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어가 제철이라던데
경주에 잠시 머물 때의 일이다. 늘 관광하러 온 사람이 있거나 또 없거나 하는 도시에 살아서인지 일부러 뜨내기를 구분 지어 묻지 않았다.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무심하게 물건을 팔고 음식을 만들고 오는 사람들을 상대할 뿐이었다. 그 분위기가 사뭇 내가 상상하던 양반의 품과 닮아있기에 썩 맘에 들던 차였다. 애를 쓰지 않는 것이 곧 순리대로 흐르는 모양이라 군더더기가 없어 보였다. 다만 어디든 무섭게 추운 때라 십이월이 미워질 지경이었다. 두꺼운 옷을 여벌로 충분히 챙기지 못해 해가 약한 날이면 그냥 방 안에 박혀 잘 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은 무슨 마음이었는지 눈발마저 살살 날릴 때 길을 나섰다. 쓸쓸함에 나를 몰아넣고 싶은 마음이 종종 다녀가는 날이었다.
경주에는 노포가 쭉 이어진 거리가 있다. 주로 해장국을 파는 곳이다. 작은 도시에 술 마시는 사람 전부를 해장시킬 만큼 늘어져 있는 가게들은 김을 뿜고 있는데, 솥이 문 가까이 나와 있는 구조로 모두 닮아있어 그게 아주 장관이다. 이미 앞선 식사로부터 시간이 꽤 흘러 허기가 도졌다. 늦은 밤이라 이미 상가는 마무리를 하는 모양이었고 내가 들어가려는 곳마다 손을 저었다. 아마도 장국 한 그릇 더 팔자며 철 난로 타는 군불에 장작 채워 넣을 겨를이 없는 것이었다. 이리저리 모난 돌처럼 퇴짜를 맞고 보니 모퉁이 끝으로 아직 장사하는 곳이 보였다. 겨울 추위는 어찌나 매서운지 해장국집 문 사이로 김이 모락모락 나오는 것만 보고도 침이 꿀떡 삼켜졌다.
문을 들어서자 할머니는 곤욕을 치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모자 쓴 할아버지 하나가 적적히 술잔을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진작에 장사를 접었어도 이상치 않을 모습이라 역시 발길을 돌릴까 싶은 생각이 들고 마는 풍경이다.
“들어와요.”
“장사 끝나지 않았습니까.”
“저 양반, 아직 멀었어요.”
술 마시고 죽치다 갈 일이 아니라면 국밥 한 그릇 먹는 사이에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 했다. 그 말을 보아하니 꽤 자주 방문하는 취객이 아닌가 싶다. 이미 미운털 단단히 박힌 노인은 뚝배기에 고개를 처박고서 무언가를 자꾸 중얼거리고 있었다. 사람이 취하고 외우는 말들은 대개 미련이 알알이 박힌 것들이라서 그 삶을 들여다보기에 좋다. 궁금증이 도져 물어보려는 순간 어찌 알아채고 노인은 목청을 돋워 말했다.
전어가 제철이라던데, 전어가 제철이라던데.
‘아니 전어는 벌써 철이 지났다니까-’ 국밥을 말며 할머니가 대꾸했다. 전어는 속담에도 한자리를 꿰찰 만큼 맛이 좋다. 제철만큼 근사할 때가 없어서 정말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올 법하다 생각이 들기도 한다. 며느리 집 나가게 만든 게 애초에 큰 잘못이지만. 그러나 어디 한 사람이 마음먹고 떠난 자리가 전어로 되돌릴 법 한가. 그깟 생선 어디서나 구워 먹으면 될 것을. 그러나 노인의 말에는 맘속으로 맞장구를 치고 만다. 그렇지요, 제철 전어 맛은 한 겨울에도 찾을 법합니다.
김치를 송송 썰어 얹고 콩나물, 모자반, 묵과 밥을 함께 말아주는 해장국이 맑고 담백해 입맛에 잘 맞았다. 뚝배기 속 밥알이 생글거리며 돌아다녀 훌훌 털어 넣기 좋았다. 한참 맛있게 먹고 있자니 맞은편 주정하는 노인을 두고 할머니가 그의 넋두리를 대신 풀었다.
노인은 어린 시절부터 힘이 좋아 경주 근교의 감포항에서 잡은 생선을 지고 나르는 일을 했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고 바다마을에서 짝을 하나 만나 오손도손 살다가 마침 경주로 배달 온 때에 색시가 벼랑으로 떨어져 죽은 게 아닌가. 그는 도시를 다녀가는 게 일이라 집을 자주 떠나 있어야 했는데 그 사이에 변고가 일어난 모양이었다. 마침 전어가 끝물이라 색시는 ‘곧 전어도 제철이 끝나니까 그전에 돌아오세요’라고 했단다. 그리고 남편 돌아오는 날 맞춰 물오른 전어 한 마리 구워다 가을 보내는 기분으로 있지 않았을까. 가끔 운명도 칼처럼 사람을 찌르는데, 일 마치고 술이나 한 잔 걸치자는 동료들의 제안에 그는 돌아갈 날보다 하루를 미루게 되었다. 해장국에 술잔을 채울 때 아내는 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산책을 나왔다가 벼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후로 할머니는 눈발 날릴 때면 한 번씩 나타나서 그날을 되돌리고 있는 노인을 내칠 수가 없다고 그랬다. 어느 날에는 철 지난 전어를 어찌어찌 구해다가 구워줬더니 목청이 터져라 우는 통에 관두었다고 했다. 그래도 노인이 올 때면 그제야 겨울이 온 것만 같다고, 제법 추운 날을 골라 오는 것도 참 대단하다고 할머니는 장작을 더 채워 넣었다. 난 고개를 마냥 끄덕이다가 노인보다 먼저 식사를 마치고 나왔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탓하는 걸 매번 잊지 않으려 생선 같은 것에 미련과 그리움을 가득 담아 미워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제철이 아니라 돌아오지 않는구나, 애써 쓸쓸한 마음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면서 말이다.
나는 전어철이 오면 어김없이 경주의 일이 떠오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