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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굽는 테블릿 Sep 01. 2023

8월의 마지막 날, 9월의 첫날에

따뜻한 커피의 표면에 김이 인다.

후 불면 흩어지다 이내 다시 모여든다.

진한 아메리카노 무대 위,

입김에 따라 춤을 추는 커피 안개의 움직임이 황홀하다.

홀로 따뜻한 커피를 마실 때면

커피의 춤을 충분히 즐겨야 한다.

온기가 사라질 때까지 시간이 길지 않다.


오랜만에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며칠 연이은 비로 날은 덥지만 축축한 날씨에 온기가 그리웠나 보다.

8월의 마지막날이다.


한여름에도 긴 셔츠를 고집하는 나로선 힘겨운 여름 나기였다.

한 여름의 볕이 부담스럽고 에어컨의 냉기가 달갑지 않아 챙겨 입기 시작했던가.

린넨, 레이온과 텐셀, 인견등이 적절하게 배합되어 있어

살갗에 부드럽고 하게 감긴다.

들숨, 날숨에 공기도 들락날락

바람이 불 때면 폭이 넓은 뒷자락이 펄럭, 기분 좋게 휘날린다.

구김도 잘 가지 않고 세탁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못 뒷덜미를 안정감 있게 감싸주고 단추로 채워지는 매무새가 깔끔해 보인다. 

속이 비칠 듯 얇은 소재이지만

적소에 배치되어 있는 절개 라인이 플랫 한 셔츠에 입체감과 힘을 더한다.

쳐지기 쉬운 날씨에 기분 좋은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옷이 얇아지는 계절인 여름에 유독 손이 간다.

버터를 닮은 엷은 노란빛,

제주 협재 백사장의 얕은 바닷물이 떠오르는 연옥빛,

여름의 맑은 하늘빛,

과하지 않은 광택이 여름 햇살에 함께 녹아든다.


날은 아직 덥지만 요즘 날씨는 기별이 없다.

투명한 압축팩에 질식해 있을 옷들을 꺼내 숨을 불어넣고,

뜨거운 여름을 함께한 피부와도 같았던 옷들을 떼어내

겨울나기 준비를 해야겠다.

지독한 더위지만 여름의 끝자락에선 언제나 아쉽다.


9월의 첫날, 옷장 정리를 마음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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