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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의 마음

by 밤비


지난 주말, 가족과 함께 청도의 한 까페를 찾았다. 건축문화상을 받았다는 명패가 자랑스럽게 입구에 걸려있던 까페. 노출 콘크리트로 단조롭게 마감된 입구를 지나 뒤뜰 계단에 이르러서야 이 건물의 멋스러움이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계단 양쪽으로 얇고 넓게 펼쳐진 연못과 곳곳에 마련된 그늘, 전체 뷰까지 고려한 좌석 배치까지. 물멍, 산멍, 하늘멍 하기 안성맞춤이다. 폭염에도 불구하고 물가 옆 그늘은 서늘하기까지 한 바람이 드나들어,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아이는 날아다니는 잠자리에, 얕은 연못에 떠 다니는 이름 모를 곤충에, 옆 테이블의 희고 작은 강아지에 흠뻑 마음이 뺏겼다. 양가 부모님은 서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고, 남편은 옆쪽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 길쭉한 캠핑 의자에 기대어 휴식을 취한다.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들이마시며 내 마음대로 이곳에 ‘물의 정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잔잔한 연못이 말을 걸어올 것만 같다. 평온함이 분주히 흐른다.


쿠크와아아아아악!


그 때였다. 별안간 터진 폭발음에 모두가 화들짝 놀랐다. 잔잔하기만 했던 연못에서 갑작스레 물기둥 하나가 튀어오르는 게 아닌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심장을 부여잡던 모두가 이내 푸하하 웃음이 터진다. 모두를 놀래킨 맹랑한 파열음에 비해 몹시 작은 크기의 분수가 하늘을 향해 퐁퐁퐁 튀어오른다. 조용히 올라왔다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가라앉는 아기 물기둥. 어쩐지 그 모습이 귀엽기까지 하다.


소란이 잠잠해지자 기왕이면 좀 더 큰 분수여도 좋겠다는 생각이 따라붙었다. 분수라면 시원하게 그 자태를 뽐내야, 하늘을 향해 맹렬히 솟아올라야 제 맛 아니던가. 분수 치고는 퍽 작고 소극적이다. 가만히 아기 물기둥을 바라보다 문득,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아찔한 감각이 전신을 덮었다.


그것은 사람을 위한 분수였다. 물방울이 튀지 않게, 혹여자 흠뻑 젖지 않게, 커피잔을 들고 대화를 나누는 손님들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계산된 배려의 높이와 힘이었다. 그 섬세한 마음씀씀이가 묘하게 고맙게 느껴졌다.


우리는 종종 크고 분명한 것을 원한다. 감정도, 성과도, 기쁨도 ‘확실히’ 느껴지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성공했다고, 이루어냈다고, 그럴싸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 날 내가 만난 분수는 오히려 작아서 좋았다. 물방울 하나 튀지 않고도 마음에 잔잔히, 선명한 흔적을 남겼다. 요란하지 않은 움직임으로 조용히 자리를 지켰고 그래서 오히려 오래토록 기억에 남았다.


자리를 정리하고 계단을 내려서며 다시 분수를 바라보았다. 시선과 같은 높이에서도 여전히 분수는 작게 솟았다. 그러나 그 작은 높이 속에 담긴 조심스러움은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아주 잠깐, 나 역시 그런 존재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눈에 띄지 않아도, 튀지 않아도, 조금은 작고 보잘것 없어보여도 더 배려 깊은, 자리를 꼿꼿이 지키며 제 본분을 다 하는 작은 분수같은. 바로 그런 사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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