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쇼핑 심리학 에세이 (28)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들이 있기 마련이다. 보통 그런 일들은 직급이 올라가고 연차가 쌓이면서 계속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팀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나서 역시나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이 하나 더 추가되고 말았다. 연말 연초에 하는 팀원 평가가 바로 그것이다.
나름대로 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팀원들을 평가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나부터가 부족함이 많은 사람인데 공명정대하게 타인을 평가하는 '날 선 작업'을 한다는 것은 영 체질에 맞지 않는 일인 것이다.
특히 팀원 개개인의 장단점을 코멘트 해줘야 하는 순간이 오면 내가 이 친구를 보는 이 관점이 맞나, 혹시 잘못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그래도 해야 하는 일이기에 최대한 상대방이 수긍할만한 얘기를 해주게 되는데, 고맙게도 대부분의 팀원들은 지적된 자신의 단점에 대해 고개를 끄덕여주곤 했다.
재미있는 것은 여러 명과 1:1 면담을 진행해보니 공통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신의 보완점이 따로 있더라는 점이다.
예를 들면 이런 말을 할 때 팀원들은 강하게 수긍을 했다.
"일을 할 때 너무 많은 일을 다 잘하려고 하지 마라.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너무 한곳에 집중하다 보면 놓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일을 할 때 주변도 함께 살피면서 하면 좋을 것 같다."
사실 이런 말들은 맞는 말인 듯 하지만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에 맞지 않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거의 모든 팀원들은 자신이 일을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열심히 하려다가 저질렀던 실수(사실은 누구나 저지르는 실수) 한 두 개 정도는 면담 순간에 떠올렸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까 이것은 자신의 이야기가 맞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보완할 점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전적으로 나의 추측이기는 하지만 '바넘 효과'라는 심리 현상을 고려해본다면 완전한 억측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바넘은 19세기 미국의 어느 곡예단에서 사람의 성격을 맞히는 일을 하던 사람의 이름으로, 바넘 효과(Barnum effect)란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성격 특성을 자신의 성격과 일치한다고 믿으려는 현상을 뜻한다.
우리도 점쟁이나 카운슬러의 얘기를 듣다 보면 어떻게 나의 성격을 이렇게 잘 맞출 수 있는지 신기해한 적이 한두 번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들었던 그 얘기를 남에게 똑같이 한다고 했을 때, 그 사람도 자신의 성격이 그렇다고 할 가능성이 높지는 않은가 하는 점은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홈쇼핑 방송에서도 바넘 효과를 활용한 판매 전략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이런 분께 권해드립니다! 스트레스를 받으시는 분, 소화가 잘 안되시는 분, 항상 피곤하신 분...'
이런 문구를 보면서 '저건 바로 내 얘긴데'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는 매일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소화불량에 시달린 채, 피곤을 달고 살지 않는가.
이렇게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을 자신에게만 적용되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는 점에서 보자면, 왜 연인과 이별 후에 듣는 대중가요의 가사가 전부 내 얘기처럼 들리는지 자연스레 이해가 된다.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정형화된 얘기를 믿는 것보다는, 객관적인 정보들을 찾아보고 냉철하게 비교하는 것이 세상을 살아갈 때나 쇼핑을 할 때 필요한 자세임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언제나 그렇듯 말은 참 쉽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팀장으로서 팀원들과 진행한 면담 내용에 거짓이 있었다는 뜻은 아니다.
일을 할 때 선택과 집중을 했으면 좋겠다는 것과, 자기 일 외에 주변 돌아가는 일도 함께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는 것은 모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였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적용된다는 말은 뒤집어서 얘기하면 '나만의' 얘기가 아닐 뿐이지 '나의' 얘기가 아닌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이번에 면담을 하게 될 때에는 '바넘 효과' 같은 조언보다는 개인의 비전에 대한 맞춤형 대화를 해보려 한다. 팀원들의 성장을 위해 관리자로서 꼭 해줘야 하는 말이 없을 수는 없다.
팀원들이 상처 받지 않고 잘 들어줬으면 좋겠다.
역시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내키지 않아도 해야 하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