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작
아이들과 다닐 땐 가까운 거리라도 예외는 아니다. 연고, 밴드, 상비약을 넣은 작은 가방과 물티슈, 차키와 지갑, 립밤을 챙긴다. 거의 읽지 못할 걸 알면서도 책도 한 권. 집을 나설 때만 해도 결연한 가방의 질서는 아이들의 하원과 함께 이내 카오스를 맞이한다.
핸드폰은 가녀린 진동으로만 존재를 알릴 뿐, 크지도 않은 가방인데 다른 차원의 세계로 연결된 포털인가. 손을 아무리 휘저어 봐도 사탕 껍질, 어디서 떨어져 나왔는지 모를 장난감 조각, 나뒹구는 볼펜만이 채인다.
일본 출장 중에 Jb가 이 가방 어떠냐며 사진을 보내왔다. 겉은 검은색 튼튼한 나일론 재질에 속은 쨍하니 밝은 네온 오렌지컬러로 때는 쉬 은폐되고 물건이 섞여도 훤히 보일 것 같다. 가방 앞에는 똑딱이로 여닫고 작은 플립으로 입구를 덮어주는 형식의 큰 주머니 두 개, 가방 안쪽으로 오픈되어 있는 주머니 두 개와 지퍼가 달린 투명 주머니 한 개가 마주 보고 있다. 책 한 권도 충분히 품을 수 있을 것 같다.
토트백 스타일의 다소 전투적인 면모를 자랑하는 낯선 가방에 아이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상어 탈을 뒤집어쓴 레고 인형과 작은 손으로 조물딱 만든 키링까지 하나로 엮어 달아 주니 비로소 나의 가방이 되었다.
#2 전자책
종이의 냄새와 질감을 음미한다. 갈피를 넘긴다. 넘겨진 갈피만큼이나 사이사이 쌓여가는 생각의 부피감이 만족스럽다. 책은 역시 손에 쥐고 봐야 한다는 확고한 나의 생각이 미동하기 시작한 건 모닝빵 군이 올해 학교에 입학하면서였다. 하원이 이르기도 하고 학원 수업도 듣게 되자 등하원 길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애법 된다. 학교와 집을 오가기엔 애매한 거리, 책 좀 볼까 근처 카페로 향한다. 계절에 따라 쾌적하게 유지되는 온습도,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커피맛도 나쁘지 않다. 이 모든 걸 2,000원에 누릴 수 있는 고마운 공간.
책을 펴고 이런저런 생각이 가지를 뻗어나가는 50분 남짓한 시간. 학원의 출결 알람이 아이의 하원을 알리지만 쉬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가 없다. 책이야 다시 펴보면 될 일이지만 반나절의 소동을 겪고 나면, 행간에 머물던 나의 생각들은 저 멀리 달음질 칠게 뻔하기 때문이다.
문자 하나가 날아들었다. 평소라면 광고라 흘려 봤을 문자인데 유독 관심이 간다.
'전자책 90일 무료 이용권'
자주 이용하는 도서 주문 앱에서 이따금씩 보내오는 무료 체험권이다. 번거로운 가입 절차를 끝내고 서둘러 검색어를 넣어 본다. 최신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책들이 나온다. 제일 보고 싶었던 책을 다운로드해 봤다. 책 한 권을 다운로드하는데 소요된 시간은 겨우 5초 남짓.
하이라이트 기능도 있고 북마크 기능도 있다. 하이라이트만 따로 모아볼 수도 있고 메모도 할 수 있다니. 매력 있다.
#3 멀티윈도우
아이들 학습용으로 사게 된 태블릿은 전자책을 접한 뒤로 내 차지가 되었다. 말간 화면에 흠집이라도 날까 보호 필름도 붙여주고 키보드가 딸린 보호 패드까지 입혀주니 노트북인가 싶다. 노트북처럼 부팅하고 종료하는 성가신 과정도 필요 없고 보호패턴만 죽 그으면 접속이다. 마우스 없이 화면을 터치하고 타자를 친다. 신박하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신문물에 호들갑을 떨며 이것저것 시도해 보다가 화면이 분할되어 버렸다. 핸드폰에도 있는 기능이지만 쓰지도 않고 새로울 것도 없는데 태블릿에서는 달리보이는 멀티윈도우. 왼편에 도서앱을 띄우고, 오른편에 MS Office 365를 띄운다. 노란 배경이 예쁜 노트를 펼치니 뭐라도 쓰고 싶어 진다. 타닥타닥. 타이핑감이 좋다. 행간에 머물던 시선을 노트로 옮겨 마음이 동하는 문장들을 옮겨본다. 스치는 생각들도 감히 슬며시 얹어본다, 오며 가며 도망치고 잃어버릴 글들이며 생각들이 질서 정연하게 옮겨진다. 책과 같이 덮고 펼쳤을 뿐인데 함께 했던 순간을 영원히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멀티윈도우 너머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과거도 돌아보고 미래도 그려본다.
-
좀처럼 나아가지 못하고 굳어져 가려는 찰나
우연치 곤 연달아 분 순풍이 마침내 균열을 일으켜
조금씩 전진 중입니다.
누군가의 생각으로 시작해
모두의 가치로 전달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을까요,
포기하지 않은 '수많은 가치 생산자'가 일군 '이 편한 세상' 덕분에
일상이 조금 더 다이내믹해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현인들의 글'과 '성장하려는 나'가 만나 '이 편한 세상'과 함께
지극히 개인적인 삶의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테이블만 있으면 태블릿부터 펼쳐 놓고 봅니다. 빵굽는 '테'블릿은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빵의 부스러기만큼의 가치라도 그저 보탬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씀'을 '행'하는 '가치 생산자'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