에게 해주는 말이다. 1997년이 바로 그랬다. 백화점 앞에서 문을 열어주고, 엘리베이터 층계를 눌러주던 사람이 전부 정직원이었다. 잘릴 걱정이 없고 일자리는 넘쳐나며 영화 도입부에 나오듯, 면접만 보아도 돈봉투를 줬다. 경제가 호황이라고 했는데 돈은 어디서 벌어오는지 아무도 몰랐다.


 그렇게 잔치는 끝났다. 부채를 막으려 집을 팔고 너나 할 것 없이 한강에 몸을 던졌다. 채무자들은 도망을 다녔다. 그럼 위기의 해결 방식은 어떠한가. 당시 무능한 정부는 탁상공론의 전형적인 예로 영화에 그려졌다. 그러나 화살은 정부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기초하여 질문을 던진다. 윤정학이 달러와 더불어 빚진 사람들의 집을 몽땅 사들이는 것을 볼 때 관객은 도덕적 해이를 겪는다. 감독이 윤정학이라는 인물에게 자못 정의로운 감정을 부여한 것은 그러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그는 돈을 벌었음에도 사람들의 절망에 기뻐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관객으로 하여금 혼란을 야기한다.



 반면, 단 한 번도 한시현의 주장이 통과되지 않는다. 여자라서 그런가, 감정이 들어가서 그런가. 타당하지 않은 이유로 타당성을 입증하는 궤변 앞에 속수무책이다. OECD반열에 오를 정도로 영향력 있는 국가가 되었다지만 시대도 옳지 않았고 통념도, 의식도 바닥에 머물러 있었다. 대한민국은 여러 번 주어진 기회를 결정권자의 욕심에 의해 걷어찬다.


 그로 인하여 희생은 아래로, 다시 아래로 내려가 무지한 갑수가 얻어맞는다. 거래처 사장에게 몹쓸 배신을 하는 것이 정당한가. 바른 것이라고 하면 응당 바르지 않다. 그러나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나라가 사람들의 약속을 보장하지 못하는 것이란 그렇다. 균열을 넘어 뿌리부터 썩는 일이다. 한시현이 우려한 지점은 그런 현상으로 눈에 띄게 두드러졌으나 재정부 차관은 묵살한다. 결국 IMF의 등장이다.



 지속적 세뇌로 인하여 IMF가 좋은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지 모른다. 단순히 말하면 범세계적인 악덕 사채업자에게 돈을 꾸는 것이다. 이자 대신에 여러 정책으로 나라를 조종한다. 국가로써는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할 선택을 일말의 고민 없이 해버린 것이다.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해고가 손쉽게 일어났다. 한국의 시스템은 금융위기로 그렇게 재조정되었다. 기업을 배 불리는 구조가 되었고, 기업이 망하면 안 된다는 세뇌가 동반되었다. 완벽하지 않은가! 부의 집중을 막지 못해 아래에선 비좁은 밥그릇 싸움이 시작되었다. 자, 2018년. 과거의 무능한 정부, 무지한 국민은 그래 왔고 다음 문제를 풀어야 한다.




 사실, <국가부도의 날>은 <빅 쇼트>와 맥을 같이 한다. 앞으로 이야기해야 할 것이 부동산 문제인 셈이다. 이미 몇 군데의 발표에 따르면 부동산은 과포화 상태로, 사는 이 없이 파는 이들로 형성된 가격이 책정되어 있다. 요컨대 ‘암묵적 담합’이다. 사람들은 ‘욕심’이라는 감정이 있다. 돈을 벌고 싶어 하고, 쉽게 벌고 싶어 하며, 위험이 없어야 좋다. 감이 오는가. 부동산은 변동 없이 꾸준히 오른다는 믿음. 영화 말미에도 그런 뉘앙스가 있다. “벌써 강남에서는 조짐이 보입니다.” 실제로 꾼들은 전부 팔고 빠졌다고 한다. 문제는 대출받아 집을 산 사람들이, 집 값이 폭락했을 때 대출금을 갚지 못할 신세가 된다는 일이다. 욕심을 떨치기에 너무 멀리 와 버린 사람 중에는 정책을 이끄는 자도 분명 섞여 있을 것이다. 이대로면 망할 수도 있다.


*<빅 쇼트> 리뷰 https://brunch.co.kr/@baka/103 [우리는 거대한 카지노에 있다] 참고.



 정의는 살아있는가. 모두가 정직하고 바람직한 유토피아로 가는 길. 불가능하게 보이는 것 사이에서 정의로 똘똘 뭉쳐 수습하는 경험을 이미 우리 모두 누려보았다. 아직 배움이 필요하다면 또 망해도 좋겠다. 싫거든 항상 깨어있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며 정답도 내주었다. 정말 두 번 당할 수 없는 일 아닌가.


 그리하여 본질적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목표는 어디일까. 마지막 장면에서 갑수가 한시현의 오빠라는 것이 밝혀질 때 느닷없이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 든다. 등장인물들이 제각기 사회의 서로 다른 위치에서 받는 영향을 묘사하는 줄로만 알다 긴 착각에서 깨어난다. 우린 한 덩어리 안에 담겨있는 생물이다. 결코 이 세계를 쪼개어 쓰고 있지 않다. 모 예능에서 ‘나만 아니면 돼’라 외치던 장면이 떠올랐다. 모든 인간의 기저에 깔린 심리가 이렇다면 이 세계에 남은 건 절망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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