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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끄로 Feb 14. 2024

운 좋은 여행

상트페테르부르크

초초에게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러시아의 마지막 밤이야. 우리가 너무 지친 탓인지 날씨 탓인지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생각만큼 아름다운 도시는 아니었어. 너한테는 이 도시가 어땠을지 모르겠다. 매일 비를 피해 숙소까지 뛰어오고, 밤마다 내리는 비에 야경도 못 보고 여유 없이 도시 여행을 마무리했네. 그래도 마지막까지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좋은 기억이 많이 남았어.  페테르고프를 가는 길의 모든 사람들. 우리 둘의 휴대폰 유심이 되지 않은 것도 나름 추억이겠지. 내일 하루가 더 남아있지만, 아무튼 지금까지 러시아 여행동안 고생했어.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에서 가장 기대한 여름 궁전에 다녀오는 날이었어. 이곳에 와서 내내 구름 잔뜩 낀 하얀 하늘과 비 내리는 날씨를 봤는데, 오늘은 새파란 하늘로 하루를 시작했어. 숙소에서 점심 먹으면서 하늘을 보고 기대는 더 커졌어. 푸른 하늘, 맑은 날씨 아래의 여름 궁전은 정말 예쁠 것 같거든. 

 여름궁전은 주된 관광지와 거리가 있어서 가는 여정이 험난했어. 거기다 숙소에서 밥을 해 먹느라 늦게 나가서 마음이 조급했어. 숙소에서 15분 걸어 나가서 버스를 타고, 또 한 번 갈아타야 도착할 수 있는 여름궁전. 어찌어찌 버스 환승하는 곳까지 여유 있게 도착했어. 근데 여기서부터 당황스러운 일이 시작됐어. 내 휴대폰 데이터가 먹통이 됐던 거. 네 핸드폰은 그나마 됐는데, 너무 느려서 더 이상 지도를 보기가 힘들었어. 거기다가 원래 타려던 200번이 오지 않아서 어리바리하게 서있었잖아. 


 불행만 있는 건 아닌가 봐 러시아 할아버지가 갑자기 우리를 보고 뻬테르호프! 라며 말을 걸었던 건 오늘의 행운이었어. 우리가 누가 봐도 뻬테르호프에 가는 관광객처럼 생겼나 봐. 내가 제대로 알아들은 게 맞나 싶었어. 혹시나 해서 다른 할아버지한테도 물어봤어. 영어도 아니라 그냥 뻬테르호프! 이렇게 다섯 글자만 말했지. 그리고 마음에 확신이 서서, 불안해하는 널 끌고 그냥 버스를 탔어. 버스비가 우리가 사전에 찾아본 정보보다 비쌌어. 당연하겠지, 우리가 찾아본 버스가 아니었으니까. 막무가내로 버스를 타고선 돈이 없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우리에겐 돈이 남아있었지. 

 초초 너는 타고나서도 불안해 보였어. ‘이게 맞을까?’ 하는 눈빛. 내가 타자고 한 버스여서 나도 불안했어. 혹시 아니면 시간도, 돈도 버리는 거니까. 한 정거장 지날 때마다 창 밖을 확인했어. 그러다 버스 안내원이랑 눈을 마주쳤어. 나한테 안심하라는 듯한 눈빛을 주는 듯했어. 그래도 여전히 불안감이 가시지는 않았어. 근데 그 와중에도 나는 잠이 오더라. 선글라스까지 떨어뜨려가면서 졸았어. 웬걸, 버스 안내원이 우리가 내려야 할 역에서 우리에게 직접 다가와서 내리라고 알려주기까지 했어. 아니었으면 종점까지 갔겠지. 


 버스를 탈 무렵부터 휴대폰 데이터가 먹통이 되어서  불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친절한 러시아 사람들 덕에 기분 좋게 여름 궁전에 도착할 수 있었어. 역시 안 좋은 일만 있지는 않나 봐. 오늘의 하루는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아주 밝게 만들어줬어. 

 여름 궁전은 참 예뻤어. 그만큼 보러 온 사람도 많았어. 오래간만에 날씨가 좋아서 그랬던 걸까? 푸른 하늘과 어우러지는 여름 궁전은 동화 같은 풍경 그 자체였어. 그곳에 있는 사람들도 아름답게 보일 정도였어. 아름다운 정원을 구경하고, 페리를 타고 예르미타주 쪽으로 돌아왔어. 페리를 탈 때에도 한참을 헤맸어. 어디 갈 때마다 의심하는 하루인 걸까? 선착장 쪽에 사람이 없어 문을 닫은 줄 알았잖아. 가보니까 예르미타주 가는 선착장이 맞았어. 우리는 편안하고 빠르게 예르미타주까지 시원한 물살을 가르면서 왔지. 그냥 뭔가 맞는 것 같으면 일단 부딪히면 되나 봐.

 그나저나 아니나 달라, 비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답게 또 비가 내렸어. 카잔 성당에 가려다가 그냥 비를 피할 겸, 숙소에서 잠시 쉬기로 결정했어. 그리고 마트에 갔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지막 밤에서야 크고 좋은 마트를 발견했어. 아쉬워. 진작 알았으면 좀 더 풍요롭게 밥을 해 먹을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오늘 거하게 상트 마지막 밤 파티를 즐겼네.


 러시아의 마지막 밤이라는 것이 참 아쉬워. 그러면서도 이제 곧 혼자가 된다는 것이 조금은 기대가 되기도 해. 너와 함께하는 것이 즐겁지만 혼자 있을 시간이 조금 필요하기도 하거든. 혼자가 되면 많이 외롭고, 너와 같이 다닌 시간이 그립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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