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말아요

홈쇼핑 심리학 에세이 (30)

by 홈PD

"팀장님. 이거 잘 안될 것 같아요..."


신상품 론칭 전에 방송을 준비하던 담당 PD로부터 자주 듣게 되는 말이다. 시험 전 잘 못 보면 어쩌지 하는 수험생의 불안감과 비슷한 감정이지 싶다.


홈쇼핑 PD라면 누구나 본인이 맡은 상품을 적절한 콘텐츠에 잘 녹여 높은 매출이 나오기를 원한다. 하지만 조금만 PD 생활을 해보면 그 모든 것이 본인 뜻대로 되지 않음 또한 금세 알게 된다. 방송 준비를 더 많이 한다고 해서 좋은 매출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준비가 부족하다고 해서 꼭 매출이 적게 나오는 것도 아니다. 즉 본인이 들인 노력과 판매 실적이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많은 PD들에게 자괴감을 주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열심히 준비한 방송을 진행하는데 갑자기 뉴스 속보가 뜰 때도 있고, 전산 장애가 발생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본인이 애를 많이 썼음에도 원치 않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저 수많은 변수 속에서 자로 잰 듯한 결과가 나올 수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는 점을 이해하고 넘어가는 수밖에.


이런저런 사례를 들면서 걱정할 필요 없다고 팀원들을 격려하기는 하지만 쉽게 수긍을 하는 눈치는 아니다. 하긴 몇 마디 말로 사그라질 걱정이면 처음부터 걱정이란 이름을 붙이지도 않았을 것 같기는 하지만.




현대인들은 모두 크고 작은 걱정을 하면서 산다지만, 인류는 처음 탄생했을 때부터 걱정을 하며 살았어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사람들이 길을 건널 때 차조심을 해야 하듯 구석기인은 갑자기 튀어나오는 맹수를 조심했어야 했을 것이며, 나무에 열린 과일에 독이 있지는 않은지 걱정을 했었을 것이다.

걱정은 신중함을 불러오고 그러한 신중함이 생존 확률을 높였을 터이니, 결국 걱정하는 마음은 태고적부터 내려온 인간의 당연한 본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걱정을 안 하며 살기를 원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입장에서 보자면 그러한 세상이 존재할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문제는 현대인들의 걱정은 단순히 본인의 생존에 국한된 걱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보다 나은 삶을 원하는 각자의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일이 더 많은 것처럼 보인다.


'램프 증후군'이란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별로 없는 일에 대해 요술 램프의 요정을 불러내듯 수시로 꺼내 보면서 걱정하는 현상을 뜻한다.


이런 식의 수시로 꺼내보는 걱정이 큰 산업으로 발전하게 된 대표적인 예가 교육산업일 것이다. 특정 학군에 학원이 발달하고 학생과 학부모가 몰리는 현상의 이면에는 남들이 받는 교육을 우리 아이만 못 받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자리 잡고 있다.

어떤 학원에 가서 무슨 강의를 듣느냐 하는 것이 합격을 보장해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안 했을 때 얻어질지 모르는 안 좋은 결과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훨씬 강한 것이다.


홈쇼핑에서 학생들의 교재를 판매할 때 얼마나 많은 학부모와 학생이 이미 선택했는지를 강조하는 것에는 이런 이유가 숨어있다.

다른 상품도 마찬가지이지만 교육 관련 상품은 특히 다들 벌써 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면 마케팅 효과가 극대화된다. 본인이 아닌 자녀의 미래와 연관된 것이기에 더욱 걱정스러운 마음이 구매를 유발하는 것으로 보인다.

요즘은 SNS의 발달로 각종 사건사고가 빠르게 전파되는 세상이고 보니, '일어날지 모르는' 불행에 대한 걱정의 정도가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이는 독거노인 및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예전만큼 가족이나 공동체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계층이 늘어나는 사회 현상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보자.

이런저런 이유로 걱정을 많이 유발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그 '걱정거리'들을 다 받아들이면서 조심조심 사는 것이 최선일까?


미국의 심리학자 어니 젤린스키(Ernie J. Zelinski)에 의하면, 사람이 하는 걱정의 4% 정도만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이고 나머지 96%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즉 96%의 걱정해봐야 별 도움 안 되는 일들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내일 출근해서 불편한 상사를 마주해야 하는 걱정을 일요일 밤에 아무리 해본들 퇴사를 하지 않는 한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차라리 충분히 잠을 자고 산뜻한 기분으로 출근하는 것이 최선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쓸데없는 걱정을 그만두자는 촌철살인의 문구일 것이다.


결과가 좋지 않을까 봐 하는 걱정이 지금의 최선을 유발하고 있다면 나쁜 것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할 수 있는 준비를 다 했는데도 계속 불안해하는 마음에 괴롭다면 그것이 오히려 나쁜 컨디션을 불러올 수 있고, 실제로 나쁜 결과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지금 무엇 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다면 찬찬히 자문을 해보자. 이게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걱정인지 아닌지.

아니라는 답이 내려졌다면, 그런 쓸모없는 걱정은 과감하게 지워버리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것임은 자명하다.


국어사전에서는 '걱정'이라는 단어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걱정 - 안심이 되지 않아 속을 태움'

결국 편안한 마음을 유지하면 걱정이 사라질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 출근하면 론칭을 걱정하는 후배 PD L에게 이런 말을 해줘야겠다.


"실적이 잘 나오면 잘 나온 대로, 안 나오면 안 나오는 대로 우리는 교훈을 얻을 수 있고, 그 자체로 너는 의미 있는 일을 한 것이야. 그러니까 안심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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