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대화하기

오늘의 생각 #12

by 박한얼 Haneol Park


너는 왜 매일 사랑을 확인받지 못하면 초조해하는 거야?


-> 음... 유년 시기에는 어머니에게 잘 보호받고, 인정받고 늘 신뢰받으며 자랐고 아버지가 보여주시던 재미있고 유익한 영화나 게임들을 많이 접하며 삶의 풍요로움과 즐거움을 배웠어. 그래서 10대가 되기 전까지는 인생도 평탄했고 즐겁고 발전적인 아이로 자랐지. 그런데 청소년 시기를 맞음과 동시에 아버지의 알코올 의존증이 시작돼서 적절한 보호를 받기는커녕 폭언과 폭행에 매일을 고통 속에 시달려야 했어.

또, 어머니가 끔찍하게 맞는 것을 보며 엄청난 공포와 무력감들을 학습했던 것 같아. 흉기를 들고 죽이겠다는 협박도 당해봤고, 물건들이 부서지는 굉음과 비명소리, 아버지에게 악마가 빙의된 듯 그 끝없는 분노에 찬 눈빛, 한 겨울에 알몸으로 집에서 쫓겨나 보기도 했고, 화풀이 대상으로 이용당해야 했던 나, 이유 없이 따귀를 맞고 피멍이 들고 발로 차여 나뒹굴어야 했던 그 상황들 속에 내가 있었던 거야.

아마 나의 불안은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아. 학교에 가면 고작 초등학교 5학년이라는 나이에 수업 시간에도 아무런 이유 없이 눈물이 흘러 혼자 스윽 닦기도 했고... 친구들에게 많이 의지하게 됐지. 참 다행히도 그때 사귄 친구들이 착하고 나를 많이 아껴줬어서 비행 청소년이 되지는 않았었던 것 같아.


이런 가정 폭력은 끝날 것 같으면서도 끝나지 않았어. 내가 성인이 된 후에 아버지를 무릎 꿇리고 당장 가족들에게 사과하라고 소리 지르며 욕을 해도 이따금씩 이어졌는데... 2021년, 1년 내내 아버지와 대화하지 않고 투명인간처럼 대하며 지냈더니 그것이 아버지에게 큰 상처가 되었는지 혼자 울기도 하고 엄마와 할아버지에게 나와의 사이가 나아지게 해달라고 요청도 하셨다고 전해들었어. 그때부터 가정 폭력이 멈췄어.

아빠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무관심'이었던 것 같아. 어쩌면 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두려움이 바로 무관심과 수치심이 아닐까 생각해. 상대방을 가장 쉽게 제압하는 방법이 '민망하게 만들기'라고 하더라구.

유년기 때 충분히 잘 지내다 10대가 되자마자 갑자기 폭탄 같은 시련을 맞은 것처럼, 인생이 불안하게 느껴질 때마다 큰일이 날 것만 같아 사랑을 확인받지 않으면 초조해지게 된 것 같아.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 살아갈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 그런 것들을 사랑을 통해 채우고 안정감을 얻고자 하는 것이 어쩌면 인간의 본능일 테지만, 내가 인생에 대한 불안과 걱정도가 좀 높아질 때는 그 안정감과 사랑이 평소보다 더 더 많이 필요한 거야. 사랑을 확인받지 못하면, 심적으로 안정되지 않으면 미 커져있는 불안감을 견디기가 힘든 거지...


그러니까, 앞으로는 이렇게 생각하자. '난 이미 충분한 사랑을 받았다'고. 사랑받았던 작은 기억들을 마음속 서랍에서 계속 꺼내보고 추억하고 기억하자. 사랑받은 적 없었던 사람처럼 굴지 말고, 사랑받았던 좋은 기억들을 폴라로이드처럼 계속 꺼내보자. 아무래도 나쁜 기억들이 더 머릿속에 크고 쉽게 박히는 건 사실이겠지. 그런 걸 잊을 수 없는 것도, 나의 일부분으로 평생을 함께 가야 하는 것도 맞겠지만, 의식적으로! 받았던 사랑과 좋은 추억들을 기억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아.


암세포는 '텔로머레이즈'를 사용한 끊임없는 세포분열로 다른 세포보다 수명이 길대. 그래서 암세포에 있는 이 텔로머레이즈를 억제하는 약물을 항암제로 사용하기도 한대. 그런데, 반대로 암세포가 아닌 줄기세포에 텔로머레이즈를 사용할 경우 노화를 억제할 수 있어 관련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해.

이런 DNA 속 텔로미어의 원리를 꼭 세포에만 이용할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에 이용한다고 생각해보자.

고통스러운 의미부여와 부정적인 생각들, 어디선가 주워들은 뒤로 계속 내 머릿속에 맴돌며 나를 괴롭히는 나쁜 말들은 암세포처럼 끊임없이 분열해서 내가 죽을 때까지 마음속에 기생하는 것과 같아. 그래서! 그 텔로미어의 원리를 내가 받았던 칭찬, 사랑, 좋았던 추억에 이용하면 그것들이 끝없이 분열해서 생명력과 사랑으로 넘치는 사람이 될 거야. 나는 살아있어. 뭐든지 할 수 있어. 살아있어도 죽은 것처럼 살지는 말자.

초조해할 필요 없어. 다들 나에게 그렇게 말해주잖아. '넌 이미 잘하고 있다'고. 난 현실적인 판단도 좀 할 줄 알아야 해!


어렸을 때 받은 상처는, 그냥 그런 일이 있었던 것뿐이야. '그것 때문에 내 인생이 이런 거야'라는 등의 쓸데없는 의미부여를 할 필요가 없어. 모든 일들은 객관적으로 '그냥 일어난 일'일 뿐이야. 나의 주관적인 해석이 어떤 길로 들어서느냐가 문제지. 길을 잘 들어야 해. 텔로머레이즈를 죽음이 아닌, 생명의 길에 이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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