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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카 May 02. 2023

독일에서 명이나물 캐기

별거 아닌 하루

 사실 나는 명이 나물을 독일에 와서 처음 알았다.


 한국에서 이름도 모른 채 명이나물을 먹었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있지만, 그게 명이나물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독일 생활을 하다 보면 한국의 맛이 매번 그립다. 특히 한국에서는 잘 먹지도 않았던 나물 종류가 그리워진다. 한국에서는 싫든 좋든 나물을 접할 길이 많지만, 독일에서는 접할 길이 없어서 아마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은 마트에서 명이나물을 만원 어치를 사다가 장아찌를 담갔더랬다. 그 맛이 참 좋았던지 그 후로 계속 명이나물 철이 다가오면 명이나물을 사 먹곤 했다. 그러다 아는 지인으로부터 명이나물을 캘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정보를 들었다. 하지만 독일은 한국과 달리 아무 곳에나 가서 나물을 채취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그러한 곳이 있겠지만 한국에서보다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던 에 나물을 채취하도록 허용된 장소를 검색하는 사이트를 알게 되었다. 사이트에는 나물뿐만 아니라 열매 등 작물의 종류가 다양했다. 원하는 작물을 검색하면 무료로 채취가 허용가능한 장소가 나온다. 혹은 돈을 지불하고 캐는 농장 같은 곳도 있다. 그러나 자칫 아무 곳에서나 채취하다가 걸리면 벌금을 물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독일에서의 명이나물 철은 3월~ 4월이다. 4월 말에는 꽃이 피기 시작하니 그때는 독성분이 나올 수 있는 시기로 따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독일 사람들의 명이 나물 먹는 방법은 빵 재료로 사용하거나, 페스토를 만들어 빵에 발라 먹는다. 명이 나물은 마늘향이 강하고 먹었을 경우 입에서 마늘향이 오래 지속되어 호불호가 갈리지만, 은근 사랑받는 식재료인 듯하다. 명이 나물의 생김새는 지역마다, 나라마다 다르다. 내가 아는 명이 나물은 잎이 컸지만, 독일에서 본 명이 나물의 잎은 얇고 길었다. 실제 길에서 명이 나물을 발견한다고 해도 저게 명이 나물인지 풀인지 확인이 어렵다. 확인하는 방법은 잎을 따서 마늘 향이 나느냐 안 나느냐이다. 또 한 가지 명이 나물은 은방울 꽃의 잎과 굉장히 흡사하게 생겼다고 한다. 명이 나물 꽃은 처음에는 쪽마늘모양이었다가 꽃이 활짝 피면 데이지꽃처럼 생겼다. 그리고 은방울 꽃의 잎을 본 적은 없지만, 이름처럼 꽃이 방울 모양이고 독성이 강하다고 한다. 명이 나물 꽃과 은방울 꽃을 보면 확실하게 다르게 생겨서 구분이 가능하지만, 잎만 보았을 때는 일반인은 구분이 어려울 수 있다. 그러므로 잎을 따서 마늘 향이 나는지 확인하거나 구별을 잘할 수 있는 지인과 동반하거나 정 불안하다 싶으면 안전하게 마트에서 사 먹는 걸 권장한다.


 드디어 명이 나물을 캐러 가기로 한 날이 되었다. 사이트에서 안내해 주는 것만 믿고 무작정 찾아갔다. 명이 나물을 보아도 구별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기에 큰 기대 없이 나들이한다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나물을 채취하고 먹을 요량으로 맛있는 새참도 단단히 챙겼다. 일단은 지도가 가리키는 장소에 도착했지만, 무엇이 명이 나물인지 몰라서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가 익숙한 느낌의 잎을 발견하고는 잎을 떼어 냄새를 맡아보았다. 오! 난다~ 마늘향이 난다~ 그런데 왜 꽃이 피었지? 꽃 모양이 수상한데? 은방울 꽃 아니야? 의심의 의심을 거듭하다가 꽃이 비교적 덜 피거나 안 피어있는 명이나물의 야리야리한 잎 위주로 채취를 했다. 채취를 하면서도 계속해서 의심이 있었지만, 잎을 따면 딸수록 진하게 나는 마늘향에 점점 의심은 사라지고 확신이 생겨 신이 나서 잎을 땄다.


 나물을 캐다 보니 어릴 적 부모님 따라 나물 캐러 갔던 추억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나물 캐시는 부모님 옆에서 동생과 함께 뛰놀며 나무 위에 오르기도 하고, 풀을 뜯어 소꿉놀이도 하던 기억에 마음이 따뜻해져 왔다. 당시 부모님의 마음에 대해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부모가 되어 나물을 캐는 내 모습에 부모님 마음이 오버랩되며 괜스레 뭉클해지기도 했다. 주책이여라. 아주 잠깐 쭈그려 앉아 나물을 캤을 뿐인데 다리가 어찌나 아프던지 아마 부모님이 옆에 계셨으면 "그거 조금 하고 다리 아프다고 하니?"라며 웃으셨을 것이다.


 그렇게 추억을 친구 삼아 목표치를 달성한 후 오늘이 진짜 목적을 위해 자리를 깔았다. 사실 진짜 목적은 새참이었다. 새참으로 준비한 건 다름 아닌 컵라면~!!! 독일 생활에서 컵라면은 나에게 사치스러운 음식에 속한다. 집에서 챙겨 온 손수 담근 김치와 쌀밥 한 덩어리, 그리고 컵라면이면 세상 부러울 거 없는 만찬이 된다. 마침 햇살도 따뜻하게 비취고 나무 위에서 지저귀는 새들 아래에 후루루룩 컵라면을 먹고 있으니 이곳이 바로 지상낙원이었다. 독일 생활을 떠올리면 독일 생활은 나에게 힘겨운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독일의 삶을 즐길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 최근 들어 삶과 마음이 안정이 찾아오기 시작하면서 마음을 바꿔먹기로 했다. 한국을 그리워하며 살기보다는 독일에서의 삶을 즐겨보자. 그중에 하나가 나물 캐러 가는 것이었다. '그게 뭐야?'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제철 나물을 캐러 다니면서 자연에서 힐링도 하고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의 재미, 그리고 우리가 직접 캔 나물을 함께 손질하고 그날 식탁에 올려 도란도란 야기하며 나눠먹는 그 맛과 시간이 내가 그러했듯 우리 아이들에게도 일상의 행복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별 거 아닌 것이 세상을 바꾼다고 하듯이 별 거 아닌 것이 나의 일상을 바꾸고 나의 삶을 바꿀 수 있다면, 별 거 아닌 것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붙잡아 시도라도 해 보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별 거 아닌 하루를 살아낸다. 별 거 아닌 하루가 쌓이고 쌓여 언젠가 단단하고 행복한 삶이었다고 회상할 수 있기를 바라며..




명이나물 캐는 영상

https://youtu.be/rQHtIVXkRmw



작물 채취 가능한 장소 검색 사이트


https://mundrau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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