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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이면 생각나는 <그때 그 사람>

아주 특별한 사진 한 장 #31

by 글짓는 사진장이

추운 겨울, 아침 일찍 오일장에 가보면 자석처럼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장소가 있다.

폐드럼통을 활용해 장작불을 피워 둔 임시난로가 그곳이다.


내가 첫 오일장 출사에 나선 2007년 겨울, 전북 진안 오일장 역시 그랬다.

장터에 들어서자 마당 한 편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드럼통 난로가 눈에 들어왔고,

새벽 일찍 나온 장꾼 몇 명이 옹기종기 모여 언몸을 녹이고 있는 게 보였다.


카메라를 들고 쭈뼛쭈뼛 다가서는 나를 향해 장꾼들은 거리낌 없이 한 쪽 자리를 내줬다.

덕분에 기대감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던 나의 첫 오일장 출사는 부드럽게 연착륙할 수 있었다.

감사한 마음에 나는 주변에 있던 커피 리어커를 불러 종이컵 커피 한 잔씩을 돌렸다.


드럼통 난로 덕분에 몸이 따뜻해진 데 이어 뜨거운 커피 덕분에 마음까지 따뜻해진 걸까.

머리털 나고 처음 보는 나를 향해 장꾼들은 스스럼없이 얘기를 건네고 웃어주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오일장 장날마다 장꾼들보다 부지런을 떠는 인근 가게 주인 얘기였다.



난전에선 아무래도 사람들 발길이 많이 오가는 자리를 선점하는 게 그날 장사 성적을 좌우하는 지라

소규모 보따리 장꾼들은 장날이면 새벽 일찍부터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서둘러 장을 찾곤 했다.

그런데 그런 소규모 보따리 장꾼들보다 더 일찍 장에 나오는 사람이 진안 오일장엔 있었다.

시장 한 편에 번듯한 점포까지 갖고 있는 한 가게 사장님이었다.


좋은 자리를 잡을 필요 없는 그가 다른 누구보다 일찍 장에 나오는 이유는 드럼통 난로를 피우기 위해서였다.

무슨 이유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지는 본인이 극구 입을 열지 않는 바람에 끝내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유를 모르는채 그는 겨울이면 장날마다 열일 제쳐놓고 이 일을 무한반복하곤 했다.


덕분에 진안 오일장을 찾는 보따리 장꾼들은 그 드럼통 난로 앞에서 고맙게도 언몸을 녹일 수 있었다.

몇 년 전 이뤄진 시장 현대화작업으로 인해 지금은 그런 대형 드럼통 난로를 볼 수 없게 됐지만,

간혹 페인트통 같은 작은 통에 장작불을 지펴 몸을 녹이고 있는 장꾼들을 볼 때면 <그때 그 사람>이 문득 생각나곤 한다.

그때 그 사람이 지펴주던 그 따뜻한 온기가 그리워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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