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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Sep 09. 2021

코로나 백신접종 생존보고서

소소잡썰(小笑雜說)


코로나 백신 2차접종 D-1일


갑자기 1차 때 주사 맞은 왼쪽 어깨 부위가 욱신거리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녀석이 지레 겁을 먹고 있는 모양이었다. 응급실까지 다녀온 아내나 몸살난 듯 심하게  앓았다는 주변 사람들에 비하면 이틀 정도 주사 맞은 어깨 부위가 쫌 뻐근했던 거 외엔 이렇다 할 증세도 겪지 않았는데 좀 오버스럽다 싶었다.


짐작컨대 전날 2차 백신접종 주사를 맞은 직장 동료 하나가 1차 때완 달리 몸이 엄청 힘들었단 얘기를 들은 때문 아닌가 싶었다. 그 역시 나처럼 1차 접종 때는 타이레놀 한 알 생각이 안 들 정도로 너무 멀쩡해 주변의 부러움을 샀었는데, 2차 백신을 맞고서는 몸살 앓듯 온몸이 아파 고생 중이라고 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다른 사람들 얘기를 들어봐도 1차 땐 멀쩡했지만 2차 땐 힘들었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언론을 통해 들려오는 심각한 중증 부작용 사례들도 대부분 2차 백신 접종 후 그랬다고 했다. 물론 그런 경우는 10만분의 1 정도 확률 밖에 없다곤 했지만, 그건 내가 나머지 99,999명에 해당될 때에만 유의미한 얘기일뿐이었다. 솔직히 겁이 나고 무서웠다.


코로나 백신 2차접종 D-0일


최상의 몸 컨디션 유지를 위해 다른 날보다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났다. 하지만 스마트워치를 이용해 측정한 결과 평소 80 내외였던 심박수는 100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스트레스라는 게 비단 마음에 뿐만 아니라 육체에도 이렇게 긴밀하게 영향을 미치는구나 하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마음 속으로 '릴렉스, 릴렉스~'를 주문처럼 외우며 예약시간에 맞춰 천천히 병원으로 걸어갔다. 5분 남짓 되는 그리 멀지도 않은 거리를 천천히 걸어갔을 뿐인데, 심박수는 그새 110을 사뿐히 넘어가고 있었다. '아는게 병이라고 사람이 이래서 건강염려증에 걸리는 모양'이란 생각이 들어 혼자 피식 웃었다.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서니 간호사가 백신 맞으러 오셨냐며 반갑게 인사를 해왔다. 내 얼굴 표정이 딱 도살장 끌려온 소처럼 백신 맞으러 마지못해 끌려온 사람 같았나 보다 생각하며 또 피식 웃었다. 그 흔해빠진 독감예방 주사 한번 맞아본 적 없는 내가 코로나는 좀 무서웠던 모양이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좀 느긋하게 걸어갔더니 앞서 온 사람들이 많아 병원 오픈 시간인 9시를 갓 넘겼음에도 대기실이 거의 꽉 차 있었다. 생긴지 몇 년 안 된 동네병원이고, 평소 파리 날린단 소문을 들었었는데 '대박!'이란 생각이 들었다. '골목상권 다 죽는다고 다들 난리더만, 개중엔 이렇게 대박나는 업종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또 피식 웃었다. 소금장수 아들과 우산장수 아들을 둔 어머니 얘기가 문득 떠오르면서 해가 쨍쨍해야 웃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가 와야 웃는 사람도 있단 당연한 세상 이치가 새삼 가슴에 와닿아서다. 세상엔 소금도 필요하고 우산도 필요하니까...


간단한 문진표 작성과 혈압 측정, 의사 상담을 거쳐 마침내 고대하던(?) 2차 백신 주사를 맞았다. 내 착각인진 몰라도 1차 땐 간호사 역시 처음 접해보는 백신이라 그런가 매우 조심하며 주사를 놓는 느낌이었는데, 그동안 엄청 숙달이 됐는지 이날은 기계적인 동작으로 단박에 주사기를 푹 찔러대는 걸 보며 또 혼자 피식 웃었다. 어리버리한 신병도 6주 훈련이면 제법 각 잡힌 군인이 되는 판인데, 6주 동안 찌르기 한 동작만 죽어라 연마한 간호사의 실력이야 오죽 일취월장했으랴 싶어서다.


그렇게 몇 번 웃고 나니 걱정했던 나의 2차 백신 접종은 무사히 잘 끝나 있었다. 아직은 며칠 더 경과를 지켜봐야 정말 무사히 잘 끝난 건지 알 수 있겠지만, 백신을 맞자마자 이런저런 이상징후가 나타나는 사람들에 비하면 일단은 성공적으로 2차 접종까지 잘 마친 셈이다. 이제 앞으로 며칠동안 코로나 보건당국과 병원의 주의사항을  잘 지켜 10만분의 1을 제외한 나머지 99,999명 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야겠다.


코로나 백신 2차접종 D+1일


잠자리에 누웠는데 온몸이 으슬으슬 춥더니 열이 나기 시작했다. 별 탈없이 무사히 잘 넘어가나 했더니 세상 일이란게 이렇게 만만한게 없다 싶어 침대에 누운채 피식 웃었다. 남들 경험하는 건 다 한번씩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시니 코로나 백신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지 싶었다.


숨 자고나면 좀 나아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잠을 청했는데, 한창 자다보니 한기가 더 심해지며 본격적으로 열이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목도 말라서 일단 정수기 물 한 잔으로 목을 축인 뒤, 체온계를 꺼내들었다. 오른쪽 37.4, 왼쪽 37.6도가 나왔다. 근 10년래 체온이 37도를 넘어본 건 처음이어서 이젠 나도 늙었나(?) 보다 싶었다.


밤새 열과 오한이 번갈아 찾아와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우다시피 한 뒤 새벽녘에 해열제를 한 알 먹었다. 웬만하면 몸의 자연치유 능력에 맡기고 싶었지만, 해야 할 일이 있으니 해열제를 투입해서라도 제압해야 했다. 자연치유도 좋지만 고열도 아닌 미열 따위와 씨름하느라 하루를 날려버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평소 약을 즐겨먹지 않아 버릇해서 그런지 해열제는 직빵으로 효과를 발휘했다. 병원이나 응급실까지 갈 일은 생기지 않았으니 다행이었다. 약 좋다고 남용 말자는 금언이야말로 정말 천고의 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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