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겨울

여수의 사랑 - 한강

by 밤박


사람들은 모종의 이유로 변화한다. 특히나 상실 앞에서 사람들은 눈과 귀를 막고 전과는 다른 존재가 된다. 뜨거웠던, 적당히 따뜻할 수 있었던 사람들의 몸과 마음 전부가 마치 힘을 잃어버린 채 뚝 끊어져 버린 낙엽처럼 바닥에 나뒹군다.


떠나간 것은 가족일 수도, 아주 오래 사랑하던 사람일 수도, 혹은 마음속에서 점점 지워진 어떤 감정일 수도 있다. 다만 나를 짓누를 수 있는 충분한 무게를 가진 상실은 마음속 어딘가에 쿵 하고 떨어져 늦가을과 초겨울의, 혹은 늦은 밤과 신새벽의 경계를 쉬이 깨트려 버린다. 이제 그곳에는 짙은 회색의 진눈깨비가 날리고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만 같은 검은색이 뒤덮는다.


겨울이 지나가면 봄이 오고, 새벽을 감내하면 아침이 찾아오는 것처럼 상실의 저편에도 초록색 싹이 트고 붉은 해가 떠오를까. 하지만 소설 속 모든 이들은 상실이 만들어낸 검은 겨울에 너무도 무심하게 놓여져있다. 영원히 색을 가질 수 없을 것만 같은 그 차가운 검정색은 사람들을 안쪽에서부터 얼어붙게 만든다.


빙결은 필연적으로 그 대상을 느리게 만들고 깨지기 쉽게 만들기 때문일까, 제때 치유받지 못한(혹은 그것은 결코 치유될 수 없는 것일까) 상실의 인간들은 그 검은 겨울 안에서 더뎌지고 몇 번이고 조각난다. 아, 상실로 인해, 그 죽음과 이별과 말소로 인해 사람들은 어떻게 서든지 변화한다.


어린 딸아이를 잃은 상실감에, 검은 겨울을 감내하는 어떤 아버지의 모습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불에 타는 나무들. 그것이 죽은 딸의 정원에 그대로 심겨지길 바라는 마음. 나무를 파내고 남은 시커먼 구덩이. 그의 모든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그 구덩이들. 당장이라도 메워버리고 싶은 처절한 구덩이들.


지나간 상실과 다가오는 상실.

육신을 자빠트린 덫과 영혼을 잡아당기는 구덩이 같은 것들.

어디에나 있는 것들.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것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벽 너머로의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