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색무취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두 표현은 나에게 하나같이 밋밋하고 무력한 인상을 준다.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은 감춘 채, 대중의 여론에 묻어가는 태도. 그런 태도는 어떤 때는 불쾌하기까지 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자기주장이 강한 편이었다.
무엇이 좋고, 무엇이 싫은지 또렷하게 구분하고 표현할 줄 알았다.
그래서였을까. “난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사람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의사 표현이 필요한 순간에도 침묵하는 사람들을 보면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런 성향은 음악이나 미술을 좋아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좋아하는 작품은 늘 분명하다. 대중음악이라면 신승훈, 김건모, 잔나비, 이무진처럼 음악적 색채가 뚜렷한 가수들의 노래에 끌린다.
클래식은 이제 막 걸음마를 떼는 단계지만, 어떤 연주자에게 끌렸는지, 무엇에 반응했는지는 분명히 알 수 있다. 피아니스트나 첼리스트처럼, 연주하면서 내는 소리뿐 아니라 그들의 작은 퍼포먼스, 즉 어깨와 팔, 등 라인의 유연한 움직임에 빠져든다.
그 움직임은 마치 부드럽게 나풀거리는 나비 같기도 하고, 때로는 우아하게 하늘을 유영하는 학 같기도 하다.
좋아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고, 싫어하는 데에도 나름의 근거가 있다.
그걸 굳이 조목조목 설명하지 않아도 될 뿐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자기 생각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사람이 ‘불편한 존재’로 낙인찍히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단체나 무리 속에서 다수와 다른 생각을 꺼내면 ‘이상한 사람’이나 ‘괜히 딴지 거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러한 분위기 때문인지 사람들의 인터뷰를 봐도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편히 말하면 되는데 ‘~그런 것 같아요.’라고 답하는 이들이 많다.
“오늘 공연 어땠나요?” 라는 물음에
“너무 좋았어요. 감동 받았어요.” 하고 답하면 될 것을
“너무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감동 받은 것 같습니다.”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는 데조차 이렇게 조심스러운 말투를 쓰는 게 과연 자연스러운가?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까지 평가받고 비난받는 분위기 때문일까? 아니면 스스로의 생각과 답변에 자신이 없어서일까? 그러한 답변의 태도가 배려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정확히 어떠한 생각으로 그런 답변 태도를 취하는지 알 수 없지만 지나친 자기검열과 자신감 부족에서 오는 태도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에 기반한 상황에 대한 비평을 할 때는 팩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무런 근거 없이 무작정 비판을 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 그래서 ‘카더라’ 통신으로 접한 정보를 바탕으로 어떤 사실을 비난하려고 할 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그 문장 하나만 가지고 이야기하지 말고 전체 문맥을 파악해라.”, “그 사람과 사건에 대해 제대로 알고 비판해라.”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그 정보가 사실인지 거짓인지 구분하는 능력도 필요하고,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자신의 느낌을 이야기 할 때는, 소신껏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느낌이라는 건 오롯이 나만 느낀 것이니까 말이다. 그 누구도 내 느낌을 대신 느낄 수 없다. 같은 공연을 보고도 다수가 좋다고 평할 수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의 몫이다. 내가 느낀 것을 내 목소리로, 편히 말할 수 있는 사회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