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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Mar 16. 2023

<나이쓰한> 아내의 <나이쓰한> 내조


어머니 두 분이 만개한 산수유 꽃그늘 아래서 쪽파를 다듬고 계셨다. 사진 한 장 찍고 싶었지만 귀찮게 해드리기 싫어 그냥 지나칠까 했는데, 늘 그렇듯이 일단 얘기나 한 번 해보자 하는 <사진가의 마음>이 승리해버렸다.

슬금슬금 다가가 인사를 건넨 뒤 "괜찮으시면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하고 여쭈었다. 그러자 어머니 한 분이 "젊은 애들이나 찍지 늙은이들 사진은 뭐덜러 찍어?" 하며 완곡히 거절하셨다. 이미 예상했던 반응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나면 대장부가 아니지'하는 송창식의 <담배가게 아가씨>를 머릿 속에 떠올리며 나는 옆에 슬쩍 주저앉았다. "활짝 핀 꽃들하고 같이 있으니까 어느 쪽이 꽃인줄 모르겠네요" 어쩌구 너스레를 떨면서...


어머니는 경계심이 좀 풀리셨는지 "전에도 어떤 사진기 든 양반들이 와서는 이리 걸어와 봐라, 이거 해봐라 저거 해봐라 하며 귀찮게 굴더만..." 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셨다. 그러더니 "기왕 온 김에 쪽파나 한 두어 단 사가든가" 하며 슬며시 장사꾼 기질을 발휘하셨다. 그럼 나도 같이 장사(?)를 개시해도 되겠다 싶었다.​


그 순간 곁에서 남편의 수작질을 지켜보고 있던 아내가 급발진해 들어왔다. "아이고, 오늘은 우리 남편 좋아하는 파김치나 한 번 담가야겠네" 하며 쪽파 두 단을 덥석 집어 든 거다. 시장통이며 어디며 남편 사진 찍는 데 따라다닌 내공이 얼추 반갑자는 되다 보니 아내는 눈치가 백단이다. 이 타이밍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본능적으로 캐치해 낸 거다.


상황이 이쯤 되자 일은 일사천리로 풀렸다. 장사란 건 모름지기 기브 앤 테이크인지라 어머니도 이젠 사진 찍는 거에 대해 더 이상 거부 의사를 보이지 않으셨다. 그렇게 활짝 핀 산수유를 배경으로 꽃보다 고운 어머니들 사진 몇 장을 얻었다. <나이쓰한> 아내의 <나이쓰한> 내조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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