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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 봄 Sep 21. 2024

이스오타 : 줄줄이 퇴사, 남겨진 자들의 이야기

중소기업 3년 ~ 4년의 이야기


줄줄이 퇴사


김G가 퇴사할 땐 과장급 업무가 모두 김D에게 넘어갔을 때, 


"위기는 곧 기회다, 오히려 내가 인정받을 기회다"라고 했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같은 대학 동기들과 사업을 할 예정이라며 퇴사를 하였다.


사업 아이템은 펜션 사이트 구축이라고 했었는데 진짜로 그 시기에 실행했다면 대박이 났을 것이다. 


그때 당시엔 펜션 사이트가 많지가 않았다.


사이트는 많았지만 예약을 위한 PG(Payment Gateway)까지 연동한 펜션은 많이 없었다.


근황을 들어보니 대학 동기들과 사이가 틀어져서 프리랜서로 프로젝트 투입 중이라고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비밀 사내커플을 두 번하고 여자 직원들 사이에서 평판이 바닥이 나서 나간 거라고 들었다.


경영지원팀 사원, 콜센터 과장 이랑 비밀 연애를 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빛 그 자체였던 김C가 퇴사를 하셨다.


진정한 올라운더 개발, 디자인, PT, 고객 응대, 운영 업무까지 잘하시던 분이셨는데


우리 사원급에게도 항상 잘해주셨던 분이다. 


이B가 화를 주체 못 하면 유일하게 진정시킬 수 있는 분이셨고


우리 사원급이 개발을 잘못하거나 업무적으로 이해 못할 때 항상 잘 들어주시고  잘 알려주시고 개발할 때  나의 의도는 뭐였는지 살갑게 물어봐 주시던 분이셨다.


김C 우울해하실 때가 간혹 있었다. 


나이가 30대 후반이셨는데 아기가 생기지 않아서 시험관 시술이나 인공수정을 하고 실패하셨을 때 많이 힘들어하셨다.


그러다가 아기가 생겼고 지금 상황이 과장급, 대리급 둘 다 빠진 상태에서 감당할 수 없는 업무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아기가 잘못될까 봐 고민하시다가, 


"나에겐 내 아이가 너무나도 소중해"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에 진심이 전해져서 아무도 잡을 수 없었다. 


이B도 두 번 세 번 다시 생각해달라고 했지만 김C에겐 배속에 아기가 최우선이셨던 것 같다.  


중간 직책인 대리, 과장, 차장급이 단기간에 퇴사를 하게 된 후로 신규로 과장 2명, 차장 1명을 뽑았지만


이B의 욕설과 강압적인 태도를 못 참고 3달도 안되어서 모두 퇴사하였다. 


한 분 과장님은 우리 독수리 오 형제에게, 


"너넨 이미 우물 안에 큰 개구리야, 지금 어딜 가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으니 빨리 나와"라고 하셨다. 


개발 팀 중간 직책들이 입사 후에 계속 퇴사하는 거를 본 사장님, 부사장님, 임원들이 이B의 관리자로서의 자질에 대해 추궁하고 있었다. 



갈라치기 선 긋기


이B는 윗선에서의 관리자 자질에 대한 추궁 받으며 갑자기 


우리 독수리 오형제 첫째, 둘째, 셋째인 진S, 영S, 동S를 대리로 진급시켜 버린다.

(진D, 영D, 동D로 등장인물의 호칭 변경)


진S 같은 경우 나보다 1년 선배였기 때문에 대리 진급을 할 차례였지만, 영S, 동S는 나와 다섯 달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는데 1년 빨리 진급을 시켜버렸다.


진급과 동시에 위 세명은 연봉을 400만 원이나 인상시켰다.


이B는 중간 직책 없이 우리 독수리 오형제로 인원을 굳힐 생각이었다.


나랑 최S는?! 이B가 


"너네는 고생을 많이 안 했어"라고 했다. 


이게 무슨 개 같은 소리인가.


다 같이 3년간 일주일에 3일은 야근하고 찜질방에서 자고 출근했는데, 


"나와 최S는 이미 나름 인프라 구축되고 온 놈들이라 인정할 수 없어"라고 했다. 


연봉 400만 원의 갭은 내가 경력 11년 꽉 채우고 퇴사할 때도 극복하지 못했다.



진급 누락


진급 시즌이 돌아왔다. 


나와 최S도 드디어 대리를 다는구나 싶었는데 진급 누락이 되었다.


이B가 우리를 따로 불러서 


"너넨 초대 졸에 기사 자격증도 없어서 내가 둘 중에 하나라도 해당되면 진급 시켜주고 싶었지만  1년 누락이야"라고 했다.


나와 최S는 뭔가 심각하게 차별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우리가 나가는 거 말고는 달라지는 건 없었다.


초대 졸.. 3년제도 초대 졸은 초대 졸이니까 진급 누락 사유를 제공한 나 자신을 자책하기도 했다.  



파벌


진급 누락되고 얼마 되지 않아, 뜬금없이 부장급인 민B가 입사를 하셨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긴 했지만 기존 퇴사하셨던 김C같이 능력 있고 우리에게 항상 존댓말을 써주시던 분이셨다.


개발 관련하여 이런저런 여쭤보면,


"주S 이리 와봐요~ DB(DataBase)에 관심 있어요?" 하시면서 속성 강의처럼 1시간 ~ 2시간 정말 임팩트 있게 설명을 해주셨다.


일을 하다가 PC 하드디스크가 날아간 적이 있었는데 내가 제일 아쉬웠던 게 "민B님의 가르침"이라는 폴더에 소스/스크립트/DB 알려주신 부분을 정리한 폴더가 날아간 게 너무 아쉬웠다.


실력 고만고만한 사원들 사이에서 민B는 나에게 진짜 사수였다.


이때 DB의 흥미가 안 생겼다면 현재 개발자로 롱런하지도 못했을 것 같다.


어느 날 민B가 술 한 잔 사주신다고 하여 둘이 술을 마셨다. 


술잔을 부딪히면서 민B가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윗선에서 이B의 관리자 자질에 대해 부족하다고 느끼지만 꼬투리 잡을 게 없다며, 기획 팀 부장님이랑 아는 사이인데 자기를 추천하여 여기로 입사했다"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현시점에서 영D와 내가 사무실에서 운영 업무를 하고 있었고 진D는 혼자 양재에서 SI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고 동D와 최S도 다른 프로젝트 파견 중이었다.


그러면서 민B가 


"내가 SI(파견) 파트, SM(운영) 파트를 나눠서 관리할 생각이에요." 하시며 


"파트가 나눠지면 인원 재조정을 할 건데 주S 나에게 올래요?'라고 하셨다. 


나는 고민할 새도 없이 "알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민B는 "알겠어요. 앞으로 한 명씩 만나서 물어볼 예정이에요."라고 하셨다.


며칠이 지났을까 민B가 동D와 술자리를 한 후에 동D가 이B에게 이 사실을 바로 일러바치게 된다.


나는 동D에게 "민B가 나랑 같이 일할래요? 했다면서 이 사실을 자기는 이B에게 바로 얘기했다"라는 소리를 듣고 민B에게 조심스럽게 사실을 얘기했다.


그러자 민B는 "일부러 예측하고 그러라고 한 거예요. 주S는 신경 쓰지 마세요"라고 하셨다.


이때 당시 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가 방영 중이었는데 민B가 마치 미실 같았다.


그리고 바로 아침 회의실에서 이B와 민B가 언성을 높이며 한참을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이B는 사장, 부사장님에게 민B가 팀 내 파벌을 조장하며 분탕질을 하고 있다고 보고하였고, 민B는 나에게 "처음엔 마음먹고 편가르기를 하려고 했는데, 내가 뭐 하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관뒀어요."라고 하시며 그 달에 자진 퇴사하셨다.



상장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어느덧 회사는 점점 성장하여 코스닥 상장 심사를 받게 되었다.


업계 1위도 달성하였다.


이B가 항상 하던 얘기가 "상장하면 너네 집 한 채는 문제없이 살수 있어!"라고 했는데 조금씩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건가 망상에 사로잡혔다.


우리 독수리 오형제는


"그래도 전 직원 14명 있을 때 와서 3년간 개고생 했는데 위에서도 챙겨주겠지?"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상장 시점에서 이상하게 전무, 고문, 이사 임원급들이 엄청 많이 입사를 하셨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코스닥 상장 심사에 통과하던 날 사장님, 부사장님, 임원들끼리만 회의실에서 박수 치고 화기애애했던 상황이..


그렇다, 우린 아무것도 아니었다. 


상장 때 우리사주 주식 수 지정을 보고 다시 한번 느꼈다.


우리의 노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던 것이고 우린 그저 사원, 대리였을 뿐이라는 걸


그래도 사장님을 20년 넘게 보필한 경영지원팀 팀장인 백C가 사장님 다음으로 주식 수를 많이 받았다.


상장해서 좋은 건 우리에게 아무것도 없었다.


특이한 점은 상장 후에 부사장님께서 퇴사를 하셨다.  



연봉협상


상장 후 연봉협상 시즌이 되었다. 


평소에 이B는 연봉협상이 아닌 연봉 통보 식으로 회의실에 한 명씩 불러서 계산기에 연봉을 찍어서 보여주고 통보하는 식이였다.


내 위에 세명을 중간에 진급시키고 연봉을 올려준 것도 알고 있는데 (물론 직원 간 연봉 오픈은 징계사유이지만 서로 오픈했었다.)


그 해 은행 연동도 3곳이나 했고 정말 야근을 많이 해서 였는지, 대리들이 중간에 연봉이 오른 게 부러웠는지 그냥 이B가 계산기로 찍어준 연봉이 불합리하다고 느껴졌다.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었다. 이B에게 현재 연봉 책정 금액에서 200만 원만 더 올려달라고 하였다.


바로 쌍욕이 날라왔다.


"야 연봉 협상이란 건 과장급 이상이 하는 거야. 너 같은 사원 찌끄레기가 하는 게 아니라고 XXXX야"


상장하고 우리사주를 받게 되면 1년 안에 퇴사를 하면 우리사주를 회사에 반납해야 한다.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이B는 연봉 협상 아니 연봉 통보를 할 때 더 강하게 나갈 수 있었다.


결국엔 연봉은 올리지도 못하고 통보받은 금액으로 받게 되고 이B에게 "싹수없는 놈"으로 제대로 찍히게 되었다.



퇴사


연봉 협상 때 이B에게 찍히고 나서 계속 나를 괴롭혔다. 


회식을 하고 나면 나를 따로 불러서 아가씨 있는 술집이나 바에 데려가는척하면서


자리를 잡으면 나보고 "이제 꺼져"라고 했다.


가고 싶은데 혼자 가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까 봐 이런 식으로 나를 꼭 데려갔다가 집에 가라고 했다. 


어느 날은 "XX 은행 전화해서 새로 연동할 상품 전문 스펙 좀 받아놔"라고 해서 은행에 전화를 했는데 담당자가 엄청 퉁명스럽게 받았다. 


요청한 자료도 못 준다고 하고 그래서 달라고 하니까 은행 담당자가 버럭 화를 내면서 "아니 이거 그쪽 회사가 아니라 경쟁사랑 단독 개발할 건데 이걸 왜 물어보세요? 거기 회사는 상도도 없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몰랐다고 거듭 사과를 드리고 이B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이B는 "알고 있었어. 혹시나 줄까 했지! 하하하"라고 말했다.


순간 가슴속에 불씨가 올라오는 것 같이 열이 받아서 여기서 더 괴롭힘을 당하면 화병이 날것 같았다. 


그래서 퇴사한다고 이B에게 얘기했다.


퇴사 일이 결정 나고 이B가 둘이 한잔하자고 했다.


내가 제일 먼저 꺼낸 말은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 이렇게까지 해야 했어요?"였다.


이B는 "그땐 어쩔 수 없었다. 업계 1위가 목표였으니까"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나는 마지막으로 "제가 여태 당한 사적인 심부름들 적어도 양심이 있으면 저 다음에 오는 직원에게는 시키지 말아 주세요."라고 말하고 술자리는 정말 몇 마디 안 나누고 끝이 났다.


우리 독수리 오형제 네 명은 "내가 퇴사하면 자기도 나간다 나간다" 하면서 아무도 퇴사하지 않았다. 


퇴사하면서 내가 받은 우리사주를 반납할 때 당시 주식을 매도하니 800만 원 정도 됐던 것 같다.


 

좋은 기억들


입사하고 나서 랜 공사, 잡일, 지옥 같은 야근을 이겨낼 수 있었던 부분에는 좋은 기억들도 많았기 때문인 것 같다.


우선 사원 다섯 명이서 야근하고 술 마실 때가  참 행복했었다. 


직원 14명 나와 최S 입사해서 16명일 때는 매출 신기록을 세울 때마다 사무실 베란다에 테이블을 세팅해서 중국요리를 시키고 전 직원이 술을 마시며 박수 치고 서로 같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상장 전에는 매출 신기록 세우면 워크숍은 제주도로 가자 해서 제주도로 워크숍을 갔던 적도 있고, 다음 매출 신기록 세우면 사이판을 가자고 했지만 상장하고 너무 바쁜 나머지 부사장님이 돈으로 직원들에게 500만 원씩 준 적도 있다.


부사장님께서 나에게 "너는 큰 떡잎이야, 나중에 성공하면 나 찾아와서 술 한잔 사야 해"라고 해주셨던 기억도 난다.


상장 후에 우리 개발팀에 차장님 두 분이 입사하셨다.


요즘도 가끔 꿈을 꾼다.


내가 야근을 하고 있으면 차장님 한 분이 전화로 왁자지껄 웃는 소리가 나면서 "야 주S ! 빨리 와! 내일 해도 되니까 정리하고 내가 책임질게 빨리 와"라고 하시면 웃으면서 자리 정리하고 용문시장 족발집으로 가면 차장님 두분과 우리 독수리 오형제 네명이 손짓하면서 반겨주며 하하 호호 술 마시던 꿈을 가끔 꾼다.


그때가 일은 많았지만 정말 나에게 주어진 일만 하고 근심, 걱정 없이 마음껏 술을 마셨던 기억이 너무나도 행복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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