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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아 Sep 12. 2024

말할 수 없는 비밀

04 가을과 찬영


 “나 카페 연락 왔어. 면접 보러 오래.”

 벌써 세 번째 아르바이트였다. 여름은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가을이 너무 무리해서 일을 하는 것 같다며 걱정했다. 복학해서 근로장학생까지 신청하면 네 개가 될 터였다. 그런 여름에게 가을은 젊어서 많이 벌어두어야 한다며 커피를 마저 내려주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른 아르바이트에 비해 바리스타는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른 친구들이 대학교에 입학할 때, 가을은 일을 시작했다. 당장은 학교를 갈 형편도, 마음 편히 공부를 할 상황도 아니었다. 그렇게 고졸 채용으로 입사한 대기업에서 6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뒤 그는 늦게나마 대학교에 진학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커피라는 새로운 분야를 알게 되었다. 난생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이 생긴 가을이었다. 가을이 알아본 카페는 서점에서도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어쩐지 여름은 오늘따라 가을이 내려준 커피의 향이 유난히 향긋하게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로스팅한 지 2주밖에 되지 않은 신선한 원두라며, 여름을 향해 제법이라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가을이었다.

 나무들은 곧 다가올 여름을 맞이하기 위해 파릇파릇한 잎사귀를 내밀고 있었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지도 않았건만, 벌써부터 후끈하게 느껴지는 날씨에 가을이 머리 위로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브랜드 〔커피의 날씨〕는 상가들이 많이 모여있는 중심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위치한 개인 카페였다. 도보로 16분, 걸어 다니기에도 나쁘지 않은 거리였다. 버스비를 아낄 수 있다는 생각에 가을의 마음이 비장해졌다.     


*     


 “어서 오세요.”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드립으로 커피를 내리고 있는 준우가 보였다. 평일 오후 네시의 매장은 다소 조용한 듯했다. 면접을 보러 왔다는 가을의 말에 자리를 안내한 뒤, 무슨 커피를 마시겠냐고 묻는 그의 말투는 단정하고 차분했다. 어쩐지 선한 인상에서 여유로움도 느껴졌다.

 곧이어 드립커피 두 잔과 함께 가을의 맞은편 자리에 준우가 앉았다. 커피부터 맛보라며, 자신이 직접 원두를 골라 블렌딩 했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는 자부심이 있었다. 이윽고 그가 명함을 건네며 자신을 소개했다. 대표이사 함준우, 카페 사장인 그는 친동생과 단 둘이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동네 어때요?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가을의 이력서를 보며, 아이스 브레이킹을 하는 준우의 눈썹이 들썩였다. 사실 가을은 여전히 이곳이 유령도시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낮에는 사람들이 전부 일을 하러 외곽으로 동네를 떠났다가 밤만 되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하는 이상한 동네. 최근 들어 상점이 많이 들어서면서 그나마 인구수가 늘기는 했지만.     


 “일을 많이 했네요? 지금도 하고 있고….”

 준우가 가을의 이력을 보며 다소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가을이 그토록 열심히 일을 했던 건 단순히 돈 때문이었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 없이 혼자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했던 그가 택할 수 있는 건 유일하게 일이었으니까.

 “개강하면 더 바빠질 텐데, 카페일까지 하나 더 늘릴 수 있겠어요?”

 문제없다고 말하는 가을을 보며, 준우의 입가에 잔잔한 웃음이 번졌다. 카페와 가을의 이름이 어쩐지 잘 어울린다고 얘기하는 준우였다.

 “가을 씨는 주로 저랑 많이 일하게 될 거예요. 동생은 틈만 나면 자리를 비우거든요.”

 준우가 가을에게 이르듯 이야기를 이어갔다. 함께 카페를 창업한 5살 터울의 동생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장을 구하기는커녕 친구들과 놀러만 다니느라, 백수 생활이 길었다고 했다. 서른 살 먹은 자식을 보다 못한 부모님이 어디 가서 명함이라도 내밀라며 지어준 건물이 이곳, 〔커피의 날씨〕였다. 부모 복이었구나, 어쩐지 준우의 얼굴엔 작은 그늘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럼 동생분은 지금 자리를 비우셨나요?”

 “배달 갔어요. 가까운 곳은 직접 커피를 가져다 드리기도 하거든요. 아, 저기 오네요.”

 준우가 카페 입구를 가리키자, 때마침 음료 배달을 마치고 온 동생이 보였다. 가을이 뒤를 돌아본 그곳에는 오토바이 헬멧을 막 벗고 있는 찬영이 서있었다. 함찬영, 준우의 동생이자 가을의 아는 형이었다.

 “서가을?”

 그 역시 가을을 알아보고 다가왔다. 함께 일하게 된 친구라며 소개하는 준우의 말에 반가워하는 찬영을 보자 이윽고 가을에게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생겨났다.     


*    


 “내가 없으니까 회사가 돌아가질 않어, 어떻게 된 게!”

 멀리서 영일이 카트에 책을 잔뜩 실은 채 서점 문을 열었다.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는 늘 딸 자랑을 늘어놓았다. 아직 말도 못 하는 아이지만 벌써부터 이목구비가 뚜렷하다며, 나중에 시집보내기 아깝다고 말하는 영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여름은 장난기 가득한 그의 모습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책 던져줬어, 오늘. 아- 왜 꼭 나 있을 때만 행사를 하는 거야, 왜?”

 영일이 투덜거리며 카운터 밑으로 밴딩 된 박스들을 내렸다. 족히 10 덩이는 돼 보이는 듯했다. 인기 있는 아동 신간도 한두 덩이 정도만 입고되곤 했는데, 일반 단행본이 이렇게 많이 입고된다는 건 꽤나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일 것이었다. 대체 무슨 책이길래, 싶은 여름이 영일과 함께 책을 옮겼다.

 “아! 저번에 옆에 편의점에서 어떤 학생이 책 추천해 달라대?”

 동하를 얘기하는 듯했다.

 “교복 입은 애가 임신했을 때 무슨 책이 좋냐길래, 내가 ‘임신 대백과’ 알려줬는데 그거 사갔나 모르겠네. 나도 도움 많이 받았거덩.”

 안 그래도 동하가 그 책을 사갔다며 대답하는 여름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이내 들려야 할 다른 서점이 많다며, 영일이 바쁘게 자리를 옮겼다. 그의 뒷모습에 대고 인사한 뒤, 여름이 책 한 덩이를 집어 들었다. 박스에는 이찬비 작가의 신간 도서가 들어있었다. 이찬비, 여름의 옛 직장 동료였다. 책을 펼쳐보는 여름의 표정이 다소 굳어졌다.     


 소설가 이찬비는 현실과 판타지 세계를 오가며, 독특한 말투와 개성 있는 작품으로 문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신인 작가였다. 그녀의 후속 ‘해님’ 역시 신간으로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오른 작품이었다.

 “네, 계절서점입니다.”

 “안녕하세요. 출판사 [다름]입니다.”

 그는 이찬비 작가의 신간도서를 출간한 출판사의 홍보마케팅부서 담당자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출간 기념 사인회를 개최하기 위해 장소를 알아보던 중 계절서점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적당히 사람들을 수용하기에 규모도 작지 않은 데다 무엇보다 서점 분위기와 작품의 결이 잘 맞다고 판단한 그였다.

 “사인회가 진행되는 동안 대관료는 별도로 협의해서 지급해 드릴 예정이고, 여러 채널마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소개가 나갈 거라 아마 서점 홍보에도 많은 도움이 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얘기를 경청하던 여름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여러모로 서점에는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여름은 괜찮을 수 있을까? 잘 나가는 동료 작가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것…. 더 이상 작가가 아닌 자신을 향한 찬비의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웃어넘길 수 있을까. 무엇보다 석호였다면, 만일 그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과연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고민 끝에 여름은 사인회 제안을 거절하기로 했다. 아마 석호였다면, 과거의 인연들과 엮이고 싶지 않아 하는 여름의 마음을 먼저 생각해 주었을 테니까.     


 “서작가! 이 프로그램 한 번 해보지 그래?”

 CP가 여름에게 던지듯 프로그램 제안서를 내밀었다. 그가 건넨 자료를 보는 여름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너무도 자극적인 탓에 찬비가 거절했던 작품이었다.

 “큰 틀은 잡혀있으니까, 애들이랑 기획안부터 다시 작업하면 돼.”

 여름은 드라마국에서 분리된 온라인콘텐츠사업부에서 새로운 웹드라마를 구상하던 차에 소속된 프리랜서 작가였다. 어쩐지 자신과는 작품이 결이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지만, 고민하는 듯한 여름의 모습에 CP가 내민 건 빨간 사과였다. 아주 먹음직스럽게 생긴 빨간 사과.

 “왜 자신이 없어? 이거 엄청 좋은 기회야- 서작가도 작품 하나 대박내서 자리 잡아야지.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고! 언제까지 프리 할 거야?”

 여름은 끝내 그가 내민 사과를 한입 베어 물기로 했다. 씨가 들었는지, 독이 들었는지도 모른 채.     


 최선을 다한 여름이었지만, 작품이 끝나고 돌아온 건 동료들의 비난과 화살이었다. 남은 건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뿐이었던 여름에게 그 누구도 함께 글을 쓰자거나 작품을 해보자는 제안을 하지 않았다. 왜 자신이 모든 짐을 감당해야 하는지, 믿고 의지했던 동료들에게 외면당할 만큼 잘못한 게 뭔지 따지고 싶었다.     


 “사람을 잘 만나는 것도 결국 운이고, 실력이야.”

 다시는 이 바닥에서 일을 하지 않겠다며 그곳을 떠나겠다는 여름에게 찬비가 말한 적이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때 동료라고 생각했던 그녀의 차가운 말에 여름은 마음을 끝내 정리하기로 했다.    

 홀로 선 바닥에서 어떻게든 외주 작업을 구해보려 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상하리만큼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던 시간이었다. 작가로서 할 일이 사라졌다는 건,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 여름이 집에서만 지내며 우울한 날들을 보내는 시간 동안, 찬비는 연속해 작품을 대박 내는 스타작가로 거듭났다.

 서러움에 눈물로 밤을 지새우던 여름을 설상가상으로 더욱 힘들게 한 건, 인옥의 전화였다. 전화를 받으면 알 수 없는 말들만 횡설수설하다 끊어버리는 이모의 전화. 살아온 날들 중 기억을 지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여름은 한 치의 고민 없이 이 순간들을 택할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은 자신과 달리 찬비는 어느새 다방면으로 글을 쓰는 작가가 되어있었다. 여름은 생각했다. 자신에게 다시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이윽고 여름이 씁쓸한 표정으로 찬비의 책을 진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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