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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아 Sep 13. 2024

착한 형

04 가을과 찬영


 “어서 오세요, 커피의 날씨입니다. 어떤 걸로 주문해 드릴까요?”

 여러 프랜차이즈 카페를 경험해 온 덕분인지 가을은 익숙하게 손님들을 응대했다. 개인카페에만 있는 독특한 시그니처 메뉴를 제외하고는 웬만한 음료도 곧잘 만드는 가을이었다.

 “이 메뉴는 여기 레시피대로 만들면 돼. 에이드 원액 위치는 파악했지?”

 주로 카페를 오픈하는 건 찬영이었고, 마감은 준우가 도맡아 했다. 가을은 중간조라는 명목으로 투입됐지만, 그러면서도 손님이 몰리는 시간에는 함께 카운터를 봐주기로 했다. 당분간은 찬영과 함께 오픈을 하면서 업무를 배우기로 한 가을이었다.   

  

 “되게 오랜만인데, 형 안 보고 싶었어?”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 건지 내내 가을의 옆에서 떨어지지 않는 찬영이었다. 자꾸만 가을의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가을에게 찬영이 속삭였다. 세상이 아무리 좁다지만 가을은 여기서 이렇게 찬영을 만날 것이란 걸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고, 그건 그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찬영은 가을과의 재회를 인연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을은 그것을 애써 모른척했다.     


 “태웅이가 너 보고 싶어 하던데, 오늘 같이 갈래?”

 아니나 다를까 찬영은 아직도 모임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매장이 바쁘지 않으면 일찍 퇴근할 수 있다고 가볍게 말하는 찬영을 보며, 가을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 오늘 첫 근무야.”

 가을이 짜증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찬영과 가을의 첫 만남은 어느 한 모임에서였다. 

 “서가을! 여기-”

 클럽 앞에서 가을을 기다리고 있는 태웅이었다.

 “저기에 애들 다 있어, 가자.”

 태웅은 친구들 사이에서도 성격 좋고, 잘 놀기로 소문난 마당발이었다. 잘 어울릴 것 같은 친구들이 있으면 서로 소개를 시켜주기도 했고, 이 세계를 처음 접하는 친구들에겐 적극적인 가이드를 자처하고 나섰다. 가을은 그런 태웅이 친구인 게 좋았다. 중학생 때, 자신이 냅다 고백했던 기억만 떠올리면 아직도 낯이 뜨거워지기는 하지만.     


 “오늘은 누나가 뭐라고 안 해?”

 여름은 유독 태웅만 만나러 가면 귀가가 늦어지는 가을을 걱정하는 누나였다. 어릴 적부터 부모의 빈자리를 대신해 온 여름이라는 걸 가을 역시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런 줄 알면서도 가을은 이 순간들을 놓기가 힘들었다. 동성 친구들과의 자유는 유일하게 자기 자신을 찾는 시간이었으니까.     


 여전히 남자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어색한 가을이었기에 오늘도 태웅은 새로운 친구들을 소개해주려는 모양이었다. 태웅이 가을의 손을 잡고 데리고 간 테이블에선, 뉴 페이스의 등장을 반기기라도 하는 듯 여기저기서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가 그를 자신의 옆자리에 앉히기 위해 하나같이 끼를 부리기 시작했고, 끝내 밀리고 밀려난 자리에 착석하게 된 가을이었다. 분위기가 낯선 듯 어정쩡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가을을 보며 주위 사람들은 어깨동무를 하거나 머리를 쓰다듬기도 하며 잔을 건넸다. 한 잔, 두 잔 술을 마시고 나니 금방 가을의 볼이 발그스레해졌다. 한껏 취기가 오른 가을에게 친구들은 나가서 춤을 추자며 그를 테이블 밖으로 끌어냈다. 이 세계에 조금은 익숙해졌을까, 가을이 어느덧 술기운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힘껏 땀을 낸 뒤 자리로 돌아와 털썩 앉는 그의 앞으로 차가운 음료 한 잔이 놓였다. 그렇게 그를 처음 알게 되었다. 

 찬영은 가을이 필요했고, 가을 역시 찬영에게 도움을 받았다. 둘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부류의 사람이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잘 맞는 연인이었다. 마치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처음엔 찬영과 함께 하는 시간이 좋았다. 서로 보고 싶으면 봤고, 만지고 싶을 때 만지면서 가을은 점점 그를 사랑하게 됐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가을이 그 모임을 더 이상 나가지 않게 된 것도 찬영 때문이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탈을 썼지만 결국엔 열등감이란 걸 깨달은 뒤였다.     


 “왜? 너 거기 좋아했잖아, 돈 때문에 그래?”

 더 이상 동성애 클럽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는 가을을 향해 찬영이 비꼬듯 말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그런 찬영의 태도를 보며, 가을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는 여전히 변한 게 없어 보였다. 계속해 말을 건네는 찬영의 말에 대꾸하지 않은 채 가을이 남은 원두를 마저 갈기 시작했다.     


 사실 그와 함께 있을 때면 가을은 모든 것이 편할 수밖에 없었다. 찬영은 금전적인 부분에서라면 가을에게 아낌없이 퍼주는 형이었으니까.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필요한 것들까지 모두. 그래야 가을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찬영이 선택한 방법이었다. 

 그래, 그에겐 돈이 많은 부모가 있었고, 언제부턴가 가을 역시 그런 관계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여러 개 하지 않아도 괜찮았고, 친구들과 마냥 어울려 놀기만 하는 생활도 그저 즐거웠다.

 하지만 그럴수록 자신의 감정이 사랑이 맞는지에 대한 확신은 불투명해져 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알 수 있었다.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감정이 사실은 열등감이었다는 것을. 자신에게는 어렵고, 매 순간 고민됐던 일들이 그에게는 너무도 쉬운 것에 불과했으니까. 

 찬영이 다치는 것도, 자신이 그의 손에 놀아나는 것도 역겨워졌다. 자신은 그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되면서 가을은 끝내 찬영과의 관계를 끝내기로 했다.     


 “오늘이 좀 그러면 내일 놀자, 휴무잖아.”

 “… 다른 일 해.”

 “얼마 받는데? 내가 줄게, 놀자.”

 그와 헤어진 이유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찬영은 가을의 마음을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가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별 다른 일은 없었는지 전혀 묻지 않았고, 그저 자신이 생각하는 목적만 달성한다면 찬영은 가을의 감정을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랑곳하지 않는 가을의 팔을 잡는 찬영의 손목 위로 붉은 자국이 보였다.     


*


 카페에 출근했을 때 카운터에는 찬영 대신 혼자 분주하게 움직이는 준우가 있었다. 

 “오전에 주문이 엄청 밀려서, 출근하자마자 미안한데 저것 좀 포장해 줄래?”

 준우가 다급한 목소리로 가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바쁘게 음료를 만들면서도 가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찬영이 신경 쓰였다. 휴일동안 내심 연락을 기다린 가을이었지만, 찬영에게선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우연히 그와 다시 만났고, 그에게서 옛날로 돌아가자는 얘기를 들었을 때 가을은 자신의 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찬영은 가을에게 그저 좋은 형이어야 한다는 것을. 그것도 착한 형으로.     


 “돈 더 필요하면 내가 빌려줄게.”

 가을에게 큰돈이 필요할 때 찬영이 선택한 방법은 자해였다. 자신의 온몸을 밧줄로 묶거나 피를 내어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부모에게 가장 큰 협박이 된다는 걸 알고 있는 찬영이었다. 아들의 죽음을 도구로 한 그의 방법은 사실 가을에게 꽤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지만, 도와달라는 그의 말을 외면할 순 없었다. 

 그가 응급실로 실려갈 때면 가을은 학비를 해결했고, 생활비도 넉넉해졌다. 하지만 그럴수록 자신의 감정에 대한 확신은 불투명해져만 갔다. 가을은 어느 순간 알 수 있었다.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감정이 사실은 열등감이었다는 것을. 자신에게는 매 순간 어렵기만 한 일들이 찬영에게는 너무도 쉬운 것에 불과했다.     


 며칠 째,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핑계를 대며 가을은 찬영을 외면하고 있었다. 그럴수록 찬영은 자신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가을에게 집착했다. 가을이 왜 다시 일을 시작했는지는 전혀 궁금해하지 않는 찬영이었다. 그리고 그날 역시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밤새 일을 마치고 아침에나 집에 들어온 가을의 눈에 자신의 몸을 밧줄로 묶고 있는 찬영이 보였다.

 “네가 전화를 안 받아서 내가 혼자 했는데… 어때, 매듭 잘 맸지?”

 아들이 어리광을 부리면 그의 부모는 끝내 못 이기는 척 받아줄 것이었다. 처음엔 한 달, 다음엔 두 달, 그리고 세 달이 걸릴 때도 있었지만 이번엔 벌써 다섯 달째였다. 생각보다 협박이 통하지 않자 찬영은 마지막 수를 던졌다. 

 “꽉 묶어줘, 거기.”

 가을에게 케이블 타이를 건넨 찬영이 말했다. 이제는 그가 어떤 행동을 해도 무덤덤한 가을이었다.    

  

 과연 사랑과 열등감과 공존할 수 있을까? 언제쯤이면 그가 내려놓을 수 있을까, 자신이 어떻게 하면 그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죽지 않을 정도여야 했다. 그의 발목을 감싸 쥔 손에 힘이 들어가자 찬영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지만, 가을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찬영이 응급실로 실려간 그날, 그 길로 가을은 집을 나와버렸다. 그리고는 더 이상 그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가 부모로부터 드디어 학비를 받아냈다는 문자를 보냈을 때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와의 관계를, 쾌락의 감정들을 끝내야만 했다. 그를 위해서도, 자신을 위해서도 나은 선택이라 믿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와 재회하던 날, 가을은 다시 흔들릴 뻔한 감정을 겨우 다잡았다. 다시는 그때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으니까.  

    

*     


 “이거 동사무소지? 배달 갔다가 바로 퇴근한다.”

 멀리서 찬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을의 시선이 포장된 음료를 실어 나르는 그에게 향했다. 헬멧을 쓰고 있어 그의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가을은 분명 알 수 있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고 있다는 것을. 가을이 살짝 고개를 숙여 그에게 인사했지만 그는 그런 그를 모른 체했다. 둘의 관계는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는 듯한 찬영이었다.

 뒤돌아 떠나는 찬영의 모습이 어쩐지 평소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만일 그 순간이 그와의 마지막 시간이란 걸 알았다면 가을은 그를 붙잡았을까. 찬영은 가을의 마음이 내내 기억할 사람이었다.

 “어서 오세요, 어떤 걸로 주문하시겠어요?”

 이윽고 카운터로 고객이 다가왔다. 마음 한편에 남아있던 돌덩이가 내려가자 그제야 가을의 입가에 가벼운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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