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라고 쓰고 공동주택이라 읽자. (빌라도 마찬가지다. 빌라가 나은 건 그나마 가격이라도 아파트보다 싸니까.)
우리는 층간 소음, 쓰레기와 흡연, 주차 문제, 경비나 관리실과의 문제 등을 겪는다. 시도 때도 없이 쿵쿵 거리는 윗집, 아무 때나 울리는 피아노와 개 짖는 소리, 공용 공간인 복도를 점거하는 유모차와 자전거, 그리고 쓰레기, 출근길에 찍혀있는 자동차 문짝, 엘리베이터의 반려동물 오물이나 어디 사는지 모르는 무뚝뚝한 이웃, 화장실과 베란다에서 들어오는 담배 냄새.
나도 그랬다. 그럴 때면 배려와 개념이 없는 이웃 등을 탓하고 싸우고 날카롭게 반응했다. 나나 우리 가족이 잘못하면 사과도 했지만 대부분은 무개념 이웃 탓이다. 그러다 해결책은 종종 더 좋은 동네로 귀결되기도 하지만 솔직히 강남에서 더 어디로 간단 말인가.
같은 강남이어도 단독 주택에 살던 때는 달랐다. 물론 담을 두고 있는 이웃과도 분쟁이 있다. 집집마다 차고가 있는데 굳이 집 앞 좁은 골목이나 차도에 주차하는 사람이나, 겨울에 눈을 치울 때나 안 치우는 이웃이, 쓰레기를 남의 집 담 앞에 놓는 이웃 등이 있다. 새벽에 혹은 아무 때나 마구 짖는 개도 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이슈는단독주택이아파트에 비해 확실히 훨씬 덜하다.
이유가 뭘까?동네가 더 좋아서? 단독주택 사는 사람들이 더 착해서? 아파트 사는 사람이 더 못 되서?
아니다.
정답을 알려드리겠다.
첫째, 마주한 이웃 수가 적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위, 아래, 양 옆은 물론 대각의 공간까지 8개의 집들이 직접적으로 벽과 기둥을 면한 이웃이고, 주차장은 셀 수 없이 많은 이웃과 면한다. 주택은 앞은 골목이나 길이니까 면한 이웃이 많으면 5채인데 그마저도 다 수 미터 이상 떨어져 있거나 담으로 구분되어 있다. 필지가 딱 떨어지지 않아 많을 때나 그렇고 통상은 앞은 길이고 나머지 3면에 다른 집 3채가 있다. 대각의 집은 공간적으로 붙지 않으니 내게 영향을 주는 이웃집은 이렇게 대개 3가구를 넘지 않고, 골목 주차 문제로 시비 붙을 집의 수도 대체로 2-3가구를 넘지 않는다. 마주하는 이웃이 적으니 싸움이 날 가능성도 낮고 실제로 쾌적하다.
둘째, 위에서 언급한 완충공간의 유무와 물리적 거리가 확보되기때문이다.
아파트와 공동주택은 윗집의 바닥이 내 천장이고 내 바닥이 남의 집 지붕이다. 이걸 피하려고 때로 1층이나 최상층을 택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명백히 이게 큰 이슈 중 하나임을 의미한다. 1층이나 최상층은 내게 영향을 주는 이웃의 수가 최소 1가구에서 최대 3가구까지 줄어드는 것이다. 주택은 벽체를 공유하지도 않고 담으로 구분되는데 벽에서 남의 집 벽까지 아무리아무리 못해도 최소 3~4미터는 떨어져 있다. 이렇게 물리적으로 완충 공간이 있어 이웃 간의 충돌을 억제한다. 2층 집이어도 내 위에도 아래에도 우리 가족 외엔 아무도 없다.
둘 다 모두 어처구니 없이 단순한 이유들이다.
20억짜리 강남 아파트가 그 가격만큼의 주거의 쾌적함과 편리함을 제공하는지 냉정하게 생각해본다. 경험자로서 말하건대 절대 아니다. 그 아파트 값에 내 땅은 없다는 뻔한 이야기를 뒤로 하고 봐도 10억이면 20억짜리 판 돈으로 아파트의 2배 이상의 면적에다 어디에 소개될 법한 주택의 건축비로 쓰고 최고급 가구들을 내 취향에 맞게 넣을 수 있다. 나머지 10억을 땅값으로 쓰면 그만이다. 물론 강남땅을 구입할 수는 없겠지만 청담동 아파트태생 강남 토박이 입장에서 내 고향이자 내가 자란, 또 아이들의 고향이기도 한 강남이 그만한 가치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타 지역 대비 편리하고 장점이 많긴 하지만 액수 차를 고려하면 현저한 거품이다.한국과 서울의 독특한 구조 탓이다.
약간 이야기가 벗어났는데 결국 핵심은 저 두 가지가 문제다. 사람은 어디나 똑같다. 미친놈도 있고 선한 사람도 있고 악인도 있다. 어딜 가나 마찬가지다. 그 와중에 핵심은 타인과 부딪힐 소지가 환경적으로 많으냐 적으냐다.
30평 아파트가 20억이 넘는다면 난 그 아파트는 구조적으로 안전하고 편리함은 물론이며, 쓰레기는 자동수거 시스템이 되어 있고 주차는 당연히 지정 주차제며, 택배는 택배 전용 엘리베이터와 동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이게 미친 소리로 들리겠지만 동남아의 고가 아파트나 맨션은 가정부용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고 내리면 바로 해당 가정부 방으로 연결되는 시스템이 이미 존재한다. 그래, 우리가 무시하는 그 동남아에 이미 그런 시스템이 있다. 이걸 우리네 환경에 맞춰 택배나배달 환경에 맞춰 만드는 것 따위는 당연히 할 수 있다는 얘기다. 택배 차 안 받는다고 아파트와 택배사가 싸우고 주민들이 불편을 겪는 게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란 얘기다.)
아파트의 구조 문제도 당연히 정부와 건설사가 해결해야 한다. 벽식구조는 버리고 기둥식, 라멘식 구조로 짓든 여러 공동주택의 문제점을확실하게 보완해야 한다. 벽식구조 아파트를 짓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건축비를 절감하는 비용 절감 차원에서다. 거주자로서 그 구조는 별반 장점이 없다. 기둥과 보가 하중을 지지하는 라멘식 구조로 하면 벽을 허물어 공간을 바꾸는 것도 한결 자유롭다. 닭장도 커스터마이징이 되는 닭장이 된단 얘기다. 다만 여기서 이 이야기는 논외로 하자.
문제의 핵심은 인간이 닭이나 소나 돼지와 같은 동물이라는 점이다. 모든 동물은 최소한의 영역을 필요로 하고 또 한편으로 밀도가 너무 떨어지면 반대로 번식에도 문제가 생기고 집단을 이루는 동물들은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가축을 키울 때 우리에 가두지 않고 키운 경우 더 비싸고 맛도 좋다는 것은, 그게 가축의 복지라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사람이라고 다를까? 그렇게 믿는다면 당신은 인간을 너무 비동물적으로 보는 것이다.
인간은 명명백백하게 동물이다.
지금 대도시 사람들은 인류 DNA사에서 겪은 적이 없는 엄청난 밀도 속에서 부대끼며 살고 있다. 통계를 낼 수는 없지만 서울에 거주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직장인은 100년 전만 해도 한 달 동안 만나고 스칠 사람의 수 이상을 하루에 겪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견뎌낼 포유류는 커녕 곤충도 없을 거라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러면집에서라도 편안히 휴식을 취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보장되지 않는 게 아파트라는 주거공간이다.
난 내가 원하지 않는 사람이, 내 가족이 아닌 사람이 내 위나 아래에 사는 걸 이제 거부한다. 결코 그런 주거지로 다시 돌아갈 생각이 없다. 땅의 절반은 식물과 흙이어야 한다. 계절에 따라 8시간은 일광이 들어야 한다.
아, 잠깐 또 이야기가 샜다.
결론은 처음에 말한 바와 같다. 문제는 아파트다. 아파트가 인간이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공간을 주지 못하고, 완충 공간 없이 지어지는 게 가장 큰 핵심 문제다.싸면 참을 수 있는데 가격도 미쳤다.
이웃 탓, 사람 탓을 하는 것은 그만하자. 나도 그런 이웃일 수 있다. 자기 집에서조차 너무 많이 타인을 배려하고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을 만드는 주거공간이 문제다. 가격 대비 터무니없이 낮은 가치를 제공하는 아파트가 문제인데 사람을 탓하는 건 경제논리와 건설사의 이윤 추구에 놀아나는 것이다. 심하게 말하자면 그게 호구다. 당신과 나는 그런 이웃이 아니기 위해 너무 많이 내 집에서 누릴 수 있는 내 권리를 포기하고 남의 눈치를 보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내 집에서 담배도 마음대로 못 피우는 게 무슨 내 집이냐.(난 비흡연자다) 내 집에서 내 마음대로 쓰레기도 실외에 내놓지 못하는 게 무슨 내 집이냐. 그 따위 주거지는 버려라. 그렇다고 남이 아파트 평면 따다 지어놓은 싸구려 주택을 사지 마라. 스스로를 파악하고 스스로의 취향에 맞는 집을 짓고 살 수 있게 노력해라. 우리는 개취 시대에 살고 있지 않나. 취향은 존중받아 마땅하고 그 취향에 맞는 집이 바로 많은 돈을 기꺼이 지불할 가치가 있는 집이다. 좋은 건축가를 찾아 취향을 반영해 설계하고 잘 지어서 평생 살아라. 가능하다면 언제라도 과밀지역을, 서울 수도권을 벗어날 수 있게 노력해라.
아니면 그냥 사람 탓하고, 이웃 탓하고 화 내고 짜증 내며 살아라. 대신 그럼 평생 어디로 이사를 가도 해결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