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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 떠나는 날

매일글쓰기 28일차

by 밤비

캠핑을 떠나는 날이면 마음이 분주하다. 분홍빛 설렘보다는 초록빛 책임감이 압도한다. 며칠 전부터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혼자 이리저리 발을 동동 구르는 형국이다.


어젯밤, 남편에게 부탁해 창고에서 짐들을 모조리 거실로 꺼냈다. 오랜 캠퍼 생활로 항상 필요한 물품들은 대체로 차곡차곡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소모품들 중에는 채워야 하는 것도 있고 계절이나 날씨, 캠핑지의 특성에 따라 새로 챙기거나 빼야 하는 것들도 있다. 우리 셋만 떠날 때와는 달리 오늘처럼 다른 팀과 함께일 때면 조금 더 신경 써서 짐을 살핀다.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다.

열심히 써 둔 메모들을 하나씩 살피며 빠진 물건이 없는지 체크하고 또 체크한다. 장소 불문 더 멀리 떠나야 하는 여행지에서도 “돈과 여권만 있으면 돼!” 하는 베짱이 어쩐지 캠핑지에서만큼은 호두 알처럼 쪼그라든다. 캠핑장에서는 아주 사소한 부족함이 커다란 낭패로 이어지는 일들을 자주 겪었기 때문. 아무것도 구할 수 없는 오지로 떠나는 것도 아니고 정 필요한 것이 있으면 차를 타고 나와 구매를 해도 될 테지만, 텐트를 치는 그 순간부터 자연에 담뿍 젖어들고 싶은, 그 여유와 풍요로움을 조금도 방해받고 싶지 않은 욕심 탓이다. 편하게 생각하자는 남편 곁에서 거듭 메모를 살피고 또 살피는 나는, 그래, 조금 귀여운 욕심꾸러기인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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