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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약 Jul 31. 2021

시골 종갓집의 제삿날

시골에서의 하루

새벽 5시, 할머니의 거센 사투리 억양이 날 흔들어 깨웠다. 어제도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수다를 떨다 늦게 잤건만. 한여름의 돌침대는 에어컨 밑에서 차가우리만큼 식었고, 단단한 돌에서 어정쩡한 자세로 돌아눕던 참이었다. 떠오르는 태양보다 빠른 부산함에 고개를 저어 정신을 차리고 거실로 나갔다. 고모부터 작은 아빠까지 친척들은 한밤중이었다. 친가의 명절은 세 번이다. 설날, 추석 그리고 제삿날.


소문만 무성한 시골 종갓집의 장녀가 나다. 할머니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기 때문에, 제삿날 남자들은 논과 밭에서 일을 하고 여자들은 제사 음식을 만드느라 부산하다. 그리고 저녁에는 모두 모여 제사를 지내고, 나서는 제사상에 오른 음식들을 먹고 술을 마시며 수다 떨다 늦게 잔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부터 어제 끝나지 않은 일을 하러 다시 밭이나 논으로 나간다. 이번에는 물론 몇 분 오시지 못했다.


시골에서 며칠 있다 보면, '세 끼 밥해먹었는데 하루가 가더라'라는 말을 체득할 수 있다. 정말 예전 대가족들은 이렇게 어떻게 살았을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모두가 먹을 밥과 반찬을 하고, 일을 하러 나간 사람들이 돌아와 씻으면 함께 아침밥을 먹는다. 아침밥을 먹으면 커피를 타고, 과일을 깎는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친척들과 다양한 수다를 떨고, 집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유지보수를 하다 보면 벌써 점심시간이다. 


거의 모이진 못했지만, 그래도 오랜만이라 다들 할 이야기가 잔뜩이다. 항상 장녀와 장손의 이야기가 주가 된다. 열댓 명 중의 첫 번째 아이라는 것은 특별하다. 모두가 모든 순간을 궁금해하고 함께 나눈다. 우리 할머니 집은 핸드폰도 매끄럽게 연결되진 않는데, 그래서 현대사 회랑은 전혀 맞지 않는 오프라인의 순간들에 집중하게 된다. 할머니가 요령껏 몰아놓은 듯한 일들이 많을 때에는 나도 밭에 나가 돕는다. 함께 땀을 흘리며 무언의 유대를 쌓는다.


어릴 때부터 이런 문화에 익숙해서 일까, 나는 제사 음식들을 꽤나 좋아한다. 그리고 한국적이면서 묘하게 이질적인 그 분위기도 좋아한다. 예전에 내가 아빠에게 종교를 물었을 때, 아빠는 유교라 답한 적이 있다. 사실 유교를 종교로 보긴 힘들지만 꽤나 재밌는 대답이다. 한국문화를 공부해보니 우리나라의 모든 종교들은 민간 신앙과 굉장히 찐한 컬래버레이션이 있다. 한국화 패치가 되었다고나 할까. 나는 내가 무교(無敎)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무교(巫敎)에 가깝더라. 굉장히 토속적인 사람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들이 상충하고 있다. 20대 내 친구들은 '지금도 제사를 해?'라며 놀라기도 하고 시골 땅은 밟아본 적도 없는 친구들도 많다. 모든 가정은 다르게 고유한 문화가 형성된다. 이 내밀한 문화들은 외부인이 쉽게 참여할 수도, 볼 수도 없다. 우리 가족들은 우리들만의 속도와 방향으로 소통하고 있다. 시골에서 농사일을 하고 어른들을 모시는 일은 힘들기도 하지만, 평소 경험할 수 없는 진한 공동체에서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도, 위안을 얻게도 한다. 모르는 마을 어른들과 웃으며 인사를 하고 덕담을 주고받는 일. 더운 땡볕에서 밭 하나와 씨름하며 반복적인 노동을 하는 일은 나를 조금 더 친절하고 단단하게 한다.

 

나의 출발점이자 배경이 되는 가장 가까운 유대자들의 진심 어린 응원과 에너지를 받고 다시 일상으로 간다. 이 선택할 수 없는 귀한 인연에 매 번 감사함을 느끼면서 조금 더 친절하고 바르게 살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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