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쇼핑 심리학 에세이 (29)
방콕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한국어를 전공한 태국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한 일이 있었는데 그녀의 한국어 구사능력은 매우 높은 편이었다. 특히 억양과 발음은 한국인과 차이가 거의 없어서 가끔 한국 사람과 대화한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아무래도 외국인이다 보니 어색한 한국어를 쓸 때가 없지 않아서, 처음에는 무슨 말이지 하다가 이내 그 뜻을 짚어보고 웃게 되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하루는 구내식당에서 함께 점심식사를 하는데 그녀가 불쑥 요리 얘기를 꺼냈다.
"차장님은 요리 잘하세요?"
"아니... 난 라면 끓이는 수준밖에는..."
"저 요리 되게 잘해요~ 요리는 제가 우리 집에서 제일 잘해요~"
"아 그래? 놀라운걸?"
"근데 설거지는 거지예요. 헤헤헤..."
난 처음에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설거지는 거지라고? 그게 무슨 뜻이지? 내가 잘못 들었나?'
얼마 뒤 '왕'의 반대말인 '거지'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설거지를 못한다는 얘기를 하려 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을 때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그녀는 ‘요리왕'이라는 표현이 있으니 '요리 거지'나 '설거지 거지'같은 표현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수년간 '살림왕'이라는 방송을 연출하면서 '살림 거지'라는 표현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던 나로서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그녀의 어색한 한국어 보다도 발상의 전환이 가져오는 묘한 참신함이 더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그녀가 무슨 말을 배웠는지 한국어는 욕이 참 귀여운 것 같다며 혼자 마구 웃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외국인에게 욕을 가르쳐주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던 터라 그녀가 무슨 욕을 배워서 어떤 식으로 이해하고 저러나 내심 걱정이 되었다.
"무슨 욕... 을 말하는 거지?"
그녀가 잠시 머뭇하더니 대답했다.
"'새끼'요. '새끼'라는 말은 너무 귀여운 말이잖아요. 어떻게 그런 게 욕이 될 수 있는지 너무 재미있어요. 까르르~"
그 말을 들은 나는 허허하며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하긴 외국인의 입장에서 '새끼를 품고 있는 어미 새'와 같은 말을 배웠다면 새끼라는 말이 욕이 된다는 것이 이해 안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사실 새끼라는 단어 자체에는 죄가 없지 않은가. 사용하는 사람이 쓰기에 따라서 욕이 되는 것일 테니 말이다.
'고정관념'이란 사람들의 행동을 결정하는 잘 변하지 않는 굳은 생각, 또는 지나치게 당연한 것처럼 알려진 생각을 뜻한다.
고정관념이 지나치면 한쪽으로 치우친 사고를 하게 되는 ‘편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기에 경계해야 하는 사고방식이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의 반복된 일상은 아무 생각 없이 타성에 젖은 삶을 살게 하면서 새로운 것을 접하는 데에 취약하게 만드는 것 또한 사실이 아니던가.
그러고 보면 과거 홈쇼핑 방송을 연출할 때 새로운 시연 방법이나 포맷이 떠오르지 않아 애를 먹었던 것도 모두 새로운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훈련이 되어있지 않아서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마다 나이를 먹어서 머리가 굳었기 때문이라는 비겁한 변명으로 자신을 합리화하곤 했지만, 사실 좀 더 젊었을 때 새로운 아이디어가 많이 떠올랐던 것은 뇌가 젊어서였다기보다는 아직 타성에 젖기 전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디 일뿐이겠는가. 타인을 볼 때도 이전과 다른 시각으로 보면 전에는 몰랐던 그 사람의 장점이 보일 수도 있고, 늘 다니던 귀갓길도 다른 시각으로 보면 꽤 예쁜 골목으로 변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능숙하게 잘하게 되었을 때 진짜 경계해야 할 것은 고정관념의 형성일지도 모른다. 익숙함의 반대말은 참신함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매일 저녁 집으로 능숙하게 돌아올 수 있다고 해도 수많은 귀갓길 중 하나에만 능통한 것은 아닐는지.
새끼라는 말이 쓰는 사람에 따라서 귀여운 말이 될 수도, 욕이 될 수도 있는 것처럼 대상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 차이라는 단순한 명제를 다시 한번 곱씹어보게 된다.
'보라'라는 한국 이름을 쓰던 그 아르바이트생은 현재 방콕의 어느 한국 회사에서 통역 업무를 한다고 들었다.
세월이 훌쩍 지난 지금은 한국말도 훨씬 늘었을 텐데, 너무 능숙해진 나머지 참신한 표현들을 더 이상 만들어내지 못할까 살짝 염려도 된다.
지금도 가끔 그녀의 때 묻지 않은 발랄함이 만들어낸 기발한 표현들이 떠오른다.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곤 하는데, 추억의 끝에 가서는 늘 색다른 시선의 중요성에 대한 생각으로 마무리를 짓게된다.
언제나 능숙함과 참신함을 겸비한 채 살아갈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