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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Jan 11. 2019

늦봄이라는 계절

넌 다섯 계절을 사는구나


 하루에 일어나는 사건은 보통 전부 순순히 잊어버려야 하는 일들이지만 그렇지 않은 때가 있다. 예컨대 피지 말아야 할 것이 길가에 등장할 때, 지대한 영향력이 하루를 집어삼켜 온종일 허우적대고 마는 것이다. 가을에 핀 벚꽃. 느닷없는 그 장면이 기억 저편으로 나를 끌고 들어간다. 봄에 피는 꽃이 때를 모르고 엉성하게 가을에 꽃피운다. 옆에 선 나무도 지금 인가 싶어 덩달아 꽃을 피운다. 찬 바람 탓에 많이 번지지는 않지만 그 꼴을 보는 사람들은 저것 참 바보 같다며 놀림을 하는 것이다. 너도 그랬다.



 난 모기가 잘 물었다.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늘 나를 물어서, 다른 사람들은 내가 곁에 있으니 모기에 잘 물리지 않는다고 좋아했다. 정말 모기는 좋은 것 하나 없기에 ‘인간은 애꿎은 몇몇 동물 잘도 멸종시키면서 걔네들 가만두고 모기나 멸종시키지’하고 푸념을 했다. 그 말에 넌 소스라치며 말하길, 봄과 가을을 구분 짓는 건 귀뚜라미 소리와 손 닿지 않는 곳 골라 무는 모기뿐이라고 했다. 난 아무래도 좋으니 바르는 약이나 달라고 했다. 가을 모기는 너무 매우니까. 아직 여름은 끈질기게 퇴근을 미루고 있었다. 이제 좀 갈 때도 됐는데.


 딱 이맘때, 넌 늦봄이 온다고 했다. 여름과 가을 사이에 끼어 봄인 척 모두를 속이는 계절이라고 했다. 사람도 식물도 전부 속아서 괜히 나무는 꽃을 피우다 떨어지고, 아이들은 밤공기 차가운 것 모르고 뛰놀다 감기에 걸리고 만다고. 그렇게 심술을 부리는 늦봄이 잠깐 왔다 이내 가을이 오는 거라고. 그럼 너의 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아니라 봄 여름 가을 늦봄 겨울 순이구나. 넌 다섯 계절을 사는구나.


12월의 유채


 좀처럼 추위를 타지 않는 나는 변하는 계절에 둔하게 입고 다녔다. 넌 그런 나를 자꾸만 타박해서 어느 날은 너에게 따지고 들었다. 계절을 신경 쓸 형편이 안 돼. 나는 너처럼 한가하지 않아. 그렇게 유심히 관찰할 시간이 없어. 내가 조금만 더 운이 좋았다면 그런 걸 신경 쓸 여유가 있었을 거야. 그리고 그런 말을 뱉자마자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걸 깨달았다. 어느 누구도 형편이 좋거나 하여 시를 쓰고 노래를 하고 구름을 세는 것이 아니거늘. 세상을 돌볼 의지가 지갑에서 나오지 않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했는데. 그리고 너는 더 이상 내게 옷을 든든히 챙겨 입으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 해, 유독 심하게 감기를 앓았다.


 넌 하늘을 세 번 올려다보라고 내게 그랬다. 마음에 여유가 되는 사람은 하늘의 크기를 평생 재며 사는 것이라고. 여유가 되지 않더라도, 우리 그런 척하며 살자고 했다. 당장 코웃음을 치고 말았지만 오묘하게 신경 쓰이는 그 말에 나는 횟수를 헤아리며 하늘을 보았다. 파랗기도, 노랗기도, 붉기도 한 색을 보며 몇 날을 보냈다. 그래도 나는 보랏빛이 좋아서 가능하다면 그 시간에 무얼 하든 멈춰두고 하늘을 즐기는 버릇이 생겨버렸다.


 좀 지내다 보니 계절에 냄새가 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여태 이 냄새를 맡지 못했음에 분할 지경이었다. 그 사실에 들뜨고 놀라 너에게 말했더니, 이제야 알았냐며 웃는 너의 코를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지금껏 내가 취한 태도가 있어 실천하지는 못했지만 너는 봄의 따끈한 빨래 냄새와 여름의 차가운 풀냄새, 가을의 고소함과 겨울의 눈 냄새를 홀로 오롯이 맡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늦봄의 냄새를 구분하려고 했을 것이다. 졸업이 시작되고, 너와 나는 내일 만날 것처럼 다른 봄을 향해 떠나버렸지만.



 한동안 나는 하늘을 떠벌리고 다녔다. 그동안 배운 것이 문학이나 수학이 아니라 마치 계절이었던 것처럼. 하루에 반드시 하늘을 세 번쯤 올려다봐야 한다며, 기껏 너의 말을 전할 뿐이었지만 남을 가르치듯 지냈다. 시간이 잃어버리는 것들이 으레 그렇듯, 나도 너의 연락처를 잃어버렸다. 난 너와의 인연이 영원할 줄로 알아서 다른 어떤 연락의 방도를 너로부터 캐놓질 않았다. 이민을 갔다더라, 재수를 한다더라. 너에 대한 무성한 근황이 소문처럼 들리고 소문의 방향이 엇갈려 흐르면 도무지 믿을 이야기가 없어서 난 너를 잃어버린 채로 사는 편이 낫겠구나 했다. 어쩌면 나는 덩그러니 남아있는 나밖에 돌아볼 수가 없어, 그 시간이 전부 네가 함께 있지 않았던 꿈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다섯 계절을 살다 보면, 하늘의 크기를 재며 살다 보면 어디서 또다시 만날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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