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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무슨 생각 해?

매일글쓰기 23일차

by 밤비

아이가 대뜸 묻는다.

"엄마, 엄마 지금 무슨 생각 하고 있어?"

운전 중이었다. 주차장을 벗어나 이제 막 차도로 진입한 지 채 5분도 지나지 않았고 신호를 막 받는 참이었다. 정적을 깨고 전해진 아이의 질문에 뜸 들이지 않고 답한다.

"아무 생각도 안 하는데?"

일순간 아이의 눈이 동그래진다. 놀랍다는 듯 다시 한번 더 정말로 '아무것도' 머릿속을 채우지 않고 있냐고 묻는다. 대답은 같다. 정말 아무 생각도 않는다고, 자동적으로 또 기계적으로 운전을 할 뿐이라고 답한다. 이번에는 내가 아이에게 되묻는다.

"그럼 너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이런 순간들에도 생각을 하고 있어?"

"당연하지! 그래서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할 때 다른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어."

웃음이 터진다. 아이는 가만히 있는 순간마저 참 바쁘구나, 같은 생각도 해 본다. 엄마는 대체로 상상이나 공상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머니까 아무래도 나중에 아빠한테 물어보면 생각하는 것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너와 공감대 형성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러주었다.

애석하게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편도 나와 비슷한 상태로 머릿속이 비어있다고 답했다. 아이는 못내 아쉬워하면서도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뉘앙스로 한숨을 내쉬었다. 남편이 묻는다. 그럼 너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고.

"피카츄!"

"어?? 피카츄? 갑자기?"

"응. 피카츄 백만 볼트 찌릿하는 거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빠가 물어봤으니까 그거 말해 준 거지."

정말 맥락 없는 생각의 흐름이다. 분명 조금 전까지 마트에서 산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집에 가서 멜론을 깎아 먹자는 대화를 했고, 그 대화가 끊긴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피카츄? 백만 볼트? 이내 차가 나무가 우거진 길을 지나는데 아이가 또 말을 던진다.

"나무를 먹으면 무슨 맛이 날까?"

"너 설마, 지금 지나치는 나무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고?"

"응, 딱 그 생각 했어!"

그 뒤로도 아이는 몇 번인가 더 자신의 생각을 실시간 중계했다. 우리는 그게 재미있어 가만히 생각이 튀어 오르는 순간을(말해주기를) 기다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집까지 드라이브를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내 기준 지나치게 오래 멍- 을 때리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매 순간 저만의 세계로 그득한 아이의 머릿속이 실시간 바삐 반짝거리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함부로 그 시간을 재단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해야 할 일, 중요한 일, 가까운 미래를 예견하며 순서를 정하는 일 등이 아니면 그다지 열심히 돌아가지 않고 푹 쉬는 쪽을 택하는 나의 머릿속에도 반짝이는 순간들을 선사하고 싶어졌다. 원래는 모두가 공상과 상상, 질문, 호기심 그득했던 머릿속이 나이가 들어가며 점차 일상, 휴식, 멈춤 같은 것들로 비워지는 건 아닐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 어쩐지 오늘은 아이가 나의 큰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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