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한얼 Haneol Park Sep 23. 2023

긍정, 명상, 운동의 함정

오늘의 생각 #49


긍정의 의미는 그렇다고 수긍하고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좋음'을 대변하는 의미로 잘못 쓰는 경우가 참 많다. 최근, 나는 긍정의 의미를 다시 보게 되는 경험을 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은 분명 일어난다. 들지 않는다는 건 그 자체로 나쁘다고 분별하는 의미로도 쓰지만 내 마음에 들어오기(수용하기) 어렵고 싫은 일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렇게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 내게 특정한 사건으로 찾아왔을 때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명상하고, 운동을 했다.


긍정, 명상, 운동은 내게 새로운 차원의 행복을 깨닫게 해 준 것들이다. 긍정은 삶을 더 밝게 만들고, 명상은 삶을 더 편안하게 해 주고, 운동은 삶을 더 건강하게 해 준다. 그런데 나는 이러한 것들을 나의 진정한 행복, well-being, 그러니까 잘 존재하는 것 그 자체가 아니라 나의 인위적인 행복을 위한 '도구'로서 '용'해왔던 것이다. 그 자체로서 내 몸과 마음이 잘 유대가 되고 연결된 것이 아니라, 도구와 그 도구를 사용하는 대상이라는 관계로서 '분리'가 일어났다. 결국 기능의 함정에 빠져 주객전도가 일어났고 그것은 쉽게도 '나는 이러한 도구들로 언제나 늘 괜찮을 수 있을 것'이라는 허영된 믿음, 자만과 자기기만으로 이어졌다.


마음속에 아무리 분노와 화가 일어나도, 어떠한 슬픔과 불안이 일어나도 명상과 운동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에만 집중하며 꾹꾹 성공적으로 억눌러냈고 그것은 수긍하고 인정한다는 진정한 의미로서의 긍정이 아니라 폭력적인 가짜 긍정이었다.

 

'좋게 생각해, 긍정적으로 생각해, 슬퍼하지 마, 나약해지지 마.'


진짜 솔직한 내 생각과 감정, 느낌을 외면하고 내면의 소리들을 무시한 것이다. 외면받고 무시당한 내 마음은 마치 가정폭력 당했던 과거의 나처럼 알 수 없는 무력감과 깊은 우울에 젖어들기 시작했고 겉으로는 때깔 좋아 보이던 내가 알고 보니 오랫동안 망가져가고 있던 것이다. 최근 이런저런 일들이 내 안에 억눌려있던 나 자신이 무능하고 찌질하다는 느낌이 폭발하는 트리거가 되어주었다.


나 자신을 행복을 위한 도구로 사용했다. 있는 그대로 존재하고 인정하고 존중해주지 않은 것이다. 내 모든 무능함, 내 모든 유능함, 내 모든 나약함, 내 모든 강인함, 내 모든 찌질함, 내 모든 쿨한 모습을 인정해 주고 알아차리고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충분히 화내고 웃고 울어주었을 때 그것은 완전한 의미로서의 자신감과 자존감의 발견으로 통하는 '해소'가 된다. 물속에 잠겨 숨 쉬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다가 비로소 물 밖으로 나와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아이고 살겠다!' 하고 안도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래, 나 무능해. 나 찌질해. 나 가진 것도 없고 나약해. 근데 있지, 나 사실 엄청 유능해. 나 쿨하고 할 수 있는 것도 많아. 내가 알 수도 없이 저질러온 어떤 실수들로 인해 세상이 날 아무리 무너뜨리고 좌절시키려고 해도 기꺼이 다 받아들이고 울고 화내고 웃어줄 거야. 그게 지금까지 외면해 온 내 모든 기쁨과 슬픔의 가능성들을 만회하는 길일 테니까. 이제 비로소 앞으로 나아가고 흐르는 맑은 물줄기 같은 인생을 살 자신이 생겼어.'



기쁨, 슬픔, 불안, 분노, 행복

이제야 이 모든 감정들이 정말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슬픈 건 힘든 것, 불안하면 안 되고 분노해 봤자 좋을 것이 없다는 나의 편견이 나를 흐르지 못하고 고이고 썩게 만들었다. 우주와 같은 완전하고 무결한 존재는 저런 순수한 감정들을 느끼지 못할 테니까. 오로지 우리 인간만이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것을 넘어서서 의식하고 섬세하게 표현하고 창조할 수 있도록 태어났다. 우리를 좌절하게 만드는 사건들과 크게 실패하며 느끼는 슬픔과 분노들이 얼마나 수줍고 귀엽고 하찮은 일인지 새삼 소중하고도 감사하게 느껴진다. 좌절과 실패가 없다면 성취감과 성공도 없을 것이고 슬픔과 분노가 없다면 기쁨과 평온도 없을 것이다.


행운은 불행을 빌려 일어난다고 했다. 모든 음과 양은 우리가 균형 잡힌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주는 소중한 것들이다. 나는 인간의 목표가 아무런 불편도 감정도 필요 없는 신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완전히 부족하고 완전히 인간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긍정, 운동, 명상은 그러한 음과 양이 늘 제자리에서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흘러갈 수 있게 해주는 나와 우주의 연결점이 되어야지 인위적인 행복을 위한 분리와 차단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크게 깨달은 요즘이다. 긍정적으로 살면 긍정적인 현실이 창조된다는 뜻은 어떻게든 좋게만 살라는 뜻이 아니라, 모든 감정을 인정하는 따뜻한 삶을 살면 사랑스러운 현실이 창조된다는 뜻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럴 때, 이럴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