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백종원 레시피'라는 게 주부, 자취생, 직장인 등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었다. 10여 년 전 한 공중파 방송에서 백종원이 '백주부'라는 닉네임으로 처음 등장해 "참 쉽쥬?"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내며 집에서도 쉽게 해먹을 수 있는 이런저런 요리 레시피를 전파하면서다.
그런데 참 재밌는 게 당시 내 주변 사람들 중에서도 여럿이 이 백종원 레시피에 기반해 요리 만들기에 도전했었지만, 이렇다 하게 성공한 사람은 거의 없다는 거다. 방송에서 아주 친절하게 간장과 설탕은 몇 스푼, 물은 몇 리터까지 하나하나 상세히 알려줬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알고 보면 원인은 아주 간단하다. 백이면 백 사람마다 다 제각각 손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 하나만 해도 아무리 계량을 해서 넣는다 하더라도 사람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발생하게 마련이며, 간장과 설탕 등 각종 양념 역시 마찬가지다.
뿐만 아니라 이 양념들을 넣는 순서와 타이밍, 끓여내는 불의 화력과 시간 등에서 나오는 미세한 차이도 같은 레시피임에도 다른 맛을 만들어 내는데 적잖이 일조한다. 한 마디로 말해 백종원 레시피는 그의 손맛이 깃들었을 때 제맛을 내는 거고, 손이 바뀌면 맛도 바뀔 확률이 99%쯤 된다는 얘기 되시겠다.
그렇지 않다면 몇 십 년씩 요리를 해온 고수들이 요리할 때마다 굳이 간을 볼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루틴하게 늘 하던 요리를 계속하고 있는 그들 역시 간을 봐야 뭐가 과하고 부족한가를 느낄 수 있단 얘기다.맛이라는 건 아주 사소한 차이로 극과 극을 오갈 수 있는 거니까.
45년 역사를 자랑하는 전북 정읍 소재 보안식당 같은 음식점이 꾸준히 인기를 끄는 이유도 그래서다. 어줍잖은 레시피 같은 걸로는 결코 흉내낼 수 없는 오랜 경험과 손맛이 조화를 이뤄 다른 곳에선 쉽게 맛보기 힘든 절묘한 맛을 선사해주기 때문.
지난 2017년 백종원의 3대천왕에 쫄면 맛집으로 소개되면서 전국 각지에서 맛객들이 몰려들고 있는 이곳은 '비빔'류 요리가 흔히 갖기 쉬운 자극적인 맛 대신 정직하고 건강한 맛을 갖고 있는 게 특징이다.씹는 순간 맵고 강렬한 신 맛으로 혀와 입안을 휘몰아치는 게 아니라 매콤하되 편안하게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맛이라고나 할까.
쫄면에 사용되는 면 역시 가위를 필요로 할 만큼 고무줄처럼 질긴 느낌이 드는 다른 음식점 면발과는 달리 부담없이 씹어먹을 수 있는 탄력으로 직접 뽑아낸 면발을 사용하고 있어 식감이 남다르고, 손님들의 비벼먹는 수고를 덜어주기 위함인 듯 잘 비벼진 상태로 내오는 덕분에 한결 먹기 수월한 점도 이 집만의 장점 가운데 하나.
이에 더해 양배추와 상추 등 야채를 듬뿍 가미해 면류 음식을 먹었을 때 흔히 나타나는 헛배 부른 느낌이 전혀 없이 편안하게 소화가 잘 되는 것도 보안식당 쫄면만이 갖고 있는 남다른 장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마디로 맛과 식감, 건강까지 두루두루 다 충족시킨 느낌적인 느낌.
쫄면과 더불어 이 식당을 방문하는 손님들이 가장 많이 주문한다는 칼국수 역시 국물맛이 아주 독특했다. 간이 된듯 안 된듯 싶을 만큼 슴슴하면서도 혀에 착 감기는 맛이어서 먹는 재미가 있었고, 사장님이 손으로 직접 만들었다는 칼국수 면발은 씹히는 식감이 찰지면서도 부드럽게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쫄면과 마찬가지로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정직하고 건강하단 느낌을 주는 맛이었다.
면 요리류만으로는 뭔가 좀 부족한 듯 싶어 함께 주문한 만두는 속이 꽉 찬 단단한 겉모습이 보여주는 것처럼 한 입 베어무는 순간 육즙이 좍 퍼지면서 포만감이 들 만큼 입 안을 가득 채워주는 느낌이었다. 이 집 시그니처 메뉴인 쫄면도 그렇고 칼국수도 마찬가지로 밀가루가 주재료라, 탄수화물 섭취가 좀 과하다 싶은 사람은 단백질을 보충해준다는 느낌으로 서브 메뉴로 선택해볼만 하다.
정읍 보안식당은 매일 오전 11시30분부터 저녁 7시(토요일은 저녁 6시)까지 영업하며, 오후 2시20분부터 4시까지는 브레이크타임이다. 매주 월요일은 정기휴무이다. 주차는 식당 맞은편 골목 안쪽에 무료로 주차할 수 있는 공영주차장이 있으므로 여길 이용하면 편리하다.
참고로 식당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보안'이란 단어가 아주 매우 많이 궁금했었다. 음식 레시피가 보안이라는 건지 식당 안 어딘가에 지켜야 할 무슨 비밀이 있다는 건지 궁금했더랬는데, 알고 보니 사장님 고향이 전북 부안군 '보안면'이어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단다. 나이 좀 드신 어른들이 시집온 새댁이나 이웃을 호칭할 때 출신 동네 이름을 붙여 나주댁이니 보성댁이니 하던 것과 마찬가지 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