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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봉파파 Nov 11. 2019

자녀모습에 일희일비하지 않기

누군가 그런 얘기를 하더군요. 신이 왜 사람이 자식을 키우도록 만들었는지 아느냐고요. 그 대답은 자기 마음대로 안되는 게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자식을 키우다보면 정말 마음대로 안되는 게 많지요. 저도 자식을 키우는데요. 씻어야 하는데 씻지 않으려고 하고, 먹어야 하는데 다 뱉어내면 속이 터집니다. 이제 말도 더 잘하게 되고 자기주장이 강해지면 앞으로 더 속 터질 일들이 많아지겠죠?

학교에서 많은 초등학생들을 보면 부모님들께서 얼마나 힘드실까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방학이 시작할 때쯤이면 교사가 미칠 지경이고, 방학이 끝날 때쯤이면 부모가 미칠 지경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뛰노는 학교는 에너지가 정말 넘칩니다. 넘치다 못해서 폭발을 합니다. 그 에너지에 짓눌려 기운이 쏙 빠지는 경험도 여러 번 했습니다. 아이들이 집에 돌아가면 피곤할 법도 한데, 그렇지 않다고들 하네요. 집에 돌아가면 또 나름대로의 에너지를 열심히 분출한다고 하니, 우리 아이들 모두 ‘백만돌이’ 에너자이저가 분명합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부모님들의 힘들다는 느낌은 대체로 자녀를 통제하지 못하는 경우에서 발생합니다. 어린 자녀는 먹는 것, 씻는 것, 자는 것 등의 기초적인 기능에서 통제를 하지 못할 때 힘이 듭니다. 조금 더 머리가 큰 초등학생은 이러한 기초적인 기능뿐만 아니라 조금 더 고차원적인 통제가 필요하다고 느껴지는데요, 그러한 것들을 통제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죠. 예를 들면 자녀의 성적, 생활태도, 학습습관, 교우관계, 스마트폰, TV 등등이 그것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녀의 성적이 좋았으면 좋겠죠. 적어도 공부를 못하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공부를 못해도 좋다는 마음을 가지고는 있지만 정말 공부를 못하는 상황이면 당연히 걱정이 되고 불안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억지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속은 더 타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생활태도와 습관은 잘 고쳐지지가 않습니다. 아무리 양치질을 가르쳐줘도 자기 스스로 양치를 대충해버리면 정말 답답합니다. 그러다가 치과에 가서 한껏 울고 나야 정신을 차리죠. 교우관계는 더욱 그렇습니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고 부모 입장에서 볼 때 가까이 하지 않았으면 하는 무리들이 있는데, 우리 아이가 그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보면 불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랑 놀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은 바람직한 교육은 아니죠. 스마트폰과 TV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마트폰을 과하게 사용하거나 잘못 사용하는 것 같아서 제재를 가하거나 압수를 해버리면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습니다. 자녀를 키우는 모든 과정이 힘이 듭니다.


하지만 제가 늘 강조하듯, 부모는 여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자녀의 모든 문제에 깊이 빠져서 고민하고 개선책을 강구하는 것은 부모도 힘들고 자녀도 힘들어지는 길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문재인 대통령의 모친상이 있었는데요. 대통령은 어머니에 대한 회고를 그의 책에 기록합니다. 그 때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면서, 술과 담배를 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고 어머니가 별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자식이 그런 길에 깊게 빠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으셨기 때문이라고 대통령은 말하고 있는데요. 먼 훗날 그는 많은 사람의 인권을 위해 봉사하는 변호사가 되었고, 국민의 존경을 받는 대통령으로 성장했습니다. 여기서 저는 문재인 대통령의 어머니가 보여주신 여유를 부모로서 배워야하지 않나 싶습니다.


제 지인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이런 상처를 받았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수학 시험을 보고 왔는데 평소보다 점수가 너무 낮게 나와서 자신도 놀랐다고 해요. 그런데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시험지를 보여줬더니 어머니가 그 자리에서 시험지를 찢어버리셨다는 겁니다. 본인은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인 그 일이 지금도 상처로 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너무 낮은 점수를 받은 자신도 속이 상한데 아이도 위로를 받고 싶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어머니께서 그런 모습을 보여주니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저는 부모님들께서 자녀의 모든 결과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수업의 의미에서 말씀드렸듯, 초등학생들에게 가장 값진 경험 중 하나는 ‘실패’라는 경험입니다. 초등학생 때 실패를 많이 해봐야 해요. 물론 너무 많은 실패가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자신을 좌절의 아이콘이라고 낙인찍지 않는 선에서 그렇게 해야지요. 하지만 모든 것이 완벽해야한다거나 모든 것을 성공해야 한다는 것은 아이에게 너무 큰 바람이고 부담입니다. 우리 아이가 식사예절이 부족하다고 판단될 때, 식사예절을 자꾸 가르치려는 것보다 함께 밥을 먹고 싶은 부모가 되는 게 더 좋은 교육 방법일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가 100점 만점에 20점을 받아왔을 때, 아이의 학습태도를 나무라는 것보다 따뜻한 격려가 더 큰 효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크게 세 가지 영역을 생각합니다. 하나는 인지적인 영역, 하나는 기능적인 영역, 하나는 정의적인 영역입니다. 인지적인 영역은 아이의 앎을, 기능적인 영역은 아이의 함을, 정의적인 영역은 아이의 태도와 정서를 말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의적인 영역입니다. 아이가 부담을 느끼지 않고, 너무 좌절하지 않고, 그 다음을 생각하고 스스로 개선을 해나갈 수 있는 의지를 부여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교육입니다. 이러한 교육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 교사와 부모의 너무 빠른 피드백일 수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올바른 성인으로 자라기까지 단거리 달리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긴 마라톤을 하는 것이죠. 당장의 실패와 좌절에 연연하지 않을 때 우리 아이는 더 멀리 갈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혹시 오늘 자녀가 속상한 점수를 받아왔나요? 그러면 자녀를 꼭 안아주시는 것은 어떨까요? 자녀가 스마트폰을 하고 싶어서 눈치를 보고 있나요? 그러면 자녀와 함께 툭 터놓고 대화를 나눠보시는 건 어떨까요? 우리 아이는 가뿐 호흡으로 1등을 해야 하는 단거리 달리기 선수가 아니라, 조금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멀리 발을 내딛는 마라토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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