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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Nov 11. 2024

엄마, 그것도 몰랐어?

내가 몰랐던 아이의 책생활

 


아이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 언젠가부터 잠자리에 들기 전 항상 책을 읽어주었다. 겨우 한 권만 읽어 준 적도 있고 때때로 여러 이유들 앞에 읽지 못하는 밤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놓지 않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루틴에 독서를 녹여냈던 날들이었다. 아이가 크면서 내가 읽어주는 시간보다 스스로 책을 펼치는 시간이 늘었다. 단연코 내가 읽어주는 책을 가장 좋아하지만 제 취향이나 흥미, 기분, 호기심에 따라 몰입 독서를 하는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책을 읽는 아이의 모습은 늘 어여쁘다. 어찌할 바 모르는 손길로 다급히 핸드폰 화면을 열어 그 모습을 카메라로 담기 바쁘다. 촬영 소리가 나지 않는 카메라를 사용할 때도 있고, 부러 (너의 모습을 좋게 보고 있다는 무언의 응원을 실어) 촬영 소리를 내며 사진을 찍을 때도 있다. 며칠 전에도 부엌일을 마무리하는 사이 혼자 침실에 책을 가져가 읽는 아이의 뒤태를 보며 다급히 핸드폰을 들었다. 제가 좋아하는 축구 관련 서적들이 여러 권 있는데, 오늘은 그 중 한 권이 낙찰된 모양이었다. 역대 유명 축구 선수들에 대한 설명이 일러스트와 함께 펼쳐져 있다. 

 

침대 위, 엎드린 자세로 배게 위로 가슴을 올린 아이가 책에 파묻히듯 골몰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절로 피어났다. 봉긋 솟아오른 둥그런 엉덩이를 토닥이며 가까이 다가가서는 사진 한 장을 남겼다. 나의 인기척을 느낀 아이가 느린 몸짓으로 고개를 잠시 돌렸다가 다시 책으로 빠져든다. 

 

"책 재미있나 보네, 엄청 집중했구나."

"엄마, 그것도 몰랐어? 나 책 엄청 좋아해!"

 

거 무슨 생뚱맞은 소리를 하느냐는 듯한 아이의 반응에 황당한 표정으로 잠시간 앉아 있다가 침실을 벗어났다.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것도 같다. 뭔가 내가 잘 못 알고 있어도 한참 잘 못 알고 있었다는 생각에 어안이 벙벙하다. 축구가 좋아서 책을 보는 줄 알았는데 책이 좋아서 그 책으로 축구를 알아가는 것이었다. 유레카. 멍 했던 머릿속이 재빠르게 돌아간다. 돌이켜보니 정말 그런 것도 같다. 아이가 좋아하는 건 책이었나. 

 

 

자라는 동안 매 시기별로 좋아하는 것들은 늘 정해져 있었다. 바다 생물, 공룡, 탈 것, 신비아파트, 포켓몬스터, 축구에 이르기까지. 뭔가 하나에 빠지면 정점을 찍는구나 싶을 정도로 흠뻑 빠지는 아이였다. 그 모든 것들을 섭렵하는 과정에는 늘 '책'이 함께였다. 영상물로도, 실물이나 장난감으로도 접했지만 그 모든 것들을 책으로도 밀접하게 만나는 과정들이 빠짐없이 있었다. 그럴 때면 아이가 좋아하는 것들이 중심 주제인 책들이었으므로 으레 그것들을 접하는 무수한 수단 중 하나일 뿐이라 간단하게 이해하고 넘어갈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와 되짚어보니 아이의 책 생활에 대해 완전히 반대로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좋아하는 것들이 무수히 바뀌는 과정 속에서도 책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책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세상을 만날 수 있음을, 어쩌면 아이는 일상 속에서 시나브로 깨닫는 과정들을 거쳐온 것은 아닐까. 책을 통해 마주하는 세상의 이모저모에 대해 모종의 믿음과 흥미가 피어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책을 좋아한다고 당당하고 또 당연한 어투로 말하는 아이의 모습에서 지난 날의 오해와 무지를 반성한다. 앞으로도 오랜 시간 아이의 곁에서 저 책이 함께 꾸려나갈 삶들을 마음 다 해 응원하는 것으로 미안함을 대신하려 한다. 엄마가 몰라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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